오늘 공식적으로 첫 번째 주례, 그러니깐 제 식으로 표현하자면 '동행 안내'라는 걸 하고 왔습니다. 큰 준비 없이 편안하게 준비한 티가 나는 결혼식. 그래서 뭔가 어설프게 진행됐지만, 그 나름대로 풋풋함이 느껴지고 감사한 장면들이 연출되는 편안한 결혼식이었습니다.

둘 다 천주교 신자이었으나 이제는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는 커플의 마음을 배려해서, '간략한 사랑의 식탁 예식'을 준비했죠. 양가 부모님과 커플을 앞으로 모셔 진행한 15분 정도. 그 와중에 떨지 않고 빙그레 웃으면서 제 이야기 하나 하나에 반응하는 커플을 보며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요.

그리고 예식 후 사진 촬영 시간.

잠시 잊고 있던 아픔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신부 측이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는데,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와서 깔깔거리며 선생님 주변에서 연신 "선생님, 사랑해요~" "너무 이뻐요!!"를 외치더군요. 그 행복한 느낌으로 충만한 시끌거림이란...

그 순간.. 울컥하는 느낌이 찾아 왔습니다. 아.. 바다 깊은 곳에 있을 그 아이들도...

눈물을 참으려고 하늘을 올려다 보는데 어찌나 아름답고 맑던지...

밀려오는 감정을 겨우 겨우 누르며 긴 호흡을 하고 있었는데, 곁에 있던 5-6살 꼬마 아이 몇 명이 제게 와서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사랑의 식탁 예식"을 하고 남은 빵이 먹음직스러웠는지, 와서 빙그레 웃으며 빵을 달라는 손짓을 하더군요. 그 해맑은 미소. 그 찬란한 눈빛...

무릎을 꿇고 그 아이들에게 빵을 건네며, 어머님께 허락을 받고는 잠시 머리에 손을 얹고 건강히 자라길, 이 미소를 잃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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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찾는교회 식구들과 점심을 먹기로 선약을 했기에, 부랴 부랴 전철역으로 향했습니다. 살며시 부는 바람.. 따사로운 햇살.. 오가는 사람들의 행복한 웅성거림..

아.. 주여...

길찾는교회 식구들과 둘러 앉아 밥을 먹으며 누군가의 손을 꼭 잡고 싶었습니다. 아니, 만약 그렇게 누군가의 손을 잡았더라면, 끝없이 엉엉 울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활기차게 왁자지껄 떠들고 더 밝게 말하느라 자꾸 헛소리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슬픔과 행복의 복잡한 마음을 주체하기가 힘들어, "오늘은 이 찬란한 날씨 아래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예배'를 드리러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즉흥적인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임에도, 급류처럼 복잡한 마음을 숨기고 환하게 웃으며 제안한 저의 이야기에 다들 동의해줘서 그렇게 갑작스레 보신각 앞으로 옮겼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그리 맘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말보다는 그저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놓인 수많은 이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길고 긴 침묵과 애통함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은 더 답답해지고, 제 영혼은 더 힘겨워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식구(食口)들과 함께 밥과 막걸리 한 잔 하자고 자리를 옮겼습니다. 마지막 피켓 시위에서 그나마 마음에 와닿는 "청와대는 실종자 가족들을 당장 만나라!"는 문구가 담긴 종이를 가방에 접어 넣고는 낙원상가 앞 좌판 식당으로 옮겼습니다.

술이 약한 제가 마셔도 취하지 않고, 흰소리를 늘어 놓으며 깔깔거리고 웃어도 급류처럼 휘몰아치는 제 마음은 쉽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슬프고도 애통한 부활절 오후를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버틸 수 있었음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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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랬던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이른 새벽에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입관 예식을 돕고, 아침에는 결혼 축하의 글을 쓰고, 점심에는 돌 잔치에 참여해서 축복의 기도를 드리고, 낮에는 결혼식장에 가서 사회를 봐주고, 저녁에는 다른 장례식장에서 별세 저녁 기도를 인도한 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 한참을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유 모르는 눈물이었습니다. 인생의 찬란함과 힘겨움, 그리고 빛과 어둠을 하루에 감당하기에 사람은 너무 연약하기 때문인가.. 추측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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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의심하던 부활. 그 뒤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심받던 부활. 부활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믿던 이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인생의 힘겨움과 어둠을 마주하는 순간, 한 번쯤 의심하게 되는 부활.

결국 부활은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누구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에 답하며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아니 이제는 어제 하루를 보낸 나에게 묻습니다.

"자캐오. 너는 지금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부활을 살고 있니?"

비참할 정도로 외로웠던.. 가장 사랑했던 이들마저도 쉽게 믿지 못하던.. 믿게 된 후에 더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뤄야 했던... 그 부활.

당신은 지금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부활을 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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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이 와중에 가장 미안해야 할 공무원 윗대가리들 중에는 실종자 명단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거나,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의 앞길을 막고 위압적인 명령을 내리길 주저하지 않는답니다. 이 나라의 가장 위에서부터, 국민을 '섬긴다는 생각과 태도'가 아닌 '다스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4년 대한민국 사회 그리고 종교. 무엇보다 교회. 우리는 신자와 우리 이웃들을 '섬긴다'고 생각하며 행동하며 살까요? 아니면, 우리의 '우월함'으로 그들을 '다스리거나 인도'한다고 생각하며 행동하며 살까요?

2014년 봄. 거리를 지나다니는 일반인들의 눈에는, 진보든 보수든 똑같아 보이는 교회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답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낮게 더 오래 더 진심을 다해, 가장 연약하고 배제되고 소외되어 목소리마저 잘 들리지 않는 그곳에서 울부짖은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2014년 부활절. 제 마음과 영혼을 울리는 주님의 복음입니다.

우리 주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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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04/21 00:46 2014/04/2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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