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무지개행동(가) 긴급토론회: "인권 도시 성북, 어디로 갈 것인가?"


여섯 번째 꼭지 토론문: 센터 불용과정에서 드러난 보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를 같은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어찌 바라볼 것인가?

-성공회 길찾는교회 공동기획자, 민김 종훈(자캐오) 신부


센터 불용과정에서 드러난 보수 그리스도교 교회와 신자들의 폭력과 배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권력화된 종교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단순히 그리스도교의 특성이라기보다는 불안과 공포 마케팅으로 생존하고 세력을 넓혀온 모든 권력형 종교에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예전 동아시아의 주류 불교나 오늘날 중동의 이슬람국가(IS)처럼 종교가 제국이나 권력의 일방적인 통치 이념이 되었을 때, 우리는 많은 폭력과 살상 그리고 배제가 일어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여성, 흑인, 이주민 그리고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권력화된 종교의 박해는, 대상을 바꿔가며 계속되어 왔습니다. 주류 다수의 편에서 그들이 원하는 권력을 합리화 시켜주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박해하는 대상을 계속 바꾸고 있는 것이, 권력화된 종교의 슬픈 얼굴이자 일면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국 주류 사회와 연동되어 있는 주류 그리스도교회와 신자들의 민낯과 마주하게 됩니다.


물론 분절되어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사회의 다양한 결사체나 커뮤니티가 각자의 맥락과 내부 구조 그리고 내부 소통 언어를 갖는 것 정도로 봐도 무방할 겁니다. 문제는 한국 주류 사회와 주류 교회가 다양한 층위와 방식으로 연동되며, 보수적 기풍이나 구조, 언어와 만나 그 보수성과 배타성을 강화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주류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기풍’(ethos)과 ‘왜곡된 신학과 신앙 구조나 언어’가 더 깊게 자리잡고, 한국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더군다나 급격한 체제 변화로 한국의 대다수 ‘커뮤니티’(community)가 깨진 상태입니다. 커뮤니티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개인에게는 가장 가까운 ‘안전망’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여기서 온갖 가치와 이야기들이 재생산되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제는 특정한 가치나 연령층으로 모이는 커뮤니티 말고, 대부분의 ‘다양성이 보장된 폭넓은 커뮤니티’가 사라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사 커뮤니티가 ‘종교 커뮤니티’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폭넓고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종교 커뮤니티에서 배타적인 보수성이 재생산되고 확대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을 향해 ‘정교분리의 원칙’같은 명분을 내세우며 “종교는 종교의 영역으로 돌아가라!”고 외쳐봤자 ‘우이독경’(牛耳讀經)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권력’이 가진 달콤함을 충분히 맛본 그들은, ‘권력이 곧 축복’이라는 논리로 자신들을 무장하고 스스로 세뇌하여 ‘종교의 탈을 쓴 괴물’로 변신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힘으로 그들을 사회 밖으로 물러나게 해야 할까요? 종교인인 제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 안에 제가 있고, 제 안에 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그들’이라고 특정한 존재가, 아주 명확하게 특정되는 존재인지도 여러 측면에서 확인하고 검증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현대의 대다수 운동이 그렇지만, 종교 영역에서의 갱신이나 변혁 운동 또한 ‘적’을 쉽게 결정하거나 의미 지어서는 안됩니다. 그럴 수 없을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적은 명확하지 않고 중층적인 의미를 가진 말인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나 스스로가, 내가 말하던 적인 경우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니 연동되어 있는 커뮤니티에서 적을 도려내기 위해선 나의 일부를 도려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일이 얼마나 가능할까요? 지속 가능한 싸움 방식일까요?


저는 오히려 ‘기억과 연대로 스며드는 방식의 싸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스며드는 방식의 싸움이란, 우리 안, 심지어 내가 적이라고 규정해 버린 존재들 안에 공존하는 빛과 어둠을 전제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빛에 빛을 더하는 방식. 그래서 그 빛이 어둠과 공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어둠을 극복하는 상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싸움 방식 말입니다.


'제거해야 할 나쁜 적' 하나 만드는 일은 쉽습니다. 오늘 우리가 비판하는 주류 교회 또한 쉽게 그 방법을 선택해 왔고, 그 결과로 지금 여러 의미로 ‘우리’는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빛에 빛을 더해 어둠을 극복하는 상태로 안내하는, 그렇게 서로의 빛으로 스며드는 싸움 방식을 강조합니다.


이 과정에서 ‘균열과 탈주의 방식’을 선택하고 동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커뮤니티나 삶에서 내부 균열로 존재하며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집단 탈주를 통해 판을 뒤흔들어야 하는가’라는 선택 말입니다. 이건 여러 분석과 토론 그리고 감각을 통해 선택해야 할 문제이긴 합니다. 어느 하나가 전적으로 옳은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둘 외에도 다른 선택지도 많을 겁니다.


제가 배웠고 경험했던 많은 운동은 초기에 내부 균열로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내부 균열을 통해 조금씩 갱신되던 커뮤니티의 변화에 더 이상 큰 진전이 없다면, 그때는 집단 탈주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판을 뒤흔들어 새로운 커뮤니티로 갱신되거나 탈바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편드시는 하느님’이라는 신학적 고백 가운데 ‘사회적 영성’이라는 맥락을 되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고백과 맥락이 되살아 나야 균열과 탈주의 방식이 폭주하지 않도록 안전장치 역할을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직 깊은 잠에 취해 있으나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기존 그리스도인들을 깨우기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익숙한 그리스도교 전통과 이야기를 통해 그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도 ‘기억과 연대의 방식’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으로 살라는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소수자’가 되어야 한다고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소수자의 삶에 응답하는 이들이어야 한다는 걸 다시 기억하게 해야합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이 왜 온전한 하느님의 사람들인지 들려주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친밀함의 운동, 켈트 그리스도교 이야기와 전통, 그리고 이를 확장하고 섬세하게 구성하기 위해 더 많은 길벗들을 호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정서적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진단과 분석이 옳고 분명하며 그에 따른 대안이 명확할지라도, 자신의 정서에 반하면 많은 사람들은 반대할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진단과 분석이 옳고 분명할수록 '사람들의 정서'라는 맥락을 읽어, 그 맥락과 역동 속에서 진단과 분석을 나누며 함께 답을 찾아가는 협업으로 안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16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9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

20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공동번역개정판, 요한의 첫째 편지 4:7~8, 11~12, 16, 18~20)

* 2014년 서울시와 성북구청은 주민참여예산 사업은 성소수자 청소년의 위기 상황을 지원하기 위한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 센터> 사업을 추진하던 중, 보수 기독교인들의 반대를 핑계로 사업 예산을 불용처리하기로 한다.

이 부분에 대해 간략하게 파악할 수 있는 두 단체의 링크를 소개한다.

첫째. <성북구 인권위원회> 성북구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 센터 사업에 대한 권고


둘째. <전교조 서울지부> 민주주의와 인권은 타협과 절충의 가치가 아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자캐오

2015/01/25 01:38 2015/01/25 01:38

Trackback URL : http://www.zacchaeus.kr/trackback/551

Leav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
« Previous : 1 : ... 447 : 448 : 449 : 450 : 451 : 452 : 453 : 454 : 455 : ... 909 : Next »

블로그 이미지

가난, 소외, 여성 & 그 언저리에 함께 하는 무지개빛 성령님...

- 자캐오

Calendar

«   2018/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Site Stats

Total hits:
303408
Today:
49
Yesterday:
113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