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렇지 뭐.. 또 몇몇 원로라는 사람들이 나섰겠지.. 그 사람들이 어디 가겠어..'

헌데 그 성명서란 거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하고 나니, '아.. 이젠 정말 바닥을 훤히 드러내는구나..' 란 먹먹함에 가슴이 아려왔다.


이진오 목사님은 박총 원장님의 추천으로, 작년 NCCK-CBS가 같이 진행한 "교회, 청년을 만나다"라는 기획에서 <CBS 크리스천 NOW> 토론의 패널로 알게 된 분이다. 성소수자, 음주 등 교회에서 금기시하는 주제에 대해, 진보 기독교와 합리적 보수의 입장에서 30-50대 초반의 상대적으로 젊은 목소리를 들어보는 시간. 그 중에서 '합리적 보수' 쪽 패널로 모셨었다.

오늘 그분의 담벼락에서 들은 소식. 문창극 총리 후보의 '역사 인식과 인사 청문회'를 위해, 그동안 개신교-복음주의나 개혁주의의 기둥이라 언급되던 많은 분들이 황당한 지지 성명서를 냈다는 것.

'또 그랬구나..' 하다가 뭔가 찜찜해서 내 생전 처음(?)으로 조선일보 홈페이지까지 들어가봤다. 심지어 "개혁주의이론실천학회 샬롬나비"라는 단체 홈페이지까지 찾아가 봤다.

그리고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역사 인식을 옹호하기 위해 이들이 말하는, 그러나 신학 공부를 한 나도 듣도보도 못한 '신앙적 민족 사관'이란 '자학 사관'이 분명하다고.

같은 그리스도교이지만 옆 동네인 개신교-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쪽에선 나름 이름깨나 있고, 그 동네에서 '기둥' 취급 받는 분들이나, 앞으로 이들이 말하는 '신앙적 민족 사관'이란, '신앙적 민족 사관'이라 쓰고 '자학 사관'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이럴 때, '성공'이란 목적을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다는 저 분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진짜 합리적 보수와 진보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 뻔뻔하고, '결론만 좋으면 되잖아' 식의 무리한 신학적 비약에다가, 심지어 '가진 자들의 하나님'을 옹호하는 듯한 주장. 이들이 정말 그토록 강조하는 '칼뱅의 후예'인가 싶을 정도로 황당한 주장.

그런 주장을 보수 일간지를 대표하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대다수 기독 언론에 배포한 이들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인 반박도 못하는 한국 개신교-개혁주의나 복음주의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들만의 생각을 가지고 한국 개신교회의 주류 신학에 가까운 '개신교-개혁주의나 복음주의'를 싸잡아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들의 위세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는 '개신교-개혁주의나 복음주의'라면, 나는 더 이상 '대화 상대'로도 인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동네에 남아 있는 신자들을 향해 '내부 균열자'가 아닌 '집단 탈주자'가 되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을 정도다.


혼자 눈 버리기 싫어서 여러분께 그 성명서를 공유한다. 읽고 직접 판단해 보시기 바란다 ㅎㅎㅎ

* 덧붙임. 성명서 하단에 위치한 이름들을 보라. 한국 개신교-개혁주의나 복음주의에서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인물들이다. 큰 목사님들의 전횡과 불신앙이 불거질 때마다, '아직 우리에겐 이들이 있다'라고 언급되던 인물도 있다. 나는 이게 2014년 한국 개신교-개혁주의나 복음주의의 민낯이라고 판단된다. 더 이상,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샬롬나비 임원명단은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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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2014년 6월 23일(월) / 제29071호 / 14면.

"문창극 후보의 역사관은 식민사관이 아니라 신앙적 민족사관이다."
 
"일제강점으로 인한 민족의 수난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의 3년 전 온누리교회 강연에서의 발언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식민사관으로 왜곡되면서, 그를 총리로 지명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화되고, 이로 인해서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그를 옹호하려던 처음 입장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식있는 국민들은 신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관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 후보자의 발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1.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사퇴압력을 가하는 것은 자유민주사회에서 부당한 일이다.
 
문 후보의 총리지명이 옳은가 아닌가의 핵심쟁점은 그의 역사인식이 식민사관인가 아닌가 이다. 그런데 그의 역사관이 식민사관이라는 주장이 옳다고 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충분히 결론이 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부 언론과 파당 세력이 여론이라는 다수의 힘과 정치적 이익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사퇴하라는 압력을 가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기본인권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부당한 일이라 판단된다.
 

2. “하나님의 뜻”이라는 본의(本意)는 식민사관이 아니라 신앙적 민족애에 있다.
 
문 후보의 발언에 대해 전체적인 맥락에서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또 그 발언의 뜻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문 후보자의 강연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서의 민족의 수난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그의 본의(本意)는 식민사관이 아니라 신앙적 민족애에 있다. 그 강연의 본의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로 비록 고난과 어려움을 당했지만 현재 우리가 누리는 민족의 번영을 위한 시련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악은 반드시 하나님이 처벌하신다는 신념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과 의도를 무시한 채 한 부분만 잘라내어 대대적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한 개인에 대한 모독이며 성숙한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 아닐 수 없다.
 

3. 문 후보의 발언은 신자로서 개인적인 신앙고백이며 동시에 일종의 신학적인 발언이다.
 
문 후보의 발언은 그리스도인의 개인적인 신앙고백이며 동시에 일종의 신학적인 발언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의 발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성경과 신학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의 오해에 기인한 것이다. 성경의 진리를 일반학문의 잣대로 평가하게 되면 성경에는 비이성적이고 때로 비윤리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보이는 사상들이 들어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신학 전문가들의 해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 문 후보의 강연처럼, 성경적 신앙의 표현이 문맥을 떠나서 비신자들에게 전달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우리는 문 후보의 발언은 신학적으로 보아 문제가 없고, 신학적 역사해석에 있어서도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와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4. 문 후보의 발언은 의인을 괴롭히는 악인의 악을 하나님의 뜻으로 정당화하지 않는다.
 
문후보는 민족의 수난은 우리 민족을 연단하셔서 사용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개인과 공동체의 고난에 대한 성경의 이해는 일반 사회의 이해와 크게 다르다. 성경은 이성적인 논리를 넘어서 악인을 사용하셔서 의인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정의를 균형있게 강조한다. 민족의 수난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신학적 해석은 우리 민족이 수난을 통해 유익을 얻었다는 것과 함께 하나님은 일본의 만행에 대한 책임을 심판하실 것이며 우리 또한 이들의 악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일본의 악행을 통해서 우리민족을 축복하시려 하셨다는 문 후보의 절대주권신앙은 성경적 신앙으로 타당하다 여겨진다.

 
5. 문 후보의 발언이 인간 책임성을 균형있게 강조한다면 식민사관을 깨뜨릴 수 있다.
 
문 후보가 말한 바는 성경의 진리와 개혁신학의 뼈대를 제공한 칼빈의 하나님의 주권사상에 부합한 역사해석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함께 인간의 책임성을 균형있게 강조한다면, 그의 역사관은 식민사관이 아니라 오히려 식민사관을 깨뜨리는 진정한 기독교적 민족사관이라 할 수 있다. 이성의 논리로 민족사를 설명하는 것과 신학의 논리로 민족사를 설명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양자는 서로 모순이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적이다. 기독교 신학적인 관점은 이성의 논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한민족사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에서 드러내 줄 수 있다.
 

6. 하나님의 뜻은 민중의 뜻으로 나타나나, 민중의 뜻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선진사회로의 전환을 위하여 통합의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 통합의 리더십은 민중에 아첨하여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민중의 뜻으로 나타나나, 그렇다고 민중의 뜻이 바로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국가의 장래를 진정으로 생각하면서 최고 권력자와 민중에 동시에 쓴 소리도 할 수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지도자는 양식있는 시민들이 세워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파당적인 비판여론 몰이에 동조하지 않고 진정한 민족애를 가진 희생적인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기독교 신앙은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존재한다. 교회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사회양심의 최후의 보루이며, 사회 통합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들의 좋은 점을 격려하며 흠결(欠缺)은 수정하도록 하여 그의 역량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에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위한 교회의 역할이 있다.
 

2014년 6월 23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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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0:41 2014/06/2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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