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걷다.

길찾는교회. 경계를 걷는 또 하나의 교회.

그렇게 길찾는교회에 속한 뒤로 달라진 것들이 있다.

전에는 신자들을 만나러 갔다면, 이제는 길벗들을 만나러 간다.

전에는 사례비를 받는 사목자로 갔다면, 이제는 내 몫을 감당하는 공동기획자로 간다.

전에는 내가 맡은 일(기능)을 하러 갔다면, 이제는 위로의 속삭임과 쉼을 주고 받으러 간다.

전에는 일상에서 예배로, 예배에서 일상으로 나아갔다면, 이제는 일상과 예배가 나눠질 수 없음을, 아니 그런 나눠짐을 넘어서야 함을 배우며 산다.

경계를 걷는다는 것이 늘 축복일 수 없다. 경계를 걷는다는 건 늘 행복한 일일 수 없다.

다름과 다툼, 긴장과 피곤함, 힘겨움과 회의감도 공존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많은 것들이 낯설고 새롭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던 것들.

'우리들의 하느님'은 그렇게 낯설고 새로운, 그래서 내가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것들을 통해 내게 말을 걸어 오셨다. 길찾는교회, 경계를 걷고자 하는 또 하나의 교회에서.

* 덧붙임. 내 상황과 한계 속에서 언제까지 이 길을 걸을 지는 모른다. 그저 내 길벗들과 할 수 있는 만큼 걷게 되겠지 싶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은, 춤추듯이 걷고 있다. 주님과 내 길벗들의 손을 붙잡고, 따로 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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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인다.

새 길을 떠나는 이들이 겪는 갈등 가운데 하나. 현실과 이상 사이.

그 갈등 가운데 고민과 무게가 켜켜이 쌓인다.

가장 큰 갈등은 그 고민과 무게가 내것만이 아니란 것이다.

내 길벗들의 고민과 꿈, 그리고 갈등이 얽혀 있으니, 그저 나 하나만의 고민과 무게만 걷어낸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쉽지 않다.

이럴수록 믿고 나눠야 한다. 빙빙 돌아가기 보다는, 뚜벅뚜벅 갈 길을 걸어가야 한다.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은 서로를 믿는다는 것이고, 각자의 보폭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르니 맞추는 것이고, 믿어야만 같이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켜켜이 쌓이는 고민과 무게가 내 좋은 선생이 될 수 있을 지는, 오직 내 문제라는 건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것이다. 자기 고민과 무게를 짊어지고 자기 걸음으로 걸을 때, 비로소 누군가의 길벗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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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4/12/15 12:23 2014/12/1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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