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에게 '인육을 먹는 예식을 하는 자들'로 낙인찍혔다. 그리스도인들의 성만찬이 곡해된 것이다.

성공회는 헨리 8세가 이혼하기 위해 급조한 교회란 소문이 낙인이 되어 따라 다녔다. 로마라는 교회 권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영국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곡해된 것이다. '교회가 그 지역 사람들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복음의 빛을 비춰야 한다'는 주장과 결단이 왜곡된 것이다.

초기 아나뱁티스트들은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세례를 베푸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이름, 그리고 국가나 지역 권력의 권위를 부정하는 이들로 낙인 찍혔다. '세례는 오직 믿는 자들의 고백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왜곡당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시대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복음의 빛’ 아래에서 다시 해석하는 용기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 해석을 따르려는 결단과 증언으로 낙인찍혔다. 피 맺힌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들은 그렇게 ‘또 다른 길’을 걸었고, 그들이 또 다른 길이 되었다.

최근 몇 가지 일을 겪으며 우리나라에는 몇 가지 지뢰가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 중에서도 좌우 양쪽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지뢰가 있다. 과거에 비해 그 위력이 많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가능하면 이 지뢰는 피하는 게 좋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예를 들자면, '빨갱이, 종북, 친일’같은 거다. 이는 ‘왜곡된 민족주의/국가주의’가 다양한 방식으로 좌우를 공격하는 도깨비 방망이다. 누구든 이 방망이에 맞으면, 사실이 어떠하든 간에 빨갱이가 되고 종북이 되며 친일이 되어 버린다.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물론 민족주의를 넘어서자는 게, 순진한 척 살자는 건 아니다. 엄연히 현실에서 위력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민족주의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해결되겠는가. 오히려 '민족/국가'라는 현실을 인정하되, 내부 균열자이자 탈주자로 존재하는 게 그리스도인이지 않느냐는 문제 의식이다.

성공회는 '근대 국가 = 교회'라는 개념이 강한 교회로 시작했다. 그러나 발전 과정에서 '세례 교회론'이나 '성만찬 교회론'을 발전시켰고, 이는 ‘토착화 선교’와 만나 민족/국가라는 개념을 새롭게 넘어서고 있다.

아나뱁티스트나 메노나이트는 그 시작부터 국가 권력의 곡해 아래에 수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광풍에 숱한 박해를 받고 피 흘렸던 기억을 간직한 이들이다.

그래서일까? 종교 개혁 이후 교회 가운데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 이 둘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그 중에서 현대 사회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어떤 것이든 제한 없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토론하라. 둘째, 기울어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약자를 편들라.

전혀 다른 길을 걸어 왔으나, 여러 가지 맥락에서 의외로 비슷한 전통과 신앙 고백을 간직하게 된 두 교회. 무엇보다 '낙인, 민족/국가, 또 다른 길'이라는 비슷한 이야기를 품은 교회들.

그렇다면 2015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 두 교회는, 시대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복음의 빛’ 아래에서 다시 해석하는 용기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이 땅의 가장 위력적인 지뢰인 '민족주의'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좌우'가 아닌 '또 다른 길'을 선언하며 살아가는 삶. 이것이야말로 이 두 교회가 다른 듯 같이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닐까.

* 덧붙임. 최근 스스로의 정체성을 아나뱁티스트 또는 메노나이트로 여기고 계신 분과 짧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분과 나는 '민족/국가를 넘어서는 그리스도교'라는 공통된 고민을 안고 있었다. 그 짧은 이야기에서 깊어진 고민을 여기에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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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2/18 21:37 2015/02/1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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