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나타난 하느님, 다른 세계를 살 용기와 이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우리, 방금 함께 귀 기울여 들은 오늘의 복음서 말씀 가운데 마지막 부분을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루가 5:10b-11)

오늘 복음서 말씀인 루가의 복음서 5장 1절부터 11절은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이에서 동행했다고 알려진 이들이 등장합니다.

열두 사도 가운데 시몬 베드로 그리고 제베데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만나 따르게 되었는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부로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을 마주한 뒤에 놀람과 두려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됩니다.

기적은 말 그대로 일반적인 통념과 이해로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고 경이로운 사건이란 특징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놀람이나 두려움이란 반응을 보입니다.

제가 지난 몇 주간 반복해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서’라는 이름으로 모아서 엮은 이야기들은, 초기 교회들 가운데 회람되고 전해지던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분명한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선택되었습니다.

그중엔 ‘예수 그리스도는 놀라운 기적을 베푸는 분이기에 우리들과는 다른 존재다’라는 걸 강조하려고 선택된 부분도 있습니다.

지난 몇 주간 교회가 함께 읽은 성서 본문들 가운데 기록된 놀라운 기적들은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과는 다른 존재다.’라는 걸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다른 존재 때문에 그를 따르는 이들도 예수처럼 ‘다른 삶과 관계’를 선택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 말씀에 대해 초기 교회의 스승 가운데 한 명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입니다. 우리,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그물이 던져졌습니다. 주님은 아직 수난당하지 않으셨고, 아직 다시 살아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그물은 던져졌지요. 그러자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두 배를 가득 채웠고, 그물은 찢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하느님 말씀이라는 그물을 받아 깊은 바다인 이 세상에 내렸고, 그러자 지금 우리가 보고 놀랄 만큼 많은 그리스도인이 잡혔습니다. 여기서 배 두 척은 두 민족, 곧 유대인과 다른 민족, 회당과 교회, 할레 받은 이들과 할례 받지 않은 이들을 나타냅니다.”
-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248.2., <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성경 Ⅳ>, 164쪽.

이처럼 초기 교회의 스승들은 성서의 사건들이 ‘어떤 목적과 방향성’을 갖고 기록되어 모였고 엮여 전해졌는지에 대해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기적을 행하신 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드러내는 상징 사건’이고, 그런 기적은 단순히 기이한 사건을 넘어 더 깊고 넓은 ‘선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했던 제자들과 초기 교회는 물론, 그들로부터 성서를 전수받은 모두가 그 선교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다양한 교회들 가운데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 오늘 2독서인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5장 3절부터 8절까지 한 목소리로 읽어 볼까요.

3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5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뒤에 다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또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교우들에게도 나타나셨는데 그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 뒤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또 모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8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한 목소리로 읽은 2독서 말씀처럼 그리스도교 초기 교회들에는 ‘하느님을 만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느님을 보았고 그 하느님 때문에 다른 삶과 관계, 그러니깐 ‘다른 세계를 선택하며 산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가로질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눈앞에 나타난 하느님’을 보았고, 그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라는 메시지가 바로 ‘복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방금 함께 읽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15장 1, 2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1 형제 여러분, 전에 내가 전해 준 복음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되새겨주려고 합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이 이미 받아들였고 또 여러분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여러분이 헛되이 믿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내가 전해 준 복음 그대로 굳게 지켜 나간다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선 신앙의 선조들은 이처럼 ‘눈앞에 나타난 하느님’을 만난 이들을 보며 다른 세계를 살 용기와 이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눈앞에 나타난 하느님’이란 말은 고대 언어와 문법으로 고백된 신앙의 언어라는 걸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고대 언어와 문법으로 얘기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는 증언을 현대 언어와 사고로 오해 없이 정확하게 옮길 자신이 제게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오늘도 우리는 ‘하느님 때문에 다른 세계와 시간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인 서로를 보며 다른 세계와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저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보수적인 가르침과 다르게 행하던 교회에 심각하게 실망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유산으로 전해준 어머니께 동의를 얻고 1년 여간 다른 종교 전통을 경험하며 다녔죠. 헌데, 그런 제가 다시 교회를 선택한 이유는 ‘예수 때문에 다르게 사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을 통해 하느님을 보고 ‘이 따위 세상과 사회’에서도 다른 세계와 시간을 꿈꿉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성령님께 의지하며 살기를 선택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지도자들이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강조하며 ‘신본주의’라는 걸 가르칩니다. 그런데 초기 교회의 스승 중 한 명인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오늘 1독서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설합니다.

우리, 한 목소리 읽어 봅시다.

“하느님께서 앉아 계시지도 않는데 어째서 스랍들과 함께 어좌에 앉아 계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십니까? 이는 그분께서 사람들의 방식으로 가까이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이사야서 주해> 6.1,78-81, <교부들의 성경주해: 구약성경 Ⅹ>, 110쪽.

무슨 뜻일까요? 앉아 계시지도 않는 하느님을 스랍들이 모시고 있다고 기록하여 전하는 히브리 성서에 대해 풀이하며, 교회의 스승들은 ‘그 부분이 무엇을 말하기 위해 전해졌는가’에 집중합니다.

그 ‘무엇’은, 바로 ‘눈앞에 나타난 하느님’이신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복된 메시지가 우리를 어떻게 살도록 하는가’에 대해 덧붙여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그러니 다 설명하고 얘기할 수 없는 걸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초기 교회와 신자들이 ‘눈앞에 나타난 하느님’을 본 사람들처럼 살기를 선택하고 노력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처럼 우리도 오늘날의 언어와 문법으로 ‘눈앞에 나타난 하느님’이신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를 얘기해야 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말했던 것처럼, 교회와 성서가 가르쳐 온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사람들의 방식으로 가까이하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늘에 계신 하느님’만 강조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와 어울리지 않는 ‘신본주의’라는 말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람들의 방식’으로 가까이하시기에 ‘눈앞에 나타난 하느님’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란 신앙 고백이 강조하고 가르치는 것에 더 집중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우리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사는 시대나 사회의 언어와 문법으로 얘기되는 ‘눈앞에 나타난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 하느님을 본 사람처럼 살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런 당신과 나, 우리를 통해 또 다른 누군가 하느님을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그런 우리를 통해, 사람들의 방식으로 가까이하시는 하느님을 보고 ‘다른 세계를 살 용기와 이유’를 얻게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과 청소년 시절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성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잠시 묵상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 본기도
거룩하신 하느님, 주님의 영광이 하늘과 땅에 가득하고 천군 천사들은 경배하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은혜로 우리의 입술을 정결하게 하시어 주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주님의 구원을 전하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1독서, 이사 6:1-13 / 2독서, 1고린 15:1-11 / 복음, 루가 5:1-11

* 2019년 2월 10일, 연중 5주일(Fifth Sunday after Epiph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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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9/02/10 01:20 2019/02/1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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