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할 수 있다는 선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오늘 복음 말씀에는 성공회 저녁기도 가운데,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인 ‘시므온 송가’가 나옵니다.

◉ 참 빛이 있으니 세상에 내리시어 ◯ 모든 사람에게 비추시는도다.
1.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2.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3.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님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4.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 참 빛이 있으니 세상에 내리시어 ◯ 모든 사람에게 비추시는도다. 〈성공회 기도서, 2004〉

우리는 저녁기도를 드릴 때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참 빛이 세상에 내리시어 모든 사람에게 비추신다. 우리는 주님의 구원을 보았다. 그 구원은 만인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님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된다. 그 구원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된다.’

교회와 성서가 계속 강조해 온 것처럼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우리만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약속된 선물입니다.

그것은 각자의 자리에 따라 다르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상과 삶을 알려주는 빛’으로, 이미 주님을 알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영광의 약속’으로 베풀어집니다.

이렇게 주님이 주시는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다르게 적용되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그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자 디딤돌이 됩니다.

가난과 배제로 힘겨운 사람에게는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용기와 힘이 됩니다. 도전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깊이 감추고 있는 이 사회와 우리 각자의 어둠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 주님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메시야를 기다렸던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축복한 뒤에 어머니 마리아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루가 2:34~35)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약속받은 구원의 길이란, 이처럼 놀랍고 신비한 길입니다.

그것은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두운 것들을 드러내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강하면 강한 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우리 안에 깊이 숨겨진 것들을 드러냅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가 겪었던 반대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리한 칼에 찔리는 듯한 아픔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우리 안팎에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 오래 전에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만났던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다시 만납니다.

그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 함께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풀무질하여 은에서 쇠똥을 걸러내듯, 레위 후손을 깨끗하게 만들리라. 그리하면 레위 후손은 순금이나 순은처럼 순수하게 되어 올바른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게 되리라.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치는 제물이 옛날 그 한 처음처럼 나에게 기쁨이 되리라. 나는 너희의 재판관으로 나타나 점쟁이와 간음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 하늘 두려운 생각없어 날품팔이, 과부, 고아, 뜨내기의 인권을 짓밟는 자들의 죄를 당장에 밝히리라.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말라 3:3~5)

이때, 우리가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정결’, 다른 표현으로 ‘거룩’이란 건 단순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로질러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문제를 가로질러 넘어서는 것을 ‘식별’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된다’는 건, 우리를 거룩하게 하지 못하는 것을 가로질러 넘어서 올바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는 마치 재판관 앞에서 감춰진 것들이 밝히 드러나 바로잡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처지에 따라, 강한 이들은 강한 대로 약한 이들은 약한 대로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먼저 길을 여셨습니다. 한계를 가진 우리 모두를 위해, 당신이 먼저 하느님께 봉헌되어 거룩하게 되는 길을 여셨습니다.

이 땅의 모든 어두운 것들, 이 사회와 교회, 관계 그리고 당신과 내 안에 있는 온갖 어두운 것들을 가로질러 넘어서 우리에게 ‘구원의 빛’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르는 모든 이들이 당신의 길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주신 것이죠.

우리 함께 오늘의 2독서인 히브리서 2장 17절부터 18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점에서 당신의 형제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자비롭고 진실한 대사제로서 하느님을 섬길 수가 있었고 따라서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친히 유혹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을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다.” (히브 2:17~18)

그래서 초기 교회와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한계를 가로질러 넘어선 분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도 우리들의 한계를 가로질러 넘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오늘 2독서인 히브리서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같은 근원에서 나온 존재’라는 선언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2장 11절부터 12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사람을 거룩하게 해주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거리낌 없이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히브 2:11~12 앞부분)

교회는 이런 이유 때문에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당신을 봉헌하셨다고 가르칩니다.

당신이 먼저 봉헌되시어, 우리가 그 뒤를 이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그러니깐 교회가 가르치고 증언해온 ‘봉헌’이란 이런 것입니다.

이는 우리도 예수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된 구원을 선포하고 증언하라는 요청입니다.

그것을 위해 먼저 우리 안에 감춰진 것들을 드러내는 진실의 길 위에서 서라는 명령입니다.

강한 이들은 강한 대로, 약한 이들은 약한 대로 각자가 그 안에 감추고 있는 것들을 드러내라는 요청입니다.

그렇게 드러난 것들과 정직하게 마주해야만, 우리는 우리들의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우리를 의탁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어두운 것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해 그것들 가로질러 넘어서야 ‘새로운 세계와 관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 참여하는 감사성찬례, 그 가운데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는 지점에 봉헌이 위치한 이유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 봉헌은 단순히 교회 운영을 위해 돈을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기 전에 각자가 깨끗한지 돌아보라는 게 아닙니다. 다른 것들과 분리된 삶, 소위 말하는 기독교 세계관을 기준으로 잘 살았는지 살펴보라는 게 아닙니다.

그 봉헌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예배 가운데 나오기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된 구원의 길, 그 진실의 길을 걷고 있었는가?’ 라고 묻습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 참여할 봉헌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먼저 자신을 봉헌하시어, 우리를 당신과 같은 근원에 있게 하시고, 우리를 식구라고 불러주시는 그 ‘사랑의 삶’이 계속될 수 있도록 선택하며 살았는가?’

우리는 이처럼 놀라운 ‘사랑의 삶’에 계속 참여하겠다는 고백으로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각자의 처지에 따라 숨기고 있는 것들이 밝히 드러나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디딤돌인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됨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교회가 가르쳐 온 주의 봉헌은 한계투성이인 우리들의 교회와 신자들, 그리고 당신과 내가 그것들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마주하며 가로질러 넘어서게 하는 힘이자 방향등입니다.

우리가 함께 참여하는 감사성찬례 때마다 이를 기억하기를 부탁드리며, 즐거운 설 명절 보내는 용산나눔의집 식구들이 되길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성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잠시 묵상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 본기도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느님, 오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성전에 봉헌되셨나이다. 겸손히 비오니, 우리도 정결한 마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봉헌되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1독서, 말라 3:1-5 / 2독서, 히브 2:11-18 / 복음, 루가 2:22~40

* 2019년 2월 3일, 주의 봉헌 축일(Presentation of Jesus in the Temple).

* 2016년 주의 봉헌 축일 설교문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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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9/02/03 00:43 2019/02/03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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