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공회대학교 강의 평가 결과 공개.

일주일에 딱 50분. 그것도 ‘의무 채플’이란 명목으로 만나는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어려운 길을 선택했는데, 함께한 학생들의 평가는 어떨까.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채플이었습니다.”
“종교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별 탈 없이 들을 수 있는 수업입니다.”
“정말 좋은 수업이었습니다.”
“소수자 인권을 위해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매우 유익한 수업입니다. 정식 교양이나 특강 형식으로 계속 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것 배워가는 최고의 채플입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낙태죄 특강이 특히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등등.

30명 신청해서 27명이 Pass. 그 가운데 21명이 평가에 참여해줬고, 평점은 4.352.

학부강좌/전체교원 208개 가운데 67등, 학부강좌/비전임교원 130개 가운데 41등. 아, 요즘엔 이렇게 나오는구나.. ^^;;;

100% 참여한 평가가 아니고 주요 수업도 아니라, 평가 자체가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다만, 일부러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게 나와서 스스로 큰 위안이 되었다.

성공회대학교처럼 작은 규모일지라도 종합대학교에서 채플 수업이란 걸 진행해 본 사람들은 이게 뭔 소리인지 안다.

비종교인이 더 많은 학교에서 2학기 의무 이수를 해야 하는 채플 수업이다. 많은 채플 수업들이 일종의 ‘쉬어가기 코스’(?)처럼 열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50분 수업이지만, 어떤 수업은 30분 겨우 넘기고 마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야 학생들이 좋아하니까(?).

그리고 대부분 ‘가벼운 내용’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쟁점으로 만나는 그리스도교”라는 제목으로 개설된 채플 수업. 비정규직 노동, 낙태죄 폐지, 페미니즘, 퀴어를 주제로 다루고, 50분 꽉 채워 진행되는 채플 수업 ㅎㅎㅎ

첫 시간에 위와 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클릭에 늦어 어쩔 수 없이 들어왔는데, 꼭 다른 수업에 들어가고 싶은 분들이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라는 안내를 하는 수업 ㅋㅋ

나는 지금도 성공회대학교 3천 여 명 학생들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채플 수업에는 회의적이다.

몇 해 전, 교목실로 발령받아 학 한기 근무를 한 뒤에 만들었던 한 쪽 짜리 내부용 제안문에 담았던 내용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총장님을 비롯해 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성공회 신부님들께 공유했던 내용은 정식 수업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대신 교양 필수나 선택으로 바꿔 다른 교양 수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세팅하자고 했다.

‘종교와 인간’이나 ‘종교와 사회’라는 분류로 2-3시간 짜리 정식 수업으로 여러 개를 만들어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준비하자는 제안.

매 학기 느끼는 거지만, 3천 여 명의 학생들 가운데 최소 10%, 그러니까 3백 여 명 이상의 학생들은 이런 기대감을 갖고 성공회대학교를 적극 선택한 이들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했던 제안이었다. 최소한 20%인 6백 여 명의 학생들은 ‘한 번쯤 들어볼까..’ 라는 선택을 할 거란 것도 ^^

‘그러니 서로가 부족하게 느끼는 의무 채플 수업을 진행해서 3천 여 명의 아쉬움이나 반감을 남기지 말자. 그보다는 3백에서 6백 여 명의 학생들과 제대로 된 수업을 진행하자. 그 가운데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종교의 또 다른 면’을 알게 한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성공회대학교의 설립 이념을 공유하는 게 아니겠냐’ 고 강변했다.

‘그래도 기독교 대학인데 채플이란 이름이 진행되는 수업이 없어지면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해서, 결국 다시 책상 서랍에 ‘보류’로 분류되어 끝났지만 ^^

그 이후에도 혼자 채플 수업에서 몇 학기 째 비슷한 맥락의 실험(?)을 진행 중인 나로서는 그 제안이 아직도 유효하단 생각이다.

소위 말하는 ‘전략’의 첫 걸음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정직한 인식과 유효 적절한 분석’이고, 그에 따른 ‘선택과 집중’이기 때문이다.

아, 말이 길어졌다. 무엇보다 한 학기 동안 어려운 선택을 하고 충실하게 동행해 준 학생들에게 맘 깊이 감사를 전한다 ^^

(2019.01.10. PM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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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9/01/11 10:19 2019/01/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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