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마주하는 절망 가운데 포기할 수 없는 희망 한 조각 붙들고 사는 사람들의 고백. 공현대축일을 맞이해, 그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희망에 대해 나눴습니다. 절망적일수록 더욱 더 ‘다른 세상’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전해 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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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오신 예수. 우리가 다른 삶을 살겠다는 간절한 고백이자 선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성서는 과학책이나 의학책, 철학책이 아닙니다. 위인전이나 법전도 아닙니다.

신약성서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다짐한 ‘소수의 사람들’이 주고받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읽은 ‘신앙 고백들’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한 권으로 묶인 책’으로 전해지는 신약성서는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읽을 걸 염두에 두고 쓰인 책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과 조건이 계속되더라도, ‘또 다른 소수의 사람들’이 그 믿음을 배신하지 말고 지켜내기를 갈망하며 주고받으며 엮은 글들이 전해진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에 항상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서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이야기가 특히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서에 기록되어 전해진 이야기를 통해,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는 굉장히 중요한 신앙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 고백이 앞으로의 신앙 공동체에도 중요한 고백이자 선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한 목소리로 그 부분을 읽어 볼까요? 마태오의 복음서 2장 1절부터 6절까지입니다.

1 예수께서 헤로데 왕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나셨는데 그 때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왕이 당황한 것은 물론, 예루살렘이 온통 술렁거렸다. 4 왕은 백성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다 모아놓고 그리스도께서 나실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5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서의 기록을 보면, 6 '유다의 땅 베들레헴아, 너는 결코 유다의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영도자가 너에게서 나리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로마제국의 앞잡이이자 정치 수완이 좋은 헤로데 왕에게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찾아와 묻습니다.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깜짝 놀라 당황한 헤로데 왕이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모아 그들에게 묻자, 그들은 미가서에 기록된 오랜 예언 하나를 말해줍니다.

“유다의 땅 베들레헴아, 너는 결코 유다의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영도자가 너에게서 나리라.”

그러자 헤로데 왕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에게 부탁합니다. 새로 태어난 ‘유다인의 왕’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알게 되면 자신도 경배하러 갈 터이니, 꼭 알려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경배하며 예물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이야기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꿈에 나타난 야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하시고, 그들이 이런 지시를 잘 지켰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그렇다면,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가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교회의 스승들이 이 부분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는지 살펴봅시다. 함께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그들은 ‘아기를 보고 경배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하느님께서 그 아기 안에 계시다고 믿지 않았다면, 과연 자신들이 바치는 경배의 영예로움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아기에게 경배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그렇게 믿었기에, 이해력 없는 어린 아기인 그분께 경배하기를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기를 자신이 지닌 신성으로 모든 것을 아는 분처럼 대했습니다. 그들이 바친 예물의 성격도 그들이 아기의 신성을 알아보았다는 증거입니다.”
- <마태오 복음 미완성 작품> 강해 2., <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성경 Ⅰ>, 89쪽.

교회의 스승들은 복음서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육신으로는 이해력 없는 어린 아기’에 불과한 나자렛 예수가 사실은 ‘신성을 지닌 존재’라고 고백하며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는 히브리 성서가 전하는 ‘오래된 예언이 성취된 놀라운 사건’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 교회의 스승들이 전하는 해설을 좀 더 읽어 봅시다.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박사들은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을 대신하여 그리스도를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이사야의 다음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알리는 이들이었습니다. ‘큰 낙타떼가 너의 땅을 뒤덮고 미디안과 에바의 낙타들이 우글거리리라. 사람들이 세바에서 찾아오리라. 금과 향료를 싣고 야훼를 높이 찬양하며 찾아오리라.’(이사 60:6-7). 박사들은 그분을 대번에 알아보았습니다 ... 그리고 자신들이 가져온 예물을 꺼냈습니다. 민족들이 바치기에 어울리는 선물이었습니다. 그분이 임금이심을 깨달은 박사들은 거룩하신 분께 어울리는, 자신들의 훌륭하고 값진 맏물을 그분께 바쳤습니다.”
- <마태오 복음 미완성 작품> 강해 2., <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성경 Ⅰ>, 89쪽.

교회의 스승들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모든 민족들’을 상징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한 이야기’는 오늘 1독서인 이사야서 60장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고백하며 선언했습니다.

이를 통해 아기 예수는 ‘신성을 지닌 존재’이며 ‘모든 민족들을 공의로 다스리고 해방하며 구원할 왕’으로 고백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예언의 성취’로 오신 분으로 선언됩니다.

나아가 이런 놀라운 이야기들은 오직 하느님의 계시를 전해 듣고 볼 수 있는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오늘 2독서인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3장 5절에서 6절까지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5 지금은 하느님께서 성령의 힘을 빌려 그 심오한 계획을 당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지만 전에는 지금처럼 인간에게 알려주시지 않았었습니다. 6 그 심오한 계획이란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면서 유다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한 몸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의 신이었던 야훼 하느님께서 온 세계의 모든 민족을 축복하고 복된 소식을 알게 하려고 ‘놀랍고 심오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계획은 히브리 성서를 통해 힌트처럼 주어진 예언들이 성취될 때 이뤄지기 시작하는데,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나자렛 예수’가 그 계획에서 중요한 키라고 강조됩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에게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는,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헤로데 왕과는 ‘또 다른 의미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분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의 여러 예언자들이 강조하며 전했던 예언의 성취로 이해되었습니다.

그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새로운 왕으로 오신 존재’임을 믿고 고백하며 전하는 이들은 ‘새로운 예언자들’이자 ‘거룩한 사도들’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신 예수’로 고백하고 전하는 모든 이들은, 이 땅을 임시로 다스리고 있는 여러 왕들과 통치를 따를 수 없는 존재들이 됩니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여러 왕들과 통치 방식들과는 ‘다른 왕과 다른 통치를 따르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매년 공현일 때마다 똑같이 설명해드리던 공현일의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공현대축일은 말 그대로 ‘나자렛 사람 예수에게서 신성이 드러나는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3세기경 동방 교회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행한 첫 번째 기적과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임한 것을 기념했다고 합니다.

이후 4세기 무렵 서방 교회에도 전해졌는데, 이때는 동방 박사들이 찾아와 아기 예수를 경배한 사건만을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교회와 신자들에게, 작고 별 볼 일 없는 동네에서 자란 ‘나자렛 사람 예수’가 우리가 구약 성서라고 부르는 히브리 성서와 선지자들이 예언하던 ‘메시아’라는 걸 확인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사건에서 메시아가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하는 능력들이 드러났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나자렛 사람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이 공적으로 드러난 사건은, 평범하지 않은 놀라운 일들과 함께 초기 교회와 신자들에게 회자되며 전해졌습니다.

그 가운데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모든 민족들의 왕이자 메시아’임을 알아본 이야기가 강조되어 전해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는 ‘왕이신 예수’를 고백하고 선언하는 순간이 ‘다른 삶을 살겠다’는 고백이자 선언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고백이자 선언이었죠.

이 때문에 성서의 여러 이야기를 전하고 기록한 겁니다. 그런 자신들 이후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의 수많은 왕과 통치’와는 다른 왕으로 고백하며 선언하려는 이들을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이 땅을 다스리는 ‘또 다른 형태의 수많은 왕들과 통치 방식’과 다른 왕의 통치를 기대하며 고백하고 선언합니다.

그와 같은 ‘다른 왕의 다른 통치’는 오늘의 시편인 시편 72편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홀수 절을, 제가 짝수 절을 번갈아 읽어 봅시다.

1 하느님, 임금에게 올바른 통치력을 주시고, 임금의 아들에게 정직한 마음을 주소서.
2 당신의 백성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 약한 자의 권리를 세워주게 하소서.
3 높은 산들아, 너희 언덕들아, 백성에게 평화와 정의를 안겨주어라.
4 백성을 억압하는 자들을 쳐부수고 약한 자들의 권리를 세워주며 빈민들을 구하게 하소서.
5 해와 달이 다 닳도록 그의 왕조 오래오래 만세를 누리게 하소서.
6 풀밭에 내리는 단비처럼 땅에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그의 은덕 만인에게 내리리니
7 정의가 꽃피는 그의 날에 저 달이 다 닳도록 평화 넘치리라.
10 다르싯과 섬나라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고 세바와 스바의 왕들이 예물을 바치며
11 만왕이 다 그 앞에 엎드리고 만백성이 그를 섬기게 되리라.
12 그는 하소연하는 빈민을 건져주고 도움받을 데 없는 약자를 구해 주며
13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가난에 시든 자들을 살려주며
14 억울한 자의 피를 소중히 여겨 억압과 폭력에서 그 목숨 건져주리이다.

오늘 공현대축일, 오늘날에도 우리가 ‘왕이신 예수’를 고백하고 선언한다는 의미와 무게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묵상해 봅시다.

그 왕에게 기대하는 다스림이 무엇인지, 그런 다스림과는 다른 이 땅의 ‘또 다른 형태의 왕들’에 맞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묵상해 봅시다.

우리 모두 이런 성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잠시 묵상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동방박사를 별빛으로 인도하시어 아기 예수를 경배하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이 세상 모든 나라를 참 빛으로 인도하시어 온 인류가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1독서, 이사야 60:1-6 / 2독서, 에페 3:1-12 / 복음, 마태 2:1-12

* 2019년 1월 6일, 공현일(The Epiph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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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9/01/07 02:07 2019/01/07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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