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성경 하나에 모든 종교적 정체성을 응집해 놓은 개신교” 페미니즘의 가능성!??

(관심갖고 기다리던 뉴스앤조이 연재 글 하나를 읽다가 체한 듯한 답답함을 제대로 느꼈다. 그래서 쫌 긴 글을 뱉어 냈으니, ‘종교와 페미니즘’에 관심 없는 분들은 패스하셔도 ^^;; )

‘난감한 글’을 읽을 때면 체한 듯한 답답함 때문에 불쾌해 질 때가 있다.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알 듯도 한데, 그게 그리 단순 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난감하다.

그런데 이런 난감함을 그저 ‘기부니 나쁘다’는 문제로 치부하는 듯하면 더 답답해진다. 더군다나 ‘종교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정서의 영역’을 가볍게 여기는 듯하면 더 난감해지곤 한다.

오늘 그런 글 하나를 읽었다. 뉴스앤조이에서 그분의 연재를 알리는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미묘한 난감함’을 느꼈었다. 그리고 몇몇 지인에게 그 글을 소개하고 감상을 물어봤다.

헉.. 나보다 더 격한 반응들.. 하지만 나는 실제 연재 글을 읽고 난 뒤에 판단하자고 답했다. 그런데 그분의 첫 번째 연재 글을 읽고 나니, 뭔가 더 얹힌 느낌이 드니 이것 참 어찌해야 할까.

이분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자 ‘어..!??’ 라는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자유주의 종교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을 종교보다 우위의 범주로 두고 종교를 그 기준에 맞게 해체해 왔다. 종교 간 차이보다는 페미니스트냐 아니냐의 차이가 더 유의미했다. 이 말은, 기독교 페미니스트들은 같은 기독교인지만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보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같은 페미니스트인 다른 종교의 혹은 무종교의 사람들과 더 동질감을 느낀다는 말이다. 서로 모이면 너희 종교는 얼마큼 페미니즘의 성과를 이루었느냐를 논의하면서 서로 연대 의식을 다진다. 우리가 교회에 모였다가 사명을 안고 세상으로 흩어지듯, 페미니즘의 보편성 아래 함께 모였다가 사명을 안고 자기 종교로 흩어진다. 이들이 결국 지키고자 하는 것은 페미니즘이지 종교가 아니다. 이미 페미니즘을 종교보다 우위의 보편적 기준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페미니스트들에게 그 종교성을 유의미하게 지켜 주는 것은 바로 성경이다. 가톨릭과 달리 전통도 전례도 마다하고 오직 성경 하나에 모든 종교적 정체성을 응집해 놓은 개신교는 성경을 해체하면 종교적 기반도 상실하게 된다. 이것은 페미니스트를 비롯해 모든 여성에게 큰 숙제이자 도전이다. 성경에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가부장적 구절이 많고, 성경의 권위를 빌려서 교회가 가부장적 가치들을 옹호하고 전파해 왔기 때문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으로 인정하기에는 지금 우리 정서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이 성경을 이리저리 쪼개고 해체하고 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죽은 거위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 뜻이 계시가 된 것이라면 성경을 해체하고 난 후 우리가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은 공허한 이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성경을 다 하나님의 뜻으로 받자니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부분이 많다. 이 딜레마를 안고도 종교 안에 머물기로 선택한 여성들에게 특별한 지혜와 영감이 필요한 이유이다.”

아마 여기서 양혜원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기독교 페미니스트”는 ‘개신교 페미니스트’를 말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그분이 명명한 “자유주의 종교 페미니즘”과 “가톨릭 (전통과 대화하는 페미니즘)”이 있는 것 같다.

여기까지는 왜 이렇게 말하는지 알 것도 같은데, 곧바로 따라오는 질문들.

“페미니즘의 보편성”으로 얘기되는 ‘그 페미니즘’은 대체 뭘까.. 라는 질문. 그리고 “페미니즘을 종교보다 우위의 보편적 기준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라고 상정되는 '그 페미니스트들.. 은 누굴까’ 라는 질문.

나는 ‘이미’ 여기서 ‘턱’하고 막혔다.

‘기독교=그리스도교’라는 건, 웬만한 신학이나 종교학 과정 초입에서 가르치는 ‘기본’이다. 그런데 이를 아무렇지 않게 ‘기독교=개신교’로 상정하고 말하는 ‘종교학자’라니.. 그리고 대체 “자유주의 종교 페미니즘”이란 뭘 말하는 걸까.

더 황망한 건, 이 분이 말하는 “기독교 페미니스트” 안에는 나와 같은 성공회나 감리교 또는 루터교 등 세계 그리스도교 스펙트럼 안에서 꽤 규모 있게 활동하는 개신교 그룹들은 ‘자리가 없는 것 같다’.

왜냐고? (좀 심하게 말해서) 이분이 정의하시는 “개신교”에는 전통이나 전례의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가톨릭과 달리 전통도 전례도 마다하고 오직 성경 하나에 모든 종교적 정체성을 응집해 놓은 개신교는 성경을 해체하면 종교적 기반도 상실하게 된다.”

양혜원 선생님이 말하는 "기독교 페미니스트”는 ‘개신교 페미니스트’를 뜻하는데, 그중에서도 ‘(일부) 개혁교회 전통’이나 ‘복음주의 맥락’에 서있는 페미니스트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참조해야 할 모델이 “이슬람 페미니즘”이라고!??? @.@;;;;

아, 그리고 이분이 상정하고 있는 것만 같은 ‘(일부) 개혁교회 전통’이나 ‘복음주의 맥락’에 서 있는 개신교 그룹에 대해서도 질문이 생겼다.

그 그룹이 정말 ‘자기들 맥락에서’ 성경을 해체하거나 재구성하지 않는다고!? 그들이 성서에서 추론하거나 재구성해서 만든 전통이나 전례가 없다고??

내 눈앞에 ‘실체로 존재하는 그 그룹들’이 아닌, 어떤 이론이나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그룹이 있나 보다. 전통도 전례도 없이 “오직 성경 하나에 모든 종교적 정체성을 응집해 놓은 개신교”가 있다니 말이다.

정말 이런 게 있다면, 그건 루터나 칼뱅도 울고 갈 일이다. 그들조차 만나지 못한 ‘상상 속 동물’ 같은 것이니.. ㅠ.ㅠ

더군다나 이분의 글에서 ‘불명확하게 상상되는 존재’는 또 있다.

“우리가 교회에 모였다가 사명을 안고 세상으로 흩어지듯, 페미니즘의 보편성 아래 함께 모였다가 사명을 안고 자기 종교로 흩어진다.”

그러니까 양혜원 선생님의 글에서는 “페미니즘의 보편성” 아래 뭉친 ‘종교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양혜원 선생님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페미니즘을 종교보다 우위의 보편적 기준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주장이다.

일단 내 주변에 있는 ‘다양한 종교 배경’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면에서는 보편적인데 어떤 면은 독특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 배경’ 때문에 생긴 보편성과 독특함도 있고, 그들이 서있는 맥락의 ‘페미니즘들’에 따라 생긴 보편성과 독특함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양혜원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페미니즘을 종교보다 우위의 보편적 기준으로 상정”한 종교 페미니스트들을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ㅡ..,ㅡ;;;

이쯤 되니, 내가 만나는 ‘다양한 종교 배경’을 가진 페미니스트들과 양혜원 선생님이 만나는 종교 페미니스트들이 ‘꽤 다른 이들’인 것만 같다.

나는 각자가 서 있는 ‘현재의 페미니즘’을 하나의 과정이자 교차 지점으로 인식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더 많이 만난다. 그리고 나 또한 그 맥락에 더 깊이 공감하는 편이라, 그 방향으로 공부하며 동행하는 쪽이다.

양헤원 선생님은 첫 번째 연재 글의 서두에서, 종교가 시대에 따라 변할지라도 “종교는 종교라는 자신의 영역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인간이 원래 필요로 했던 의미들을 제대로 부여해 줄 수 있다.” 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내 주변의 종교 페미니스트들이 강조하는 ‘교차성’이란 개념만 제대로 이해해도, 그들이 ‘종교 나름의 영역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교차성이란 기본적으로 상호 존중과 식별이 공존할 때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존중과 식별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게 존중되는 것처럼 보이던 부분이, 어느날 임계점에 다다라 식별을 위한 투쟁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내 주위의 종교 배경이 있는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 하나로 세계의 모든 것을 인식하거나 보편적 우위를 주장하는 걸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보다는 일부 근본주의 성향이나 그 맥락과 가까운 종교인들이 종교를 보편적 기준으로 상정하고 세계를 인식하거나 우위를 주장하는 걸 자주 목격한다.

이쯤 되니, 뭔가 더 난감하다. 이후 글도 읽어봐야 하겠지만, 이분 인터뷰 글에서 느꼈던 ‘미묘한 난감함’이 점점 사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 왠지 이분이야말로 ‘(일부) 개신교’와 ‘페미니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둘 다 놓칠 것 같다는 불안함이 드는 건 왜 일까.

그럼에도 이분 글은 다시 한 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두세 가지 질문을 갖고 말이다.

첫째, ‘이슬람’이라 명명되는 사회와 우리가 분명 ‘비서구권 사회’인 건 맞는데, 그렇다고 이슬람 사회와 한국 사회를 단순히 ‘비서구권 사회’라는 한 범주로 묶기도 어렵다. 이슬람 사회는 ‘종교 권위나 권력’이 다른 것들의 ‘해석 기반’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우리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그런가?

둘째, “이분이 말하는 서구의 자유주의”는 대체 뭘까? 보수적인 한국 개신교회 일부에서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 ‘허수아비’인 자유주의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서구의 특정한 진보 이념이나 사상을 통칭하는 말인 건가??

셋째, 지구화 시대 이후 한국 사회는 1/3세계를 비롯해 여러 사회들과 ‘생각보다 더 깊고 넓게’ 연동되고 있다. 그 여파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다. 그 안에서 1/3세계와 2/3세계와의 관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다시 설명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서구 사회의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족쇄가 되거나 함정이 되기도 한다. 양혜원 선생님의 글에서도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때문에 우리가 일부 이슬람 페미니스트의 작업을 봐야 서구 사상이 우리와 안맞는 부분이 꽤 있다는 걸 알 수 있을까.

흠.. 이런 질문을 갖고 양혜원 선생님의 첫 번째 연재 글을 다시 읽다 보니, 이분이 이번 글의 결론처럼 말한 부분이 더 애매하게 다가온다.

“이슬람 페미니즘의 작업은 비서구 전통에서 경전을 해체하지 않고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지키면서 하는 페미니즘 사례를 보여 준다. 그들이 서구 사회의 자유주의와 세속주의에 대항하는 방식은 그들처럼 비서구 사회에 속한 우리에게 참고가 될 만하다. 물론 한국의 기독교가 자기 전통 안에서 하는 작업은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유교 문화 기반 위에 서구 기독교가 이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슬람 페미니스트들의 작업은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이 되어 온 같은 비서구권 사회인 우리에게 서구의 자유주의가 자신의 옷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신선한 자극제이다.”

점점 궁금해진다.

“오직 성경 하나에 모든 종교적 정체성을 응집해 놓은 (일부) 개신교” 맥락에 서있는 기독교 페미니즘을 말하고 싶은 것 같은 양혜원 선생님의 도전.

나는 어디까지 수긍할 수 있을까. 첫 번째 글을 읽고 나니, 자신이 없어진다.

* 덧. ‘이론과 현장은 다양합니다..’ 정도라면 모르겠으나.. ㅠ.ㅠ

——————

[뉴스앤조이] “한국 기독교 페미니스트가 이슬람 페미니즘 주목해야 하는 이유”
[양혜원의 종교 페미니즘 수업] 가부장제로부터 종교를 구하려는 노력①
양혜원 | 승인 2019.01.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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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9/01/06 09:00 2019/01/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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