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물론, 최근 대다수 한국 교회는 혐오와 배제, 차별과 뻔뻔함이 뭔지 온 힘을 다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상대적 약자일 수 있는 우리 공동체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 고백과 경험을 넘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끄럽게 여길 사람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우리 함께 오늘 복음서 말씀인 마르코의 복음서 8장 38절을 읽어 봅시다.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이라 지방에 있는 마을을 향해 가다가 제자들과 문답을 나누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하더냐?”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각자 들은 바를 이야기합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번엔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란, 히브리어 ‘메시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의 답변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야훼 하느님의 메신저인 여러 예언자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더 특별한 존재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놀라운 신앙 고백이자 찬양을 한 베드로가, 예수께서 죽임 당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알려주시자 그 놀라운 신앙은 온데간데없이 예수님을 말리느라 바쁩니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마르 8:32b)

베드로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 상반된 반응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 오늘 2독서인 야고보의 편지 3장 9-11절을 한 목소리 읽어 봅시다.

“우리는 같은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내 형제 여러분, 이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같은 샘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이 함께 솟아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교회는 종종 ‘일관되지 않은 상반된 언행’을 일삼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서 말씀이 기록하여 전하는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실상 베드로의 그리스도는 그저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경험 안에 갇힌 그리스도’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기억하며 전하는 그 위대한 예언자들보다 더 뛰어난 분이라 고백해놓고는, 곧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막아서는 잘못을 범합니다.

오늘 복음서가 전하는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 고백과 경험을 넘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같은 입에서 상반된 고백과 반응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겠죠.

만약 베드로가 오늘 1독서인 이사야서가 기록하여 전하는 것처럼 “주 야훼께서 나를 도와주시니”라 고백할 수 있는, 그런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동행하는 이였다면 그는 같은 입으로 상반된 고백과 반응을 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오늘 1독서인 이사야서 50장 7절부터 9절까지 함께 읽어 봅시다.

“주 야훼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어 차돌처럼 내 얼굴빛 변치 않는다.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줄 알고 있다. 하느님께서 나의 죄없음을 알아주시고 옆에 계시는데, 누가 나를 걸어 송사하랴? 법정으로 가자. 누가 나와 시비를 가리려느냐? 겨루어보자. 주 야훼께서 이렇게 나를 도와주시는데 누가 감히 나를 그르다고 하느냐?”

베드로가 이처럼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가졌다면, 그는 자신의 신앙 고백과 경험을 넘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아, 내 신앙 고백과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있구나. 그렇다면 그 길을 묵묵히 따르며 예수님께 ’하느님의 일‘에 대해 묻고 들어야 하겠구나.’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 ‘예수께서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2018년, 오늘 이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같은 질문을 하신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 자신 있게 답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와 다르게 우리는 지난 2천 년의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해 놀라운 하느님의 은총과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갑자기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경험과 신앙 고백을 뛰어넘는 길로 나아가겠다고 말씀하시면 어떨까요? 우리는 오늘 복음서가 기록하여 전한 베드로와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요?

교회가 2천 년 동안 가르치고 지켜온 신앙 고백이나 경험과 다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만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요?

2018년, 이 땅의 많은 교회는 이슬람 신앙을 지키는 난민이나 이주민, 성소수자 등 지금까지 자신들이 가르치고 지켜온 신앙 고백이나 경험을 넘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질문 앞에 당황하거나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끄럽게 여길 사람들’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필리핀 신앙 공동체는 어떤가요? 우리가 용산나눔의집 이름으로 동행중인 대한성공회는 어떨까요?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가르치고 믿어온 그 신앙 고백과 경험을 넘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 그 낯선 예수 그리스도의 질문 앞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들이 될 자신이 있나요?

우리, 오늘의 시편인 시편 116편 5절부터 9절까지 함께 읽어 봅시다.

“야훼께서는 너그럽고 의로우신 분, 우리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 미약한 자를 지켜주시는 야훼이시라. 가엾던 이 몸을 구해 주셨다. 야훼께서 너를 너그럽게 대하셨으니 내 영혼아, 너 이제 평안히 쉬어라. 내 영혼을 죽음에서 건져주시고 눈물을 거두어주시고 넘어지지 않게 보호하시니 내가 생명의 땅에서 야훼를 모시고 살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며 사는 사람들, 교회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사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시편 말씀처럼, 그 무엇보다 먼저 야훼 하느님께서 당신과 나를 너그러움과 의로움과 자비로 대하고 지켜주셨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 고백과 경험을 넘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질문에 겸손함과 정직한 태도로 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 묵묵히 동행해야 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인과 교회만이 “같은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우리 모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올 수 없다는 말씀을 꼭 기억합시다. (야고 3:9-10a)

우리 모두 이런 성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잠시 묵상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 본기도
자비하신 하느님, 구하오니, 우리를 도우시어 서로 용서하며, 어떤 처지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며,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1독서, 이사 50:4-9상 / 2독서, 야고 3:1-12 / 복음, 마르 8:27-38

* 2018년 9월 16일, 연중 24주일(Seventeenth Sunday after Pentecost Proper 19).

(2018.09.15. pm 09.52)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Posted by 자캐오

2018/09/18 08:20 2018/09/18 08:20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www.zacchaeus.kr/rss/response/1117

Trackback URL : http://www.zacchaeus.kr/trackback/1117

Leav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
« Previous : 1 : 2 : 3 : 4 : 5 : 6 : ... 1000 : Next »

블로그 이미지

가난, 소외, 여성 & 그 언저리에 함께 하는 무지개빛 성령님...

- 자캐오

Calendar

«   2018/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346115
Today:
202
Yesterday:
283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