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제주 4.3과 오늘날 자기 생계와 주거를 해결하는 자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겹쳐보이는 지점이 있다. 원래 그 지점을 중심으로 말씀 나눔을 준비했으나, 현장 사정은 늘 내 뜻과 상관 없다. 그래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억울한 싸움 앞에서 끈질기게 저항하는 두 분 사장님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 용산해방촌나눔의집도 주인의 당당한(!) 횡포 앞에서 억울한 상황이 되어 쫓겨난다.

2018년 4월 3일, 궁중족발을 지키기 위한 현장 기도회, 하늘 뜻 펴기. 여러 가지 이유로 준비한 원고를 건너 뛰며 이야기를 나눴다. 준비했던 원고는 여기에 올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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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뒤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2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 때 나는 옥좌로부터 울려 나오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요한의 묵시록 21:1-4, 공동번역개정판)

“하느님의 집은 우리가 사는 곳에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2018년 4월 3일, 궁중족발을 지키기 위한 현장 기도회. 오늘 성공회 길찾는교회와 저는 하느님의 집이 머물러 있는 이곳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노래하며 빵과 잔을 나누러 달려왔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많은 분들이 기억하며 아파하듯이 4월 3일은 이 땅과 역사의 진짜 주역인 민중이나 인민에게 숨이 막히도록 슬픈 날입니다. 특히 이 땅에 발 딛고 살며 아직 양심이 고동치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더욱 슬프고 죄스러운 날입니다.

오래 전부터 기독교 신자이자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건, 정의와 평화의 편에 서서 살겠다는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이자 사회를 향한 증언자가 되는 과정을 뜻했습니다. 제가 속한 성공회를 비롯해 대부분의 기독교 신앙 공동체가 세례문답에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살겠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부르신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정의에 근거한 사랑을 실천하라’고 이 땅에 보내신 게 기독교 신자와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독교 신자와 교회가 ‘사상 검증과 복수’라는 이름으로 학살극의 일원이 되어 앞장섰던 게 제주 4.3입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적극적인 앞잡이가 되어 저항과 학살의 계기가 된 거죠.

이런 날, 저희는 억울하지만 정의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궁중족발 현장에 왔습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노래하며 빵과 잔을 나눌 겁니다. 왜냐면 궁중족발 윤경자, 김우식 사장님의 억울함에는 이 땅에서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기독교 신자들과 교회의 잘못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 빚진 마음과 미안함 그리고 연대의 마음으로 왔습니다.

제주 4.3. 전해지는 증언과 기록에 의하면, 제주 4.3으로 알려진 당시 저항과 학살의 이면에는 일부 보수 개신교회와 신자들의 욕망과 만행이 깔려 있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서북청년단은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믿음과 그 하나님이 세우신 정권에 대한 충성심에 가득 차, 제주에서 터져 나온 통일에 대한 열망과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갈망을 ‘좌익 선동과 폭동’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창으로 무고한 마을 사람들을 찌르면 “하나님!”을 외쳤다고 합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끔찍하고 죄스러운 과거입니다.ᅠ

그런데 2018년 이 땅에서 기독교 신자들과 교회는 그때와 달리 살고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ᅠ

이 땅의 수많은 교회와 신자들은 하느님에 대한 선택적 믿음과 더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사회 구조에 대한 충성심에 가득 차,ᅠ땅은 하느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이나 토지공개념과 같은 정책을 ‘좌파의 야욕과 선동이자 사회주의국가 조항’이라고 매도합니다. 그리고 인권과 평등이 이뤄지는 사회를 만들어 더불어 잘 살자고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낙인찍고 자신들은 ‘참된 신자이자 애국자’라고 자랑합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들에게 ‘사유화’는 하느님의 가르침이고 ‘더 가진다’는 건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이런 신자와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앞에 나타나 정의에 근거한 사랑이나 자비와 공적 나눔을 가르치면 언제든지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매달 수도 있습니다.

‘똑바로 봐라! 우리한테 정의, 사랑, 평등과 화해, 자비와 공적 나눔 같은 걸 떠들면 언제든지 빨갱이로 만들어 이 사회와 교회에서 매장시켜버리겠다’ 라고 기세등등하게 떠듭니다.

그리스도교 교회와 성서는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 하나를 알려주고 계속 확인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세계는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바로 하느님의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그 하느님의 것을 아주 잠시 위탁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와 신자들은 이 중요한 사실을 온몸으로 증언하며 실천하라고 ‘우리들의 하느님’이 부른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와 성서의 가르침을 망각한 신자들과 교회가 이 땅에 넘쳐납니다. 하느님의 것은 더 가진 자들이 독점하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기 위해 서로 나누고 도와야 한다는 귀한 진리 앞에 침묵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그런 망각과 침묵 때문에 천주교,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등 이 땅에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가 수만이오, 신자들이 수백만 명인데도 이 땅은 ‘하나라도 더 가진 사람들만 행복한 천국’이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망각하고, 외쳐야 할 일 앞에선 침묵하는 기독교 신자와 교회는 ‘우리들의 하느님’과 상관없는 존재입니다.

한 명의 기독교인이자 성공회 신자이며 사제인 저는 믿습니다. ‘생계와 주거를 해결하는 자리는 하느님의 선물’임을 굳게 믿습니다.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와 우리 신앙의 앞선 이들은 그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했습니다.

부활 1주간인 오늘, 우리는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야기를 우리네 삶으로 다시 사는 사람들이자 공동체입니다. 오늘 말씀인 요한의 묵시록 21장 1절에서 묵시록 저자가 목격한 “새 하늘과 새 땅”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야기에 근거한 새로운 질서와 세계를 뜻합니다.

우리 오늘 말씀인 요한의 묵시록 21장 3절부터 4절까지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그 때 나는 옥좌로부터 울려 나오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성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우리들이 사는 이 곳에 하느님의 집이 있습니다. 억울한 사람들의 끈질긴 저항이 있는 이곳은 바로 하느님이 계신 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는 것은 윤경자, 김우식 사장님의 삶의 터전이자 생계 수단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들의 합법적인 집행을 방해하는 게 아닙니다. 억울한 사람들을 편드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집이 억울하게 쫓겨나는 것을 막아내는 겁니다.

오늘, 제주 4.3을 학살의 역사와 함께, 침묵하지 않은 저항의 날로 기억하는 시간. 우리는 이 곳에서 더 가진 자들의 못된 행실과 법의 허점 그리고 그들의 횡포 앞에서 찢겨나가고 상처 입은 두 분을 봅니다. 그러나 그런 횡포와 폭압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다시 싸우는 두 분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저항을 봅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우리들의 망각과 침묵으로 계속되는 ‘더 가진 사람들의 도둑질’ 앞에 분노해야 합니다. 큰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우리들의 하느님 앞에서, 더 이상 억울한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외쳐야 합니다.

우리 함께 모여 기도하고 노래하며 빵과 잔을 나눕시다. 그렇게 ‘우리들의 하느님’과 하나됩시다. 하느님이 편드시는 이들과 이어집시다. 이 땅에서 작고 연약한 사람 취급받는 이들의 편인 하느님, 쫓겨난 사람들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러 갑시다~

저는 쫓겨날 위기에 놓인 사람들의 손을 잡는 건, 우리 주님의 손을 붙드는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 그것이 주님께서 몸소 가르치신 희망이고 연대임을 실천합시다.

우리 모두 이런 성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잠시 묵상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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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04/05 02:12 2018/04/05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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