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기.

이번 사순절기에는 자주 마시는 커피를 잠시 끊을까 했었다. 그러다가 내게 커피 한 잔은, '즐거움'보다는 '일을 위한 습관이나 동료'라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즐거움이 아니라면, 끊기 보다는 그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하던 일을 좀 바꿔보는 걸로 방향을 정했다.

최소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엔 하던 일을 멈추는 걸로. 그리고 그냥 커피 한 잔이 허락하는 멍한 시간을 누리거나, 내 길벗들의 거친 삶을 기억하며 잠시 기도하는 걸로.

사순절기에 성공회, 천주교, 정교회와 같은 전례적 교회들은 물론, 많은 개신교회들에서 '절제와 극기'를 강조한다.

그에 비해 내가 속한 길찾는교회에서는 따로 절제와 극기를 강조하지 않았다. 그저 매주 목요일에 있는 '거리 기도회'에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만 나눴다.

왜?

이미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원하지 않는 절제와 극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또 무슨 절제와 극기를 강조할까 싶어서였다. 길찾는교회 식구들 가운데는, 또 하루가 너무 힘겹거나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또 하루가 너무 감격스러운 사람들이 많다. 그런 식구들에게 대체 어떤 절제와 극기가 필요한 걸까.

주변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은 하나같이 힘든 시기란 걸 확인해주는 얘기들 뿐이다. 이렇게 힘든 시기가 되면, 더 가진 사람들이 버티기 쉬운 세상이 된다. 평소에 쌓아둔 것도 많은 데다가, 구조 자체가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는 형태로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맞이하는 사순절기.

내게 이번 사순절기는 '좋은 사람들'이 살아남기를 기도해야 하는 시기다. 대세에 몸을 맡겨 사는 게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변화에 주목하면서 공명과 공생을 위한 몸부림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의 생존을 기도해야 하는 사순절기. 내게 커피 한 잔의 시간은 그 기도의 시간으로 쓰여질 것이다.

“금욕은 힘있는 자들의 사치다. 힘없는 이들은 안중에도 없다. 왜? 그들의 삶이 이미 충분한 십자가와 고통을, 하느님마저 비울 만큼 허무의 체험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의 과제는 생존과 창조다. 자신들에게 남겨진 최소한의 선물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이다. 보잘것없는 물질을 가지고 자기 실존의 무로부터 어떻게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것인가이다. 여기에 새 출산과 새 창조가 있다."

- 성공회 매튜 폭스 신부 <원복>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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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5/03/04 01:12 2015/03/04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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