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년 10월 19일, 말씀나눔 ]

"그 너머를 바라보는 희망의 신앙."

 말씀을 나누기 전에 먼저, 우리 가운데 허락된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잊지 말자고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옆 사람과 이 곳에 모인 모두에게 주님의 축복과 격려를 전합시다. "우리는 문제 너머를 바라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위르겐 몰트만의 제자이기도 한 이신건 박사가 위르겐 몰트만의 글을 모아놓은, 『희망은 어디서 오는가?』 라는 책의 첫째 마당은 깔뱅의 글이 인용되며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고통과 죽음의 경험적 현실과 모순 되는 약속의 말씀 속에서 신앙은 희망 위에 우뚝 서게" 된다.
 오늘의 복음 말씀에 기록된 베드로의 고백과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그리고 성령님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예표(豫表)(또는 보증)를 통해 성서는 우리에게 위와 같은 희망의 신앙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태오의 복음에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는 것으로, 마르코의 복음에서는 간략하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베드로의 고백 이야기는, 오늘 본문인 루가의 복음에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여러분도 알고 계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의 로마제국 지배 하에서는 많은 '그리스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예수는 그 많은 그리스도들 중에 한 명이었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 루가는 베드로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다고 증언함으로 예수님을 그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과는 다른,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던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독특하고 유일한 참 메시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베드로의 고백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고백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길, 당신께서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배척받다가 죽기까지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으로 히브리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참 메시야이신 주님이라면 당연히 승리의 왕으로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던 당시의 제자들과 이후 이 대목을 읽었을 '루가의 복음서'의 독자들에게, 이 대목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의아한 대목이었을 겁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다른 그리스도들은 제각기 이 세상에서 이뤄질 약속의 나라를 보여주며 자신을 따르기만 하면 당장 그 나라를 줄 듯 약속하는데, 이 사람은 왜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그리고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허풍을 치나?', '왜 그 모욕과 수치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못 박혀 고통스럽게 죽는 것으로 끝날 것이 뻔한 일인데, 대체 이 사람은 뭘 믿고 자신을 위해 죽는 사람은 살 것이라고 말하나?'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사람들은 이렇게 수군거리거나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어 갔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귀에 예수님의 다음 말이 들려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영광스럽게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어!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영광스럽게 온다고? 지금 이 사람이 자기가 바로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가?'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다시금 예수님의 말씀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 나라를 볼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던 제자들과 사람들의 생각을 파고들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고난과 배척과 죽음의 냄새를 맡고는 슬금슬금 뒷걸음치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산다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뭔가 다른 줄 알았더니, 사람들의 말처럼 또 바알세불의 힘으로 사기를 치는 사기꾼이었네 그려.'하고는 뒤돌아 가기도 합니다. 예수님 주변에서 힘과 권력의 냄새를 맡고 어슬렁거리던 이들은 십자가의 두려움에 굴복하고 도망가야 할지, 아니면 천사를 거느리고 온다는 예수의 말을 못 이기는 척 믿고 계속 눌러 있어야 할지 계산하기에 바빠집니다.
 지금 예수님의 주위는 시장판처럼 온갖 것들이 몰려 있습니다. 고난과 배척과 죽음의 냄새도, 의심과 저주의 눈빛과 욕설들도, 어떤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계산하는 이해타산의 머리 굴리는 소리들로 말입니다.
 이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따르기만 하면, 믿기만 하면, 그저 곁에만 있으면 될 것 같았던 예수님의 주변이 왜 이리도 더럽고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걸까요. 기적과 진리와 해방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분인데, 주변은 왜 이리도 의심과 유혹과 억압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져 있는 것일까요?

 저 또한 생각해보니,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고 나선 길이 이랬습니다. 미아동 산골짜기의 한 장로교회에서 신앙의 유산을 이어받은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자라다가 화석화된 교회의 부조리함과 억압을 만난 순간, 불신자 전교조 선생님들을 만나 신앙이 너무 좋아 대학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고등학교 3년은 개, 돼지처럼 맞아야 한다며 패는 학생부 선생님과 싸워야하는 고등학생 운동권의 아이러니한 현실에 부딪힌 순간, 역동적인 신앙과 살아있다는 체험과 느낌이 가득해서 제 발로 찾아간 성령운동을 하는 교회와 YWAM에서 유급간사와 Top 리더로 시작된 사역이 한쪽 날개로 나는 새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난 순간.
 그 모든 순간에 제가 따르던 예수님의 주변은 더럽고 지저분했고 어지러움이 가득했으며, 의심과 유혹과 억압의 그림자에 질식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렇게 어둠이 짙어가고 제가 따르던 예수님의 뒷모습이 희미해져갈수록, 뭔가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기운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아마도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 혼란 가운데서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들과 저는 같은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눈에 보이던 것들, 그토록 확실하다고 믿던 것들이 흔들리고 회의와 의심이 드는 그 순간, 그 혼란의 순간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그 순간, 철옹성 같은 이성의 벽에 금이 가고 그 틈으로 희망의 성령님이, 그 성령님을 통해 이 땅에 예표로서 임하는 하느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의 성령님은 부조리하고 부적절하며 의심과 유혹과 억압이 가득한 현실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게 하거나 낙관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돌아가게 하거나 피해가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해서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리고 목숨까지도 버린 채 목숨보다 더 소중한 뭔가를 위해 목마름에 그 혼란함을 지나서 예수님의 옷깃을 붙들려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맛보게 하여 그 갈증을 해갈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약속합니다.
 그들은 루가복음 8장 10절에서 약속된 것처럼, 그 짙은 어둠의 혼란함 앞에서 떠나버린 다른 사람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한 그 비유의 핵심인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06년 10월 19일, 바람숨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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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07/04/28 18:42 2007/04/2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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