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앰네스티 한국지부 소식지 9월호, "씨줄과 날줄' 꼭지에 실린 조효제 선생님과의 인터뷰 원문입니다. 인터뷰 기사를 실으면서, 이 글에 대한 조효제 선생님의 검토를 받았기에 원문 그대로 이 곳에 올립니다.


변함없는 푸른 청년, 조효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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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이야기를 시작하며. 

하는 일의 특성 상, 이런저런 여름행사로 조금씩 지쳐가던 몸과 마음‥. 그런 내게 2006년의 여름 더위가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던 8월 초의 여름. 그때, 그런 나의 몸과 마음을 다시금 꼼지락거릴 수 있게 만들어준 만남이 하나 있었다. 그 이름 석자, 조 효제. 현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로, 찬찬한 문체와 내용으로 격정적인 글이 지니기 힘든 설득력으로 유명한 분이다. 그분을 만났던 그날의, 지쳐 있다가 다시금 꼼지락거리며 살아났던 그 느낌을 그대로 전할 수 있을지 자신 없지만, 여러분과 그 아름다운 분과의 만남을 나누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 이야기 하나. 조 효제 선생님과 민김 종훈의 시선교차.

같은 성공회대학교에서 한 명은 대학원생으로 한 명은 교수로 있지만, 사실 선생님과 나는 많이 다른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할지 조금은 어려웠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말문을 열어 주셨다. 이 고마움! ^___^

조 효제(이하, 효제): 아, 지난번에 학교에서 인사를 나눴던 그 분이군요.
민김 종훈(이하, 종훈): 예, 그 때는 지나가듯이 인사를 드려서 죄송했습니다.
효제: 그럼, 지금 성공회대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시는 건가요?
종훈: 예, 성직과정(M.Div)에 있죠. 다른 신학대학원에서 논문학기에 논문 쓰다가 엎고서 다시 들어가서 아직 1학차입니다.
효제: 그렇군요. 제가 종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학교가 성공회대학교라서 곁에서 본 성공회는 다른 곳에 비해서 진보적인 모습이 보이던데요. 종훈씨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종훈: 예, 상대적으로 보면 그런 면이 있죠. 저도 같은 그리스도교이긴 하지만 다른 성향의 공동체에서 와서 잘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런 제가 보기에도 일면 경직되어 있는 모습도 있고, 한국의 성공회 공동체는 전체 성공회 공동체에 비해서 일면 보수적인 색깔이 뚜렷한 모습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원론적으로 종교라는 부분이 보수적 경향이 있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제가 봤을 때는 한국의 성공회도 마찬가지이지만, 내면적(內面的)인 신앙고백이나 내적으로 표현되는 영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룹들과 대(對)사회적인 섬김과 외적으로 표현되는 영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룹들이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것처럼 양분되어 아까운 힘을 소진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반성하고 재고되어야 하는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내면적이거나 내적으로 표현되는 영성에 깊이 있게 들어갈수록, 세상을 향한 마음과 행동도 더 크게 개방되어 세상을 향한 섬김으로 나타나는 것이 제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 선배들의 당연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건강한 종교이자 그리스도교의 양 날개가 서로를 꺾으려는 것은 참 안타까운 모습이라고 여겨집니다.
효제: 그렇군요. 제가 종교 영역에 대해 잘 모르지만, 종훈씨와 같은 분들한테 제가 번역해서 얼마 후에 나올 토머스 머튼Tomas Merton의 『평화론』이라는 책이 도움이 될 것 같군요. 거기서 토머스 머튼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현대의 수도자로 유명한 그는 말하길, 진정한 영성가로 내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죠.
종훈: 그렇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토머스 머튼 선생님이 가르치는 영성과는 조금 다른 빛깔의 영성을 추구하는 편이지만, 그 분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이 됩니다. 제가 존경하는 여성신학자인 독일의 고(故) 도로테 죌레Dorothee Söelle 선생님 같은 분이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중에서 일상적이고 저항적인 의미로서의 신비주의에 집중하면서 반핵․반전 운동과 환경운동 그리고 해방신학과 생태신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라고 봅니다.


# 이야기 둘.
   조효제 선생님, 앰네스티(AI, 이하 AI로 표기)를 사랑하기에.

종훈: 크던 작던 이런저런 인터뷰를 해봤지만, 이번 인터뷰는 다른 인터뷰들보다 많이 긴장되는 인터뷰라서 나름대로 몇 가지 정도의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때론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해 주셔야 하기에 쉽지 않거나 실례가 되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으니,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괜찮은 부분까지만 대답해 주시면 그것으로도 감사하겠습니다.
효제: (들고 계시던 PDA를 옆으로 내려놓으시고 가방에서 작은 메모장과 펜을 꺼내 드시며) 예, 그러죠.
종훈: 일단 두서없이 준비해온 질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삶의 화두가 있으시다면?
 2. 조효제 선생님이 생각하는 '인권'이란?
 3. 인권이란 가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4. 인권이란, 배운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야 한다면?
 5. 인권운동의 분야에서 AI의 활동이 보수적인 경향이 있고 뒷북친다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해야 한다면?
 6. 진보적인 지향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생활 속의 실천은 어떻게?
 7. 개인적으로 좋아하시는 풍경은?
 8. 선생님의 '쉼'은?
 9. 가사 노동 분담은 어떻게?
효제: (한동안 생각하시던 선생님께서 조심스레 입을 여시며) 종훈씨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동안 많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인간 조효제'의 시선이 담긴 인터뷰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 되겠네요. 전에 간간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글을 쓰긴 했지만, 저는 '학자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것이 있는가?'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조금의 허영 없이 자기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제가 사랑하는 AI 한국지부이기에 제 개인적인 이야기라도 편안하게 이야기해 드릴까 합니다.
종훈: 그렇게 해 주신다면 개인적으로도 기쁜 일이 될 겁니다. (웃음)
효제: 먼저, 첫 번째 질문인 삶의 화두는, 없다고 봐야 할 거에요. 다만 그래도 애써 말하자면, '51%의 열정으로 죽을 때까지만 변하지 말고 살자.'라고 할 수는 있을 겁니다.
  사실 이것도 원래부터 있었던 화두라기보다, 반추(反芻)하여 재구성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죠. 저는 사람이란 존재가 그 특성 상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바로 그 일에 대한 어떤 입장이 바로 생긴다고 보지 않아요. 다만 사람이 어떤 일에 부딪히고 그 일에 대해서 다양하게 반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이 뚜렷해지고 그 입장에 대해 나름대로 반추한 끝에 재구성하여 의미를 붙이는 것이라고 보죠. 그건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화두라고 말했던 부분에 대해 말할게요. 열정에 있어서 '100'이 열정의 끝이고  'O'이 열정이 없는 죽음의 상태라고 해 봅시다. 저는 거기서, 저 스스로를 한 '51'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스스로를 열정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열정적인 것보다는, 그 열정이 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존경했던 분들이 열정적으로 일하다가 변하는 것을 많이 봐서 그럴까요. 그 분들이 열정의 '99'에서 최선을 다해 살다가 '99, 100'을 넘기고서 변하는 것을  많이 봤어요.
  민주주의가 왜 좋으냐는 질문에, 우리는 크게 얘기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좋다는 도구론적인 대답과, 그 자체로 좋다는 내재론적인 답변을 할 수 있어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이었던 꽁도르세는 수학으로 민주주의 이론에 대해 설명하면서, 승률 55%의 사람 100명이 모여 결정을 하면 거의 100%의 옳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수학적인 증명'을 합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승률 51%라고 할 수 있는 저는, 미지근하겠지만 끝까지 열심히 하자는 쪽입니다.
효제: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은 함께 대답할 수 있겠는데, 제가 생각하는 "인권이란?"과 그 "인권이란 가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이죠? 이것도 반추하여 재구성하는 것이긴 한데, 굳이 그 계기를 찾으라면 저의 성장시기에 관련된 고민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제 중/고등학교 때가 유신시기이었는데, 요즘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사회자체가 굉장히 억압적이었죠.
  제가 고 1때이었어요. 친구 하나가 있었죠. 당시의 고등학교는 학도호국단 체제이었는데, 예를 들면 교무실에 들어갈 때마다 일정한 순서가 있어서 그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요즘 말로 구타나 체벌 또는 다양한 불이익을 당했거든요. 사실 그 시대는 구타나 체벌 또는 그런 불이익이 하도 일상적이라서, 일반적으로 그러한 것들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지도 않던 때이었죠. 그런데 이 친구가 그런 부분에 대해 항의를 했던 거예요. 좀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항의라기보다 그 순서를 지키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 사건으로 그 친구는 엄청 매를 맞고 정학처분까지 받았어요. 나중에 전해들은 소식은 결국 정신병을 얻고 일찍 죽었다는 소문이었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때는 그런 것이 비일비재하던 그런 시대였어요. 그래서 일까요. 저는 지금도 길을 가다가 여러 명의 큰 친구들이 작고 힘없는 친구들을 몰아넣고 괴롭히는 장면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해요. 제가 경험했던 것처럼, 폭력적인 사회분위기가 한 여리고 섬세한 학생의 정서에 불안과 공포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에요. 이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폭력성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조직 내의 획일화도 그런 것으로부터 출발하죠. 제 생각에 이런 것들이 사람에 대한 존중과 인권에 대한 생각으로 연결되었다고 봐요.
종훈: 그랬군요. 저도 우리나라의 병영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는 편이고, 개인적으로는 5.16. 쿠데타와 관련된 장교 출신의 아버지를 둔 처지라 선생님의 그런 부분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감이 되는군요.
효제: 네 번째 질문이 "인권이란 배운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한 마디를 해야 한다면?"이었죠? 일단 저는, 인권이 지향하는 대상은 모든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러한 인권을 제시하고 정당화하며 개념화하는 방식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보죠. 보통 눈높이에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있고, 엄밀하게 제도적/규범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있잖아요. 전자는 '단순 명료화'라는 최대의 장점이자 약점이 있고, 후자는 종훈씨가 질문했던 것처럼 배운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비판이나 현장성과 공허한 담론 사이의 갭을 메우기 힘들다는 약점이 있죠.
  그래서 저는 "모든 좋은 것이 인권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인권이라는 것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되거나,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이 두 가지 방식 중 어떤 것을 취하든 장/단점이 있을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어느 방식을 선택하든 인권이 가지고 있는 핵심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모든 것을 인권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태도는, 매우 조심스러워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인권과 친구 개념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정의나 평화 같은 개념들 말이죠. 이런 개념들은 크게 봐서 인간 공동체의 선익(善益)을 위한 연계담론들이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러니 이제 인권영역도 그 포지셔닝positioning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반짝이는 것이 금이 아니듯, 모든 좋은 것이 인권도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인권담론은, 인권영역 고유의 핵심을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최대한 개방하여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사람들에게 인권을 이야기하면 왜 그리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인권 이야기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면 굉장히 강한 반응을 보이잖아요. 그러니깐, 인권이라는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열정passion을 일으키는 거죠. 찬성이든 반대이든, 왜 이런 반응을 가져오는 것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열정적인 반응은, 인권이 지닌 절대주의적 방식에 대한 반발이 아닐까하고 생각해요. 절대적으로 주장되는 담론에 대한 반응인거죠.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인권에 관한 책을 보면, 대부분이 '강당인권론'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제가 앞으로 인권에 관한 책을 쓴다면 챕터chapter를 구성하는 주제를, 인권에 대한 질문을 모아 그것을 유형별로 묶어서 구성하고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식의 책을 쓰고 싶어요. 21세기 한국의 인권은 그렇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늘 종훈씨가 해 준 이런 질문들도 참 좋은 질문들이네요.
효제: 다섯 번째 질문인, 오늘날 앰네스티나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활동이 인권운동의 분야에서 보수적인 경향이 있고 뒷북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일면 타당하게 들리는 부분이 있다고 인정해요. 그렇지만, 이런 부분을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해요. 오늘날에도 우리의 곁에는 앰네스티에서 이야기하는 수준의 인권 이야기조차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나라가 있다는 것 말이죠. 사실 우리도 20여 년 전에는, 지금 우리가 주장하는 이런 수준의 인권 이야기도 주장하지 못하는 때가 있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부터가 우리나라 인권담론의 수준이 그만큼 발전해왔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고 봐요. 물론 이 생각은, 현재 한국의 인권담론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먼저 AI의 글로벌Global한 운동모습과 방향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란 거죠. 앰네스티의 회원이거나 앰네스티 운동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이, 앰네스티의 타겟Target과 활동방향은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인권이야기에 관심이 있고 활동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두 가지 운동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하나는 글로벌한 차원의 AI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관심 있어 하면서도 국내수준에 맞는 인권활동을 하는 것도 좋다는 이야기이죠. (웃음)
  사실 한국에서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분들은 피부로 느낄 만큼 알지 못할 수 있으나, 한국의 축적된 경험과 의식수준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보자면 매우 높은 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요구되는 수준도 높은 면이 있는 부분이 있는 거죠.
효제: 자, 다음 질문은 "좋아하는 풍경은?"이었죠? 저는 녹색적인 것을 좋아해요. 저는 사람들이 자연하고 벗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현대인들이 조금은 속도가 늦춰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다음은, 여섯 번째의 "진보적인 지향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생활 속의 실천은 어떻게?"와 아홉 번째 "하루의 가사분담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인데요. 간단히 말하자면 가사분담은 조금 비겁하게 들릴 수 있고 부끄럽지만, 요즘에 들어 할 수밖에 없는 개인적인 이유로 조금 하고 있는 편이에요.
  사람들은 진보를 주장하면서 주장하는 진보의 100%에서 80%만 하는 사람과, 진보를 주장하지 않고 100%에서 20%만 실천하는 사람 중에서 누구에게 더 엄격할까요? 전자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자아비판과 자기 성찰을 가능케 하는 엄격함과 검증의 과정은, 소중하고 그러한 것들이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어요.
  저는 '세상은 결국 진보가 변화시킨다.'고 믿는 것인데, 진보를 주장하면서 채우지 못하는 나머지 20%를 채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이것이 바로 '진보'라고 생각해요. 이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앞에서 말한 그런 비판은 건강하다고 보는 것이죠.
종훈: 그렇군요. 역시 좋은 선생님을 만나니 평소에 단편적으로 끊어져 있던 생각이 이어지고 뭉뚱그려져 있던 생각들이 명료하게 나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웃음) 이런 기회도 드물 터이니, 바쁘시지만 하나만 더 질문해도 될까요?
효제: 예.
종훈: 개인적으로 제가 신학도의 길을 걷고 기능적으로 성직자라고 분류되는 길을 걷게 된 이유 중 많은 부분이, 차별받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차별받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분류되는 조건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사람은 영적인 존재라는 신념이 있는 저로서는 진정 차별받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길은 사회적 안전망이나 섬김만을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차별받는 가난한 사람과 더불어 영적/사회적/경제적 평등을 위한 연대의 싸움을 하기 위해 신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이죠. (웃음)
  그런 제가 몇 년 간 보수적인 교회(종교) 공동체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그 보수적인 교회(종교) 공동체가 지향하는 것에 대한 회의 때문에 그 공동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꽤 오랜 시간동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던 결정에 대한 돌이킴이었기에 알을 깨는 듯한 아픔을 겪었죠. 건강한 교회(종교) 공동체라면 마땅히 드러나야 하는 부분이 그 교회(종교) 공동체에 없다는 것은 참 아픈 것이거든요. 건강한 교회(종교) 공동체라면 내적/외적 모든 면에서 마땅히 드러나야 하는 관계적 영성과 섬김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아픔.
  그로 인해 저는 교회(종교)공동체가 마땅히 섬기고 더불어 해야 하는 가난한 분들과 함께 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았고, 성공회 나눔의집이라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종교적인 성향이 묻어있는 지역 운동체에 활동가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더 분명해 진 부분이고 제 평생의 화두이기도 한데, 빈곤과 인권의 관련성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빈곤의 문제를 경제적 평등과 기회 박탈의 문제로 보기에 인권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효제: 인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교적 관점에서 (상위개념의) 종교적 측면을 도입하지 않으면 인권을 주장하기 힘들다는 종교적 관점부터 그 반대 극에는 인권과 시대적 역사적 산물이고 그 시대의 사회가 요구하는 부분이 구성되는 것이란 사회구성론적 관점까지 다양하게 있어요. 저도 AI에서 활동하며, 이 두 가지를 비롯한 다양한 관점에서 인권운동을 하는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죠.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인권운동을 하느냐보다는 그 다양한 관점이 연대해서 이뤄갈 수 있는 발걸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군요. 종훈씨가 고민했던 부분이나 종훈씨처럼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인권운동을 하는 분들도 그런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빈곤과 인권과의 문제는, 그래서 인권선언에서도 경제․사회적 목록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근대성의 중요한 두 가지 축인 자본과 국가에 기초해서 이뤄져 있잖아요. 이 두 가지 '리바이어던Leviathan' 또는 '시스템System'은 근대의 두 다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인권은 이 두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아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건 정말 최대가 아닌, 최소한 인간으로 살기위한 마지막 안전판과 같은 것인 거죠.
  근대국가라는 틀 안에서 다수의 폭정으로 날뛰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게 하고, 완전한 자유방임형 자본주의로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마저도 밟아버리지 않도록 하는 모래주머니. 또한 그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해도 그 폭주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서 그 느려지는 만큼이 인간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인권이라고 생각하는 우리가 보기에, 이 모래주머니는 정말 가벼운 모래주머니인 것이죠.
◦종훈: 예, 그렇군요. 저의 욕심보다 더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있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제 1년 정도 미국에 가시는 거죠? 그럼 긴 여행길, 평안히 다녀오시길 소망하겠습니다.

# epilogue. 푸른 청년, 조 효제.

'청년.' 조효제 선생님과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거의 두 시간가량의 시간 이후에 남는 강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느낌이 제게 웃음을 주었습니다. 인터뷰가 다 끝나고 김지량 간사님과 인터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간사님도 평소에 선생님을 대할 때마다 '청년'의 향기를 느꼈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청년이 주는 청량한 느낌. 조효제 선생님은 그런 분이었습니다.
  AI 한국지부에서 나온 『한국 앰네스티 30년! 인권운동 3O년!』에 실린 선생님의 글을 보면, 선생님은 85년도에 공중보건의라는 이름이긴 하나 군인으로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시대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주위 분들에게 듣던 시대적인 분위기로 보자면, 의사이자 군인인 선생님의 첫걸음은 분명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첫걸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그 분은 결국 첫 부임지에서의 경험을 외면하지 못하고 스스로 걸어서 AI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들의 곁에 푸른 청년으로 함께 하고 있는 거죠.
  선생님과 인터뷰하던 내내 느낄 수 있던 그 청량감(淸凉感). 종교적 신념으로 인한 활동과 부딪힘이나 진보와 실천에 대한 질문 그리고 빈곤과 인권에 대한 질문까지 쉽지 않은 그 질문을 명료하면서도 단순하지 않게 정리하며 대답해 주시는 그 느낌. 그리고 본인은 51%정도만 열정적이나 그 열정이 평생가기를 바란다는 대답. 더불어 1년 간의 여행길에 김지량 간사님이 선물한 AI 티셔츠 두 장 중 한 장을 그 자리에서 꺼내 내게 나누시며, "이런 것이 바로 나눔이죠."라며 빙그레 웃던 수줍은 듯한 그 웃음은 분명 청년의 웃음이었습니다.

♡ 민김종훈님은 평등부부를 실천하기 위해 몸부림 중인 47그룹 회원으로, '가난, 소외, 여성, 세상과 사람을 해방하는 영성'을 화두로 살아가는, 성공회대 신학대학원에서 성직자의 길을 준비 중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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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07/03/13 00:59 2007/03/13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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