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에서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인권이란 것에 대해 최소한의 고민이라도 하고 사는,
  그런 사람이 본 장진 감독의 〈고마운 사람〉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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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영화에 대해 잘 모른다. 더군다나 일상적으로 쉽게 접하는 상업영화에 비해 진보적 이야기를 담곤 하는 독립영화나 인권영화는 더욱 모르는 편이다. 그런 내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장진 감독님의 〈고마운 사람〉이란 인권영화라는 건 신선했다(감독님이 그걸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러나 그 영화를 보는 내내 오버랩 되는 장면 하나와 가슴을 쿡쿡 찔러오는 아픔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역리의 시대에 순리를 이야기하는 `인권영화'니 불편한 게 당연한 것 아닐까하며 그 불편함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결코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그 불편함이 컸다. 웃고 넘어갈 수 없는 폭력 앞에서 떨고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힘겨운 상황에 대해 넋두리하면서 더불어 웃고 즐기며 고문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고마운 사람'이라….

(뭐,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그 고문관한테 당하던 학생이 고문관을 편들기 해주니, 그 고문관한테 학생이 고마운 사람일 수도 있긴 하겠다만.)

여기서 잠깐 그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했던, 그 오버랩 장면과 아픔이 무엇인지 얘기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 하다. 나는 소위 `전교조세대'이다. 그것도 합법화투쟁의 마지막 세대. 그런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엔 소위 독사라고 불리는 학생주임이 있었다. 그는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 출신이라고 했었다. 본인이 생각하는 옳은 길에서 벗어난, 판단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사랑의 매로 다스려 돌이키게 하는 것이 `교사의 사명'이라 굳게 믿던 그.

영화에서처럼 `좋은 세상'이 된 지금. `불휘'라는 이름의 소모임에서 토론과 풍물을 함께 하던 벗들과 그 때를 회상하며 얘기할 때, 벗들과 난 소위 지하서클(내가 고딩 때에는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불법으로 활동하던 음성동아리를 이렇게 불렀다.) 때를 회상한다. 당시에 친구들과 난, 낮엔 학교에서 인정하는 합법적인 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저녁이 되어야 소모임을 위해 고대 이공대 숲으로 모이곤 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나에게, 나와 `정의의' 학생주임이 동시에 출연하는 몇 편의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하나. 학교에서 전교조 합법화나 참교육에 관한 유인물이 뿌려지거나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교내 알림방송을 통해 우리를 비롯한 몇 명의 `빨갱이' 학생들이 불려졌다. 그리곤 내가 `통곡의 벽'이라 이름 붙인 학생부실 하얀 벽 앞에서 일렬로 세워져선 몇 시간이고 반성을 강요당했다(당연히 아무 이유도 얘기해주지 않았고, 당시에는 어떤 이유도 필요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황당한 그런 일을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던 그 선생님들이나 당하는 우리들이나 그리고 학교의 학생들 모두, 그런 사건에 `희생양'이 필요하단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명씩 옆방으로 불려가 소위 자백을 강요받는다. 당연히 영화의 후반부에서처럼 차분하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저 말 그대로 `개 패듯이' 패는 것이다(영화의 초입에서 잠깐 관객들을 `웃겼던' 장면처럼.). 옆방에 있는 다음 차례의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전달하기 위해서이고, 그 공포심을 통해 혹시라도 사건의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의외로 일은 쉽게 끝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 두울. 그렇게 기다리다가 내 순서가 되었을 때, 나는 학생주임에게 `특별대우'를 받곤 했다. 중학교 시절 총학생회 활동을 했었던 나는, 1학년 학급회의 시간에 총학생회 회의록을 일반 학생들도 알 수 있게 공개해달라는 상식적인 건의를 했었다. 그리고 학급 친구들의 동의를 얻은 그 제안은 반장의 입을 통해 총학생회 회의 시간 때 건의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 주의 주말, 체육시간. 체육활동을 위해 운동장에 정렬하고 있던 우리 반으로 학생주임이 찾아왔다. 그리곤 그 건의를 한 사람이 누군지 호명했다. 별 생각 없이 손을 들고 나간 나. 학생주임 앞에 서는 순간, 눈이 번쩍했다.

이어 "빨갱이 새끼! 누가 그렇게 가르쳤어!"라며, 욕설과 더불어 연거푸 손바닥과 주먹이 날아왔다. 고등학교 1학년이 그냥 서서 버티기엔 쉽지 않은 어른의 주먹질에 나는 쓰러졌다. 그러자 아이들 속에서 부들부들 떨던 반장이 나섰다. "선생님, 그건 저희 반 회의시간에 모두의 동의를 거쳐 건의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뺨도 곧 빨갛게 부어올랐다.

다시금 쓰러진 나를 향한 독사의 발길질. 그렇게 시작된 매질은 다시 세워서 때렸다가 쓰러지면 발길질 했다가를 반복하며, 운동장 한 바퀴를 돌고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리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학생주임 독사. 나중에 알고 보니 연수를 떠나는 길에 들러서 제자의 어긋난 길을 잡아주려 했단다.

너무나도 개인적인, 그 것도 민주화나 해방과 평등을 위해 장렬하게 투쟁하다 옥중에 갇혔다거나, 아니면 일상적인 어느 날 납치당해서 몇 십일 동안 영문도 모르고 고문을 당하다가 간첩이나 뭐 그런 죄목을 덮어썼다는 이야기도 아닌, 80년대 후반에는 일상적으로 있었던 이야기인데 이리도 길게 얘기한 것은 위의 장면들이 바로, 영화를 보는 내내 오버랩 되었던 장면들이었고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나오게 가슴 한켠을 아프게 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저항하기 힘든 거대한 권력으로부터의 폭력이란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이유를 들이대면서,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개 패듯이 두들겨 맞는다는 것에 대한 모욕감과 좌절감이 바로 그런 것이다. 당시의 너무나도 일상적인 폭력에 당한 상처가 나에게 아직도 이렇게 남아 있는데, 하물며 나보다 더한 폭력 앞에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그 폭력 앞에서 무너져 갔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어떠할까.

물론, 그 영화의 플롯이 `민주화'나 `폭력'의 문제가 아니었단 건 알고 봤다. 요즘 한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문제를 장진 감독 특유의 감각으로 그려냈다는 어느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보는 동안,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울컥함이 있었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이란 것이 무엇인가? 물론 보편적인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인권이란, 좀더 언저리의 사람과 이야기들을 편들기 하는 것이 인권이다. 그렇지 않은 인권이란 결국 더 가진 자들에게 주는 선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 영화는 불편함을 넘어 불쾌했다.

비정규직의 문제라‥. 그 영화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문관들이 비정규직이었다면, 그들도 나 같은 이들이 편들기 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그들이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고문관이라는 지점에서 소위 고학력의 학생을 고문하는 것이 합리화되지는 않는다. 영화 속에선 고문관이 "넌 서울대 다니니까 좋은 직장 들어가겠다."라고 부러운 듯 이야기하지만, 장진 감독이 그런 것을 의도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형사의 한 마디. "맞는 것도 힘들지만, 때리는 것도 맞는 것만큼 힘들어." 이런 제기랄! 내가 그 독사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80년대 후반 박봉의 교사직에서, 오직 먹고 살기 위해 나를 선도하던 그 분을 이해하며 "선생님 좋은 세상이 올 거예요. 좋은 세상이 오면, 선생님처럼 학생을 때리는 분들은 고소당하니깐 다른 선도 방법을 찾아보세요." 이렇게 말했을까?!

희화화도 좋고, 색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좋다. 소위 성역이라고 금기시되는 부분을 탈(脫)성역화 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최소한, 어쩔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것이 인권을 대하는 또 하나의 태도가 아니던가?

비정규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폭력을 희화화한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장진감독님이 좀 심했다 싶다. 앰네스티 한국지부로 온 초대권으로 그 영화를 함께 보고 나온 같은 그룹 회원들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해줬다. "장진 감독님의 스타일이잖아요. 인간적이고 유머 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거요."

뭐, 좋다. 인간적이고 유머 있게 이야기하는 것. 그런데 저항할 수 없는 폭력 앞에서 떠는 한 사람의 인권이, 비정규직 고문관의 문제 앞에선 인간적이고 유머 있게 이야기해도 되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동의가 안 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서, 세상을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묻고 싶다. 우리가 자주 보는 TV에서 가끔 장애인이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소재로 해서 개그나 코미디를 할 때, 장애인들이나 이주노동자들이 껄껄거리고 웃는 것을 본 적이 있냐고. 오히려 웃으라고 하는 이야기에 그들은 울지는 않느냐고.

그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울고 싶었다. 내가 보고 있는 영화가 인권영화가 아니라 일반적인 상업영화이었다면, 그 정도의 눈높이에서 뭐가 더 나올 수 있겠냐고 이해해 보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고 있던 영화는 분명히 인권영화였다.

우리가 편들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만든 영화가 아니던가? 꼭 심각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편들어야 하는, 그런데 제대로 편들지 못해서 상처를 가지고 있던 사람의 상황을 희화화해서 그 사람의 관점으로 다른 약자를 편든다는 것. 참 좋은 것일 수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겐 너무나도 이상적이고 참으로 계몽적으로 다가왔다.

인권영화이니 이상적일 수는 있다고 치자, 그렇지만 계몽적이기까지 하다니 그건 불편하다. 아니, 계몽적인 것이야 내가 함량부족의 사람이니 간혹 필요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저항할 수 없는 폭력 앞에서 떠는 사람을 희화화해서 계몽적인 이야기에 웃음을 포장한 것은 불쾌하다. 이것이 "다섯 개의 시선" 중, 장진 감독님의 〈고마운 사람〉이라는 영화를 본, 나의 총평이다.

이런, 제기랄! [3rd 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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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07/03/31 12:43 2007/03/3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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