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07 18:00 / 국민일보 / 선교한국 한철호 상임위원장]



2004년 11월 뉴욕타임스 칼럼은 “만일 복음주의자들이 교황을 뽑는다면 존 스토트 목사가 선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86세인 스토트 목사가 개신교 복음주의권에서 미친 영향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말이다.

영국 국교인 성공회 소속 신부로 평생을 런던 시내의 작은 아파트에서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지난 7월 케직사경회의 성경강해를 마지막으로 공식 사역을 마감하고 은퇴 신부 거주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일생을 설교자, 목회자, 학생운동지도자, 신학자, 실천가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가 일생동안 끼쳐온 전 세계적인 영향력과 사역은 기독교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스토트 목사는 1921년 아놀드 경과 스토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나 유소년기엔 오클리 홀, 그후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유명한 럭비스쿨을 거쳤다. 케임브리지 트리니티대학에서 불어와 신학을 전공한 후 성공회 목회자의 자격을 얻었다.

스토트 목사는 유아 때부터 교회의 의무적 모임에 꾸준히 참석했지만,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진정한 회심은 17세가 되는 1938년 성서유니온 청소년 사역자였던 배시 목사의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 설교를 들었을 때였다. 그 후 배시 목사는 스토트의 멘토가 되었고 오랜 세월 편지를 주고받으며 영적 성장을 도왔다. 이때의 영적 성장을 바탕으로 대학에 들어간 스토트는 기독학생반(IVF)에서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하게 된다.

1945년에 사제 서품을 받은 스토트는 올솔스(All Souls)교회의 교구 목사로 부임했다. 5년 후에 주임사제(담임목사)로 임명되면서 세계적인 성경강해자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1975년 스토트 목사는 더 넓은 사역을 위해 교회를 사임, 런던현대기독교연구소를 창립했다. 이곳에서 복음의 총체적 측면, 즉 복음이 교회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대답이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론의 정립과 관련 서적을 출간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여기서 발간한 저서 등을 통해서 얻어지는 수익금으로 제3세계 목회자와 신학자들 돕는 랭함파트너십인터내셔널도 운영하고 있다.

스토트 목사는 영국 복음주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6년 영국복음주의협의회 의장으로 있을 때,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가 영국 복음주의자들은 성공회로부터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에 제동을 걸었다. 존스 목사는 당시 자유교회, 즉 성공회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 교회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영국교회가 성경의 완전 영감 등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음주의자들은 영국성공회로부터 분리돼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토트 목사는 이러한 의견이 교회의 역사와 성경에 반대된다고 주장하며 존스 목사와 크게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을 지켜본 영국 복음주의협의회는 스토트 목사의 주장에 동의해 영국교회로부터 분리를 거부한다. 복음주의권의 관점에서 볼 때 영국성공회가 신학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일부 있다 하더라도 교회가 분리되는 것이야말로 성경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스토트 목사의 견해를 수용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교회관은 이후의 활동에도 일관되게 유지되면서 전 세계로 영향력을 확대해 갔다. 그 자신 역시 신학적 견해에 일부 차이가 있는 그룹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복음주의권 지도자로서 위치를 점점 더 다졌다.

스토트 목사는 1974년 로잔대회 이후에 계속된 동방정교 및 가톨릭과의 논쟁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면서 이들 교회와도 하나되고 서로를 이해시키는 일을 주도해 나갔다. 그가 복음주의 신학 전통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가톨릭이나 동방정교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도 스토트 목사가 복음의 본질을 떠났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철저한 삼위일체 신앙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속,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성령의 중생케 하심과 내주하시는 역사를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기독교 기본진리’ ‘그리스도의 십자가’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스토트 목사는 신학 전통은 물론 세상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이중적 귀기울임(double listening)’을 강조한다. 즉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동시에 세상으로부터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그가 교단과 교파를 넘어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된 이유다.

덧붙임: 분명히 영국 성공회의 '일원'이자 '사제'인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는 존 스토트 John Robert Walmsley Stott 신부를 '목사'라고 고쳐 부르는 다른 개신교파 지식인이나 언론의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하나, 역시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존 스토트 신부의 공과를 논하기에 앞서, 21세기 세계 교회에 그가 남긴 영향은 우리들의 생각보다 더 크다는 건 분명하다고 봐야 한다. 또한 '교황'이 지닌 신학적/정치적 의미에 굉장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성공회의 신학자에게 '복음주의의 교황'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도 참 짓궂은 '농담'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더불어 이 땅의 신학도로서 늘 아쉬운 점은, 존 스토트 신부와 같은 크나큰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고 그의 신앙/신학적 맥락에 놓여 있는 한국의 복음주의 진영이나 대한 성공회의 복음주의자들이, 존 스토트 신부가 그토록 외치는 신앙/신학적 기본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아! 물론 존 스토트 신부는 영국 성공회 저교회파(복음주의)의 영향력있는 지도자이자 큰 의미에서 울타리나 방향 지시표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분입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c%a1%b4_ ··· 58a%25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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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08/02/16 01:36 2008/02/16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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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숨결 2008/02/16 01:37 # M/D Reply Permalink

    기사 제목을 누르시면 원래의 글인 국민일보로 넘어갑니다. 일간지 기사인 관계로 글을 걸 수 없게 했으니,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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