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신문/ 2007.5.20. / 2면)

교회와 지역사회 선교활동

이재복 신부(멜기세덱∙강동교회)

  성공회 교우님들 중에 지역사회를 향한 선교활동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지역교회 · 지역사회 선교활동


  예전에는 ‘전도구’(傳道區, parish)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었는데, 이제는 전도구라는 말 대신 본교회 혹은 선교교회라는 말을 쓰고 있고 이와 함께 ‘지역교회’라는 단어도 요즘엔 꽤 많이 쓰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성공회에서는 ‘지역사회와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교회’는 오래 전부터 아예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성공회 공동체는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교회와 지역사회’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개념을 아우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한 교구나 관구 차원에서 여러 개의 교회(본교회나 선교교회나 각종 사회선교기관)들이 어느 한 지역에 편중되지 않고 골고루 알맞게 흩어져서 선교(활동)할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나 의도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본교회나 선교교회가 기왕이면 교회 가까이에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로 신자 구성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개념입니다. 교우들의 믿음생활과 교회생활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이 하나의 지역 안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셋째, 각종 사회선교기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본교회나 선교교회들도 자기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그 지역교회에 대한 그 지역사회의 요구)들에 응답함으로써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선교적인 과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개념입니다.
  저는 위의 둘째 개념이 담고 있는 ‘소망’이 우리 교회들 안에서 실제로 현실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기대는 셋째의 ‘지역사회 주민들을 향한 선교적인 과제들’을 우리가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가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교회공동체들이 참다운 지역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하여 진지하게 응답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2. 예수님과 제자들의 지역사회 선교활동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를 주셨으며 베짜타 못 가의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예수님을 본받아 앉은뱅이를 치유했고 배고픈 이들에게 식량을 배급했으며 사회선교기금을 모아서 가난한 이들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러한 활동이 당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하느님을 향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지역사회 선교활동입니다. 교회가 수행해야 하는 지역사회 선교활동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몸소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제시하신 일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지역사회 선교활동은 해도 되고 안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적당히 교회의 액세서리 역할 정도만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지역사회 선교활동은 우리 교회의 선교에서 매우 중요한 하나의 과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물고기라면 우리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사회는 물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우리 교회는 지역사회와 상관하지 않고 존속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교회들이 교회 인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공동체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삼고자 하는 소망을 품는다면 더더욱 우리의 지역사회 선교활동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한국 개신교회들의 신자수가 감소했다는 통계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통계는 개신교계의 여러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평가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동안 한국의 많은 개신교회들이 지역사회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잘 듣지 않았고 거기에 충실히 응답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러한 통계 결과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역사회 주민들의 자연스럽고도 자발적인 지지를 획득하지 않은 채, 획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지역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3. 지역사회 선교활동을 위한 준비
 
   매우 초보적인 내용이기는 합니다만, 교회가 지역사회 선교활동을 준비한다면 최소한 이런 과정은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① 필요성 공유하기 : 해당 교회의 많은 교우들이 지역사회 선교활동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공유하는 것이 우선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지역사회 선교를 향하여 우리를 파송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신앙적인 응답이기도 합니다.
  ② 지역사회 주민들의 요구 파악하기 :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원하는 내용, 주민들에게 직접 혹은 간접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파악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적절한 방법으로 지역사회 조사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혹은 교회위원회) 안에 예를 들어 ‘지역사회선교(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위원회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일을 만들어가게 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③ 앞선 경험들 배우기 : 다행히 우리 성공회 안에는 각종 사회복지 기관이나 나눔의집과 같이 지역사회 선교활동을 앞서서 진행하고 있는 공동체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경험은 우리 전체 공동체 안에서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일반 교회들도 그 경험을 일부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 교회(의 지역사회선교분과위원회)는 그 경험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대신 각 사회복지 기관이나 나눔의집들은 자신의 선교적 경험을 일반 교회공동체와 슬기롭게 나눌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앞선 선교적 경험들을 배우는 이 과정은 각 교회의 교우들을 지역사회 선교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자연스런 교육의 단계도 될 것입니다.
  ④ 작은 활동부터 시작하기 : 각 교회의 인적∙재정적 규모를 감안하여 작은 활동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작은 활동의 경험이라 할지라도 각각의 경험들이 신앙적인 눈으로 해석되고 신앙적인 고백들로 이어질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입니다.

4. 선교는 ‘선물’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 선교활동을 진행할 때 꼭 유념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뇌물과 선물은 다른 것입니다. 뇌물은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반대급부를 받기 위한 의도를 갖고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물은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그냥 거저’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총,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배로우신 피는 다 선물입니다. 뇌물이 아닙니다. 선물을 영어로 기프트(gift)라고 하는데 이것을 대문자 Gift로 쓰면 바로 ‘은총’이 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총은 거저, 공짜로, 무료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뇌물이 아닌 선물을 받았듯이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나누어야 할 것 역시 선물이어야 합니다. 뇌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앓는 사람은 고쳐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주어라. 나병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거저 주어야 합니다. 그냥 나누어야 합니다.
  섣불리 선교활동의 결실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10년, 20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당장 전도의 성과를 낳아야 한다는 욕심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선교활동이 순수할수록, 거저 나누는 것일수록 더 참다운 선교활동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성실한 우리의 선교활동이 쌓이고 쌓이면서 지역사회를 향한 우리 교회들의 이미지도 서서히 좋아질 것입니다. 각 나눔의집의 신앙공동체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총의 선물을 주시기 위하여 목숨까지도 거저 내어주셨다는 사실을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지역교회를 향한 소망을 간직하되 그 선교의 결실을 맺어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젠가는 주님께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주시리라고 굳게 믿읍시다.


5. 지역사회의 가정을 향한 관심


  지역사회 역시 그 최소 구성 단위는 가정입니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가정들이 당면하는 어려움은 먹는 문제(생계), 입는 문제(의복), 병 치료 문제(의료), 주거 문제(주택), 자녀들의 교육 문제, 어르신(노인)들의 여가 문제(고령화 사회!) 등입니다. 그리고 주민들의 문화생활과 관련한 욕구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착안하면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우리 교회를 향하여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조금 더 실감나게 느끼고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역설적으로 사람에게는 빵도 분명히 필요한 것임을 알려주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자신의 가정 문제(생활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교회라고 하여 그런 문제를 등한시하는 것은 바른 선교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마지막 날 영혼의 구원으로 완성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몸의 구원으로도 드러나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대부분의 교회 공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거의 비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참 아깝습니다. 우리의 공간을 지역주민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줄 수 없을까요? 교회의 공간은 지역주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한 훌륭한 사랑방, ‘더 큰 가정’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6. 강동교회 - 강동사랑나눔터의 경험

  강동교회는, 옛날 광나루교회 시절에 ‘진명서당학교’를 부설로 운영하였고(1910년대) 천호동교회 시절에 ‘나루야학’을 운영한(1980년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역사회 선교활동의 소중한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과 역사는 지난 2003년에 ‘사랑의 점심 나누기 봉사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관할사제이셨던 김영일 신부님과 많은 교우들은 넉넉하지 못한 사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동지역의 가난한 어르신들을 위하여 새로운 봉사활동을 시작할 것을 결의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하루 평균 170명 정도의 지역 어르신들께 점심식사를 대접해 왔습니다. 토요일마다 약 2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들(대부분 강동교회의 교우들)이 열심히 봉사하는 것은 결정적인 힘이 되고 있습니다.
  2005년에 들어서는 고비도 있었습니다. 후원금 문제가 생겨서 ‘사랑의 점심 나누기 봉사활동’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여러 명의 소액 후원자들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이름으로 후원회를 조직하는 것’은 호소력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지역사회 선교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활동주체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우(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총회를 열고 ‘강동사랑나눔터’라는 봉사단체를 창립하였습니다. ‘강동사랑나눔터의 운영규정’에 따라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이들 운영위원들과 온 교우들이 뜻을 모아 교회 안팎에서 후원회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후원금 모금이 조금 안정된 이후로는 가정결연활동(지역의 가난한 홀몸 어르신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면서 후원하는 봉사활동)과 청소년 장학활동으로 조금씩 선교 영역을 넓혀갔고, 노약자들을 위한 시설도 일부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문화관광부가 실시하는 ‘종교시설 문화예술 프로그램 지원사업’을 받아서 ‘강동지역 어르신들 어울림 문화마당’이라는 새로운 지역사회 선교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지원사업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이기는 하지만, 강동사랑나눔터의 후원금도 출연하고 봉사자들도 더욱 힘을 내면서 새로운 선교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을 초청해서 어르신들을 위한 효도음악회를 열었고, 영화상영, 바깥나들이, 마을 윷놀이대회, 장기대회, 노래자랑대회, 마술 공연 등의 프로그램을 계획 · 실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교회가(교우들이) 지역주민(어르신)들과 함께 문화예술을 즐기고 자연스럽게 친교를 나누는 가운데 가까운 이웃으로, 다정한 친구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교우들이 이러한 선교활동을 통하여 갖게 된 긍지와 자부심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은총이기도 합니다.
  강동사랑나눔터가 나눔의집 성직자들의 도움을 받아 ‘지역주민 생활 상담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 교회들과 각종 사회선교기관들이 앞으로 같이 고민해야 할 선교적 협력의 한 사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젊은 부제님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도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
  우리의 교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교회들 가운데 ‘또 하나의 교회’가 될 수도 있고, 지역사회 주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주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받는 ‘그 지역의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역사회 선교활동을 통한 열매를 언제 주실 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허락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강동사랑나눔터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지역주민들에게 계속 ‘선물’을 나누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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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07/06/12 01:49 2007/06/12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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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숨결 2007/06/12 01:56 # M/D Reply Permalink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각기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에게 '비슷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신 '이재복 신부님'이 그런 경우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내가 2004년에 성북 나눔의집에 찾아 갔을 때 그 곳의 관할사제이자 원장이셨는데, 이 분의 첫 인상은 정말 '가난한 동네의 신부님' 그대로였다.

    그 눈빛 또한 그리 녹녹하지 않은데, 내 안해는 이 분의 눈빛과 웃음에 푹 빠졌다. 10년 넘는 그 긴 시간을 동네의 가난하고 소외받은 분들의 그 힘겨운 삶을 끌어 안은 내공 깊은 눈빛과 웃음이기 때문이리라...

    내가 쉽게 따라가지도 그럴 수도 없는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가신 선배이시자, 사목의 모델이 되어주시는 그런 분이다.

    그렇게 맺은 인연은 내가 나눔의집 실무자로 자원하고서 6개월 뒤에 신부님이 산본교회로 스스로 떠나가시면서 끝나버렸지만, 지금도 나와 내 안해는 신부님과 성북 나눔의집 2층에서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을 소중하게 여긴다.

    이재복 신부님은 강동교회에서도 처음 만났던 그 삶을 그렇게 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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