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세기 어느 부제의 ‘비망록’에서 ]  

  ‘부제는 온 교회의 성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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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어제 하루 종일 폭풍우가 심했기 때문에, 부제 두 명과 함께 불안한 마음으로 아침 일찍 바닷가에 가보았더니, 익사자 두 명이 있었다. …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장례를 치렀다. … 오후에는 성당 옆에 주교님께서 지어 놓은 여관에 갔다. 여관에는 배나 카라반을 기다리는 순례자, 여행자 등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여관 건물 가운데 하나는 병자들을 위한 건물이다. 주교님께서는 자주 그곳에 들러 마태오 복음 25장을 읽곤 하신다. 오늘도 나는 … 가르치고 … 병자를 간호하고 중풍 환자를 씻어 주고 그들에게 기름을 발라 주기 위해 여관에 갔다. … 이렇게 주님과 함께 오후를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화요일: 주일에 무슨 일이 있어서, 오늘 아침에야 주교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 우리는 한 주간에 보고 들은 것을 주교님께 보고 드렸다. 주교님께서 좋아하는 비유대로, … “부제들은 주교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한다.” 주교님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교리와 주일의 긴 강론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시간이 부족하므로 매주 우리한테서 전반적인 상황을 듣곤 하신다. … 우리는 공동체의 몇몇 인사와 몇몇 비신자들을 접견하시도록 주교님께 간청 드렸고, … 병자들을 방문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 우리를 참으로 자기 마음, 자기 손처럼 생각하시는 주교님께서 우리에게 부제직의 정신을 상기시켜 주셨다. 부제직의 정신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직의 정신이다.

수요일: 하루 종일 시내를 돌아다녔다. 앓는 형제들이 와서 도와 달라고 청했다. 한 사람에게는 돈을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요리하도록 기름을 주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식량을 주었다. … 병상중인 한 신부님께 성체를 영해 드렸다. … 임종이 임박한 불쌍한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러 갔다. 할아버지를 씻겨서 옷을 입힌 후, 가족들과 함께 묘지에 갔다. 오늘 많은 일을 했다. … 그러나 과연 내가 부제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자문해 본다.

목요일: 어제 저녁 로마에서 한 부제가 왔다. … 로마의 부제들은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방문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을 잘 대접해주고 주교님의 추천을 받으려고 뇌물을 주는 부자들의 집에 더 자주 드나든단다. …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조촐한 봉급을 받는 불쌍한 사제들을 멸시했단다. … 사도들이 일곱 부제를 선출했다는 사도행전의 증언처럼, 로마 교회도 부제 숫자를 일곱 명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 다마수스 교황의 비서로서 로마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사제 히에로니무스는 다음과 같은 풍자 섞인 말을 했다: “부제들의 숫자가 적다는 것이 부제들로 하여금 우쭐거리게 만들었고, 사제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 사제들로 하여금 멸시 당하게 만들었다.”(히에로니무스, ‘편지’ 146. 2)

금요일: 아침 일찍부터 병자들을 방문했다. … 집으로 돌아와 독서와 기도를 했다. 주교님 도서실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지(遺志)’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에는 “부제는 온 교회의 성사가 되어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모든 공동체의 생명이 흘러나오는 주교님께 이 정의를 적용시키는 것이 낫겠지만, 생각해 보면 그 정의가 우리 부제들에게도 적용된다고 본다. … 우리는 성체께 봉사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온 교회의 성사’가 되어야 한다.

토요일: 나는 토요일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한 주간동안 봉사와 애덕 활동을 얼마나 실천했는가를 전례와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는 내일 발표할 ‘신자들의 기도’ 지향에서 이것을 확인해 볼 생각이다. 끝기도를 바치러 성당에 갔다. 기도를 지도하기 위해 사제들이 모여 있었다. 소년합창단이 시편을 노래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우리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불을 켰다. “또한 사제와 함께” 하고 대답할 신자들이 오늘 저녁에는 아주 많았다.

주일: … 아침 일찍 성당에 갔다. 신자들을 돌봐주고, 각자 자기 자리에 앉도록 해 주어야 한다. … 젊은 남녀들을 위한 자리, 아이를 업은 부인들을 위한 자리, 할머니들을 위한 자리가 있다. 성당 앞줄에는 과부와 축성된 동정녀들을 위한 자리가 있다. … 말씀의 전례가 시작되면, 나는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질서를 유지했다. 졸거나 잡담하는 이들도 있다. 성당을 마치 술집처럼 생각하고 떠드는 이들을 성당 밖으로 내쫓았다. …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강론이 끝나면 예비신자들을 밖으로 내보낸 뒤, 독서대로 올라가 신자들의 기도를 바친다. … 영성체가 끝나면 남은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따로 보관해, 죽을 위험에 있는 신자들이나 성당에 올 수 없는 신자들에게 주님의 몸과 피를 모셔다 드리기도 한다.

 [해설]

오늘은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한 부제의 일기를 소개한다. 4세기말 지중해의 어느 항구 도시에 살았던 부제가 써 놓은 한 주간의 일기를 통해서, 우리는 그 시대의 아름다운 교회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부제로서,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1600년이라는 시간과 저 멀리 지중해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가져다준다. 그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습관과 타성에 젖어 무미건조하게 사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안겨주고, 우리도 그 부제처럼 살아야겠다는 결심과 용기를 갖게 한다.


노성기 신부 (한국교부학연구회.광주가톨릭대학교)

[출처] 가톨릭신문, 2005년 11월 20일,
home 기획/특집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http://www.catholictimes.org/news/news_ ··· %3D29953 



# 꿈과 마음을 나누던,
   오며 가며 얼굴을 보거나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짧은 순간마다
   별 얘기 없이 잠시나마 그저 어깨를 감싸주던
   그런 대학원의 1년 선배이자 벗들이 27일이면 부제 서품을 받는다.

   성공회 사목자의 공식적인 첫걸음인 셈이다.

   축하도 할 겸 격려도 할 겸  잔을 채우고 그 잔에 마음을 담아 서로의 맘을 전하니,
   그들 대부분 그 무게를 묵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첫 시작부터 하느님과 자신 그리고 벗들에게 솔직하고 정직했듯이
   짧지 않을 여정과 그 마무리까지도 항상 그렇게 솔직하고 정직하기를 기도한다.

   1600여년도 넘은 그 옛날에도 입술로만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내가 사랑하고 마음 깊이 존중하는 이 벗들은
   그렇게 변해가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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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08/05/16 18:47 2008/05/1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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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아메디아 2008/05/18 23:07 # M/D Reply Permalink

    아주 좋은 글을 올려 주셔고 고맙습니다. 이런 고대 교회의 자료들, 특히 전례와 전례 전통에 자료들을 성공회 전례학 포럼에 올리는 것은 어떨까요? 이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출처를 분명히 해서 나중에 찾아 볼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알고 보니 다른 글에 댓글을 달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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