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결론

   

1. 요약 및 평가

 

1) 요약

  본 연구자는 이 논문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해 급증한 도시 슬럼에서 사회적 배제의 대상으로 표류하고 있는 새로운 이산자(離散者)인 도시 빈민들이 슬럼가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오순절-성령운동과 만나, 그들의 삶의 맥락에서 오순절-성령운동을 저항적 ․ 해방적으로 번역/해석하고 있음을 논하고자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번역/해석된 오순절-성령운동이 지금까지의 그리스도교 선교가 그러했듯이, 어제의 그리스도교를 현대와 새롭게 소통하고 만날 수 있는 그리스도교로 새롭게 갱신시키는 가능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자는 지금까지 다음과 같은 부분들을 살펴보았다. 첫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빈곤과 사회적 배제에 관한 부분이다. 큰 틀에서 1960년 무렵부터 사용된 ‘지구화’ 개념의 맥락에 위치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지구화가 가진 양극단의 가능성 가운데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사회는 심각한 소외와 배제의 문제, 즉 극단적인 정보와 부의 양극화 현상으로 인한 점점 가속되는 정보와 부의 집중화와 그로 인해 소외되고 배제된 계층의 비인간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주창한 새로운 자유와 세계화는 결국 ‘자본의 자유’를 뜻하는 것이었고, 근대 국민국가의 통제마저도 무력화시키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다수의 약자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기본적 인권인 사회권마저도 허용하지 않는 비정한 심판자로 존재하며 그 약자들끼리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을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포착하고, 기존의 ‘빈곤’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보완하여 설명하고 대응하고자 나온 개념이 ‘사회적 배제’이다.

 

둘째, 가속되는 지구의 도시화와 슬럼의 급격한 양산, 그리고 사회적 배제의 연관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이크 데이비스가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지구의 도시화와 이 가운데 심각하게 양산되고 있는 도시의 슬럼화 현상은 깊은 연관이 있다. 특히 이 연관의 고리 뒤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서구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IMF와 세계은행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슬럼화로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인 도시 빈민들은 사회적 배제의 대상으로 직 ․ 간접적으로 편입되고 있다.

 

셋째, 슬럼이라는 지정학적geopolitical이며 사회 ․ 문화적인 시공간에서 만난 도시 빈민과 오순절-성령운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가속된 도시화와 그 가운데 급격하게 형성된 슬럼 그리고 그 한 귀퉁이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권마저 박탈당한 채 표류하고 있는 도시 빈민들은, 그곳에서 그러한 비인간적 운명을 비판하고 거부하며 극복하고자 하는 그리스도교의 오순절-성령운동을 만났다. 그런데 이 둘은 단순한 만남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둘은 서로의 맥락으로 서로를 끌어들여 새롭게 변화되어 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각 지역의 맥락에서 사회적 배제에 대한 비판이나 거부 또는 극복이라는 대응으로 나타났지만, 하나의 틀로 규정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양상으로 각 지역의 맥락에서 변화되어 갔다. 본 연구자는 이러한 실례로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 자료를 인용하여, 남미 도시 빈민들의 삶의 맥락과 만나 서로 변화된 오순절-성령운동,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여성들의 급진적인 해방의 통로로 서로 작용한 오순절-성령운동, 자신들의 지정학적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적인 맥락과 오순절-성령운동을 만나게 하여 새로운 생태적 ․ 우주적 차원의 운동으로 승화시켜가고 있는 아프리카 AICs의 오순절-성령운동, 50년대 남북전쟁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한 소외와 배제 그리고 문화적 표류 속에서 절망하던 이들과 만나 서로 변화된 한국의 오순절-성령운동을 제시했다.

 

넷째로 슬럼이라는 지정학적geopolitical이며 사회 ․ 문화적인 시공간에서 만나 서로 소통하며 서로를 변화시킨 도시 빈민과 오순절-성령운동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설명했다. 본 연구자는 이 상호작용이 바로, 앤드류 윌스의 “선교를 통한 그리스도의 복음 변화”와 라민 싸네의 “번역에 의한 선교” 개념에 해당하는 번역/해석의 과정임을 논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오순절-성령운동이 갖는 특성상, 이 운동이 도시 빈민들을 만나 소통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번역/해석의 과정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포섭되어 버린 현대사회 속 사회적 배제의 대상인 다수의 약자와 소통하며 그들과 함께 하는 저항적 ․ 해방적 운동이 될 수 있음을 논하였다.

다만 이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으로, 사회적 배제의 현장에서 시작되어 자라온 오순절-성령운동이 앞으로 더욱 저항적․해방적 힘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저항적 ․ 해방적’인 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불어 주장했다.

 

2) 평가

  본 연구자는 위와 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한 사회적 배제의 현장에서 새롭게 번역/해석되는 성령의 가능성을 논하였다. 이는 다시 말해, 탈(脫)식민주의post-Colonialism 시대에 사회적 배제의 대상인 도시 빈민들과 더불어 저항하고 해방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가능성으로서의 오순절-성령운동을 논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의 의의(意義)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이 논문을 논하는 자료구성과 분석에 있어서 그 엄밀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한 ‘사회적 배제의 현장’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이 사회적 현상의 자리에 자리 잡은 도시 빈민의 사회적 배제라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곳에 자리 잡고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오순절-성령운동이라는 종교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이것이 의미하는 사회적 배제의 현장에서 새롭게 번역/해석되는 ‘성령’이라는 해석학적 분석을 병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 사용된 자료들과 그 분석에 있어서, 먼저는 연구자의 사회학적 훈련이나 해석학적 훈련이 일천(日淺)하고 매우 부족하고, 둘째는 그 자료들 또한 이 논문의 주제만을 위해 조사되고 구성된 자료가 아니기에, 그 구성과 분석에 있어서 엄밀성이 매우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새롭게 번역/해석되는 성령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한 사회적 배제의 현장인 도시 빈민들의 표류하는 삶과 만나 저항적 ․ 해방적 운동으로 새롭게 번역/해석되는 오순절-성령운동의 긍정적인 측면을 조명하느라, 그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소홀히 다뤘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적 성찰도 부족한 감이 크다. 다만 위와 같은 한계들은 연구자의 능력 부족과 부족한 지면으로 인해 추후에 계속적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2. 마무리하며.

 

어떻게 하면 이 세계에 ‘입장’(入場)과 ‘소속’(所屬)을 허용 받을까 … ‘나 같은 인간이 과연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허용 받을 수 있을까?’ 즉, ‘입장권’, ‘소속권’이 주어질 것인가 하는 불안이다.

 

이 글은 한 ‘재일한국인’이자 작가의 고백이다. 그는 자기 평생의 불안의 이유를 어느 쪽에도 소속될 수 없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처지 때문임을, 죽기 2년 전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40년이 지나가던 때 고백한다. 그에게는 분명한 ‘입장권’, ‘소속을 알려주는 증명서’가 간절히 필요했다.

이 논문에서 초점을 맞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해 슬럼에서 표류중인 도시 빈민들 또한 그렇게 자신들의 영토에서 쫓겨났고, 자․타의에 의해 옮긴 삶의 터전과 시간들 속에서도 끊임없이 배제되고 이방인 취급을 받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거주지와 일터와 노동과 관계로부터 끊임없이 배제된, 그래서 늘 어딘가 ‘소속’되고 ‘새로운 영토’로 ‘입장’하기를 간절히 구하는 존재들이다. 이런 도시 빈민들은 오랫동안 누군가에 의해 전유appropriation당하고, 누군가에 의해 재현representation당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자신들의 ‘소망’과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목소리’와 ‘삶’으로부터도 소외당했다.

이런 이들에게, 오늘날 각 지역적 맥락과 사회적 배제의 현장에서 함께해온 오순절-성령운동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동행해 왔다. 여성신학자인 이숙진은 가부장적 헤게모니가 강력하게 작동한 한국 개신교 종교권력의 힘 아래 ‘미신성, 몰(沒)역사성, 반(反)지성’이라는 부정적 표상으로 왜곡되어온 오순절-성령운동에서 오히려 가부장적 권력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저항의 지점들을 포착하고자 하였다. "가부장적 구조에서 소외되고 주변화 되었던 여성들이 성령운동이라고 하는 역동적인 장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주체로 부상하면서 기존 체제에 대한 전복의 가능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읽어낸 것이다.

- 이하 줄임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자캐오

2010/03/16 02:20 2010/03/16 02:20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www.zacchaeus.kr/rss/response/169

Trackback URL : http://www.zacchaeus.kr/trackback/169

Leav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
« Previous : 1 : ... 852 : 853 : 854 : 855 : 856 : 857 : 858 : 859 : 860 : ... 999 : Next »

블로그 이미지

가난, 소외, 여성 & 그 언저리에 함께 하는 무지개빛 성령님...

- 자캐오

Calendar

«   2018/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330351
Today:
144
Yesterday:
158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