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의 편지.

# '아비'의 편지.



# 1.

나는 어릴 적 부터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자괴감에 눌려 맘 아프게 살았다.

버젓이 살아있는
내 아비가 마땅히 해야 하는
아비 노릇을 하지 못해

울 새도 없이

천방지축 세 아들을 거둬 먹이고
남들 눈 보기에 민망하지 않게 입히시던
어머니의 굽은 등이 안스러워
 
왜 난 아비가 없냐고
대들지도 못한 채 그렇게 자랐다.

그래서 난 옛 사람들이 쓴 책을 참 좋아했다.
 
마치, 먼 곳

아주 먼 곳에서 내 아비가 내게 보낸 편지를 읽는 것 같아 좋았다.
 
피천득님의 글을 읽으면
내 아비의 엄격함이 배어 나왔고
천상병님의 글을 읽으면
내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없던
내 아비의 운명 같은 게 느껴졌다.

 

# 2.

나는
지난 사진들을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어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

그 어제를 회상하고 있기에는
현재의 삶에 집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옛 사진을 펼쳐보면

그 사진의 속 나와 지금의 나는
연속성 보다는 단절된 모습이 더 많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초등) 학교 동창들은
중학생 시절의 나를 어색하게 느끼고

중학교 동창들은
고등학교때의 나를 쉽게 믿지 못한다.
 
또 고등학교 시절의 벗들은
대학교와 지금의 내 삶과 모습을 못내 아쉬워한다.


사람이란 자고로,
변하고 성장한단다.

그리고 그 변화와 성장은 가끔
과거와 환경을 통한 예측이란 걸 벗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이란,
그토록 신비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
지하철 안에서나 길에서
우연히 만난 옛 친구와
나는 무슨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인연은 인연이되,
더 이상 이어져 있지 않은 인연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자캐오

2007/03/10 16:39 2007/03/10 16:39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www.zacchaeus.kr/rss/response/7

Trackback URL : http://www.zacchaeus.kr/trackback/7

Leav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
« Previous : 1 : ... 902 : 903 : 904 : 905 : 906 : 907 : 908 : 909 : Next »

블로그 이미지

가난, 소외, 여성 & 그 언저리에 함께 하는 무지개빛 성령님...

- 자캐오

Calendar

«   2018/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Site Stats

Total hits:
303403
Today:
44
Yesterday:
113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