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은혜다"

이제 더 이상 청중도 없고 불도 꺼졌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은혜다.
이제 내 눈은 끝없는 밤에 감싸여 있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은혜다.
이제 어두운 밤을 걷고 낮에는 자지만
여전히 지금도 내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들린다.
"모든 것이 은혜다."

젊어서는 쉬웠다.
감정이 검정이듯, 죄가 죄인
머나먼 나라에서 허비하는 것이.
그러나 나이가 들어 보니 죄는 회색이며,
한밤중에 슬며시 올라오는 이 회의ㅡ
"예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실까?"

이제 나는 약을 먹고 경기를 보기보다는 듣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은혜다.
이제 옛 친구들이 찾아오고 내 이름을 축복하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은혜다.
이제 나는 늘 탕자이겠지만
여전히 지금도 내 아버지는 나를 향해 달려오신다.
모든 것이 은혜다.

브레넌 매닝 신부님 [모든 것이 은혜다 All is Grace] p261.


"이제 나는 늘 탕자이겠지만
여전히 지금도 내 아버지는 나를 향해 달려오신다.
모든 것이 은혜다."

책을 덮는다.

짧고도 깊은 탄식.. 아... 주님..

나는 여전히 탕자이다.

성공회라는 공동체에서 거의 9년이란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함께 식별하며 사제로 서품 받아 세워지고도,

나는 여전히 탕자이다.

브레넌 매닝 신부님처럼 알콜 중독이 있는 건 아니나,
내게도 타인에게 쉽게 말 못하는 온갖 중독의 문제들이 있다.

그 중독들과 싸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매번 패배한다. 그리고 다시 울며 붙든다.

아.. 주님...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란 호칭이 없다. 대신 '뭉치'라는 호칭이 있다. 사.고.뭉.치.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내 흐릿한 기억에도 다정다감했던 할머니의 온갖 사랑과 기대를 받고 자라다가, 원하는 건 모두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 성장한 사람. 여러 문제로 육사를 포기하고 일반 대학에 다니다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육군 삼사관학교에 들어간 사람.

집안의 배경과 여러 운이 따라 그곳에서도 승승장구. 그러다가 부관으로 모시던 장군이 '5.16.쿠테타'에 깊이 관여하여 다시 한 번 인생 역전. 그러나 결국 모시던 장군을 포함한 일부 세력이 '혁명 조항' 중에서 6조인 '민정 이양'을 주장한 것을 계기로 '반혁명(쿠테타) 사건(일명, 알래스카 토벌 작전)'으로 낙마. 이후 온갖 실패와 무너짐, 상처의 연속들..

그 가운데 결혼.. 하지만..


"내 친구 리처드 로어(Richard Rohr)가 말한 것처럼, '고통을 전환사키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고통을 전이시킨다." 나는 어머니가 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용의 또 다른 희생자였다. 그러나 용은 잘 죽지 않으며, 따라서 수치심은 계속해서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된다." p 59.

"세익스피어는 사랑을 '영원불변의 표시'라고 했다. 건강한 가족은 사랑의 '정의'를 안다. 그것은 분명하고, 경계가 있고, 획득할 수 있다. 불행히도 수치심에 매인 가족에게 사랑은 움직이는 표적이다. 하루는 이랬다가 또 하루는 저랬다가 하고, 이제 알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게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p 62.

그렇게 열살 차이가 나는 어머니를 만나 다시 한 번 결혼한 아버지에겐, 온갖 문제와 상처와 좌절, 그리고 수치심과 분노가 있었다. 그런 것들은 브레넌 매닝 신부님의 지적처럼, '전환'되지 못한 채 '전이'되었다.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은 줄곧 1등을 향한 욕망과 인정 받아야만 생존한다는 처절함, 그리고 실패하게 되면 그에 따른 심각한 매질이 따라 다녔다.

내가 나로 용납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취'한 것을 통해 용납과 거절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만난 하느님의 이미지도 줄곧 그랬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용납하시는 분이 아니라, 아니 말로는 늘 그런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의 성취'를 기준으로 용납하고 거절하시는 분이었다.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나 장로, 권사, 집사님들, 선생님들 모두 하느님 앞에서 '착하고 성실한 아이'가 되어야만 '용납'된다고 믿고 그렇게 가르쳤다. 아니,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행했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서도 늘 1등이어야만 했다. 가난한 모자 가정이라 교회의 재정 도움을 받는 처지에서도, 그 '부끄러움'을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리더 그룹이 되어야만 했다. 공부를 잘해야 했고, 공부를 못하면 교회라도 열심히 다녀야 했고, 교회에서 개근상을 받아도 "그 녀석 착하네"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것이 여자 혼자서 아들 셋을 키우며, 아버지가 망가트린 가정을 더 무너지지 않게 지키면서도, 온갖 빚을 갚아야만 했던 어머니에 대한 '채무'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 늘 "내가 너만 아니면.." "큰 형인 너라도.."란 말을 듣고 자란 내게, 어머니와의 관계는 늘 '채무 이행'의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철야 기도가 있던 금요일 밤, 하루에도 두세 가지 허드렛 일을 다니시던 어머니께서 밤일 가시다가 잠시 들리던 철야 기도회는 내게 해방구였다. 어릴 적엔 할머니 권사님들의 무릎 위에서, 커서는 그런 할머니 권사님들의 옆자리에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라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물 범벅'이 된 권사님들이 당신들의 팍팍한 삶에서 어떤 '사소한 은혜'들로 하느님께 '용납'받았는지 고백하는 기도와 간증들은 내게 '하느님의 다른 얼굴'을 경험하게 해줬다.

그리고..


"신뢰하는 마음은 용서받은 마음이고, 따라서 용서한다.

2003년 11월에 한 경험 때문에 나는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거의 10년이 다 되었을 때였다. 다른 것들에 대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어머니의 얼굴이 내 생각의 창으로 휙 지나갔다. 나이든 어머니나 할머니처럼 지친 얼굴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얼굴이었다. 여섯 살짜리 소녀인 어머니가 몬트리올에 있는 고아원 창턱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그 아이는 자신을 데려가서 조건 없이 사랑해 줄 엄마 아빠를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마침내 어머니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도 부랑아였던 것이다. 그러자 나의 모든 분노와 화가 사라져 버렸다." p 230.

지금 여기서는 다 말할 수 없는 여러 과정을 통해, 내게 전이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픔을 만났고, 다시 내 안에 웅크린 내면 아이를 만났으며, 다시 내 안에 새겨진 여러 가지 중독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만남은 그저 만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고, 치열한 투쟁과 포기, 그리고 용납됨을 거쳐 흉터가 남더라도 조금씩 상처가 아물고 치유됨을 경험하고 있다.

단 한 번에 해결되는 상처는 없고, 상처 받은 몇 배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용납이 있어야만 '치유'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다. 또한, 마치 전쟁 속 참호에 웅크린 병사처럼 내가 혼자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도, 주님은 하늘에 가득한 별과 달로 나와 함께 하고 계셨음을 깨닫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한 아이가 두 남녀의 사랑 속에 태어나든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태어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부모가 아기의 탄생을 기쁨으로 대했는지, 불안과 후회 속에 두려워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영원 전부터 하느님은 사랑과 기쁨으로 모든 탄생을 기다리고 계셨다. 하느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점지해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라고 하셨다 ... 하느님은 마치 세상에 사랑할 대상이 우리 한 명뿐인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 [선하게 태어난 우리] p 40.

라는 데스몬트 M. 투투 대주교의 고백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렇다. 하느님은 세상에 사랑할 대상이 민김 종훈(자캐오) 한 명인 것처럼 나를 사랑하셨고, 사랑하고 계시고, 사랑하실 것이다. 브레넌 매닝 신부님이 경험하신 것처럼, 그 경험이 희미해지고 그 믿음이 흔들려도 다시금 돌아가는 그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 마땅히 되어야 하는 우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신다. (왜냐하면 마땅히 되어야 하는 모습을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값싼 은혜'가 아니라, '거저 주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언저리의 사제'로, '길 위의 순례자'로 또 다른 순례자들을 초대하고 만나며 살아갈 수 있다. 내 흉터와 회복이 그대에게 치유가 될 수도 있고, 그대의 흉터와 회복이 내게 치유일 수 있기 때문에.. 그대와 나는 '적'이나 '경쟁자'가 아니라, '길벗'이며 '예수의 친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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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2/09/10 01:38 2012/09/10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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