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년 11월 08일, 그날이 오면.”

- 하깨 1:15하~2:9 / 2데살 2:1~5, 13~17 / 루가 20:27~38 -


오늘의 성서 본문..


 

“그리스도인은 구원 신화를 믿는 사람들처럼 지상에서의 과제와 어려움으로부터 영원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지막까지 다 맛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신 분이 그와 함께 하실 것이며, 그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할 것입니다. 차안(此岸)의 세계는 미리 지양될 수 없습니다 … 그리스도는 인간을 그 삶의 한복판에서 붙잡습니다.”

- [옥중서간]의 209-210쪽에서 발췌한 “삶의 한복판에서”,
『누구인가, 나는』 57쪽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 1. (말씀으로) 들어가면서.

오늘은 ‘꿈’에 대해서 나눠볼까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꿈이 있습니까? 햇볕 좋은 어느 날, 계단 끝에 앉아 햇볕을 쬐다가 문득 생각난 첫사랑에 발그레 웃는 것처럼, 그 꿈을 생각하기만 해도 빙그레 웃게 되는 그런 ‘소박한 꿈’이 있으십니까? 또는 마틴 루터 킹 Jr. 목사님이 워싱턴 광장에서 절규하듯 외치던 그런 ‘위대한 꿈’이 있으십니까?

저는 고등학교 참교육 운동 시절 때부터 지금까지 만나는 친구들이나, 나부터의 변화를 꿈꾸며 함께 모여 공부하는 벗들과 만나 흥에 겨워 노래 부를 때이면,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곤 합니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 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리고 저녁기도 시간의 ‘말씀 나눔’ 시간에 몇 번 얘기 드렸듯이, 저는 어릴 적 동네의 한 장로교회를 놀이터 삼아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할머니 권사님들의 등과 무릎은, 제 어린 시절의 이동식 침실이자 휴식처로 기억됩니다. 그런 제게 기억에 남는 노래가 있는데,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노래입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가사의 한 부분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 길 가고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이 노래를 부르시던 할머님들은 무슨 한이 그리 많으신지,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첫 소절을 다 부르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고, 노래가 끝날 쯤엔 곡조도 박자도 무시된 애절한 기도가 되곤 했었습니다. 무릎 위에 저를 앉힌 채 그 노래를 다 부르고 눈물콧물 범벅이 된 손으로 저를 어루만지시던 할머님들.


# 2. (말씀 안에서) 만나기.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가 꾸는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만들어져 온 소중한 사연들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런 소중한 꿈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믿고 삽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주님의 초대를 받고 함께 하신 여러분께, 작은 부탁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먼저 둘씩 짝을 지어 마주보고 앉아 주십시오. (잠시 시간을 둠.) 이왕 마주보고 앉으셨는데, 가볍게 인사라도 하는 건 어떨까요? (웃음) 자, 이제 살짝 고개만 돌려서 잠시 저를 주목해 주십시오. 이젠 조금 어려운 부탁을 하나 하겠습니다. 마주보신 상태에서, 오른손을 들어서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려 주십시오. 이제 잠시 눈을 감아 주십시오. 지금부터 제가 30초를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전부를 바쳐서 이루고 싶은 꿈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주십시오. 조금 추상적이라도 상관없으니 지금부터 시작해 주십시오. (약 45초 후.)

이제 조용히 눈을 뜨겠습니다. 돌아앉지 마시고, 그 상태에서 저를 보고 왼편에 앉으신 분들부터 앞에 계신 분에게 한 손을 펴 내밀어 주십시오. 됐나요? 그럼 이제, 맞은편에 앉으신 분은 그 손바닥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적어 주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의 손바닥에 ‘사랑해~’라고 적는 것처럼 정성스레 적어 주십시오. (잠시 시간을 둠.) 이제는 반대로 해 보겠습니다. 정성껏 적어 주십시오. (잠시 시간을 둠.)

이제는 맞은편의 사람이 적어준 꿈이 담긴 손을 살며시 쥐고, 잠시 그 꿈이 하느님의 뜻과 마음과 일치되는 꿈이 되게 해달라고 ‘중보의 기도’를 하겠습니다. (잠시 침묵.) 자, 이제 다시 저에게 주목해 주십시오.


# 3. (말씀에) 머물기.

오늘 우리가 함께 읽고 들은 성서의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이 땅에 하느님의 사람들을 보내신(남기신) 이유’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머물면서 세상을 마주보다가 세상을 닮아버린 ‘세상의 꿈’이 아닌, 하느님께서 친히 가르치시고 전해주신 ‘하느님의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뤄가야 할 하느님의 사람들이 선택해야 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1독서인 ‘하깨서 1:15하~2:9’은 오늘날의 이란 지역에 있던 바사, 즉 페르시아의 바빌로니아에 잡혀 갔던 유다 사람들을 향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민족과 종교에 비교적 관용적이었던 페르시아의 지배자인 고레스, 즉 키루스 Ⅱ세의 칙령에 의해 오랜 포로생활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된 유다 백성들은 다시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옛 성전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자신들이 짓고 있던 제 2성전의 초라함에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실망하고 지쳐갑니다. 이런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하느님께서는 하깨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라는 의미의 ‘만군의 야웨’, 그 야웨 하느님과 맺은 구원 계약, 그리고 하느님의 영을 통해 그 계약이 포로기 이후에도 계속 유효함을 확인시켜주시는 하느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의지할 것. 그처럼 야웨의 약속에 의지하여 성전을 지을 때, 하느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 징벌의 의미로 약탈된 첫 번째 성전의 수치를 또 다시 당하지 않고 그 성전보다 더 영화로운 성전을 볼 것이라고(에즈 8:22). 그 때 비로소 새 세상이 되어 뭇 민족이 그 성전으로 나아오고, 이 모든 민족의 주인이신 야웨 하느님께서 평화를 주시리라“고 말입니다. 

2독서인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부분은, ‘(마지막) 주님의 날’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삶과 선택에 대한 바울 선생님의 가르침에 대한 내용입니다. 당시 그의 가르침을 교묘하게 왜곡하여, 그것이 참된 가르침이라고 주장하던 이들에 대해 경계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내용인 것입니다(2데살 2:2, 5).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올바른 가르침과 전통이 가르치는, 하느님의 위로와 희망을 힘입어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격려하는 이야기입니다(2데살 2:15-17).

복음 말씀인 ‘루가의 복음서 20:27~38’에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과 논쟁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는 달리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던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똑같이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논쟁하던 방식으로 예수님께 도전합니다. 한 마디로 ‘율법을 연구한다는 저들에게도 논리적으로 이렇게 어려운 문제인데 당신이라고 뭐가 다르겠느냐.’는 식입니다. 당시에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천사와 영적 존재들에 대해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며 서로를 비판하던 상황이었습니다(사도 23:6~8). 그런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도전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당신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저 세상에서 살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 있기에 죽었어도 다시 살아나 모두 살아 있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이 하느님 앞에서 살았기에 죽어도 다시 산 것처럼 ‘하느님의 자녀’도 그럴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함께 읽고 들은 말씀은 이런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느님의 사람들, 다른 말로 하느님의 구원 계약이라는 약속에 의지하여 사는 예루살렘에 되돌아온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께서 택하셔서 구원을 얻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통해 거룩한 삶을 살며 진리를 굳게 믿고 참된 복음을 지키며 사는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 하느님 앞에 살기에 죽었어도 다시 살아나 저 세상에서 살 자격을 얻은 부활의 사람들.

하느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이키셨을 때, 그들은 옛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을 회상하거나 온전한 자유는 없을지라도 풍족했던 바빌로니아 땅을 뒤돌아보며 실망했습니다. 이들을 향해 야웨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이끌어 건져 내시며 맺으신 그 구원의 계약을 다시 꿈꾸게 하셨습니다.

한편 데살로니가 교회를 흔들어 놓았던 왜곡된 가르침 앞에서, ‘참된 가르침’을 놓치지 않고 계속 꿈꾸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날’은 하느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내적인 깨달음을 통해 각자가 성취하는 것이기에 이미 그날은 각자에게 왔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왜곡된 가르침이나(2데살 2:2), 그 ‘주님의 날’이 바로 눈앞에 왔으니 앞서서 그날을 예비하자고 그러니 이 세상에서 뛰쳐나와 우리만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광적인 종말론자들의 왜곡된 가르침(2데살 2:3)이 주는 거짓 꿈과 대적하며 말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가르침을 나만이 안다면서 부활이 있느냐 없느냐는 표면적인 논쟁거리에만 집착하느라 ‘부활의 참된 의미’에 집중하여 살아가는 삶은 뒷전인 이들에게, 하느님 앞에서 살아갈 때 비로소 얻게 되는 ‘참된 부활’을 꿈꾸게 하셨습니다.


# 4. (말씀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기.

이처럼 우리는 너무 쉽게 이 지상에서의 과제와 어려움으로부터 피안(彼岸)으로 도망가려는 꿈을 꿉니다. 그것이 ‘구원’이고 ‘주님의 날’이며 ‘부활’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와 어려움으로부터 저 건너편으로 도망가려고 꾸는 ‘꿈’은 ‘거짓된, 가짜 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과는 정반대의 ‘구원’과 ‘주님의 날’과 ‘부활’을 꿈꾸며 살기를 강하게 요청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와 어려움 속으로, 기꺼이 뛰어 들어가는 ‘꿈’을 선택하기를 요청하시는 겁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심어 놓고 남겨 놓으신 구원의 씨앗들, 참된 복음의 빛들인 우리가 온전히 열매를 맺어 이 하늘과 땅에서 죽음과 어둠을 몰아낼 그날까지, 세상이 주는 꿈을 뒤돌아보지 말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요청하십니다. 그 죽음과 어둠을 닮아버리거나 결코 포기하지 말고, 오늘 노래한 시편 17:4~5처럼 “남들이야 무얼 하든지 이 몸은 당신의 말씀을 따라 그 험한 길을 꾸준히 걸었습니다.”는 고백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하느님의 꿈’은, 예수님과 논쟁했던 사두사이파 사람들처럼 하느님이 주시는 ‘참된 부활’이라는 꿈 없이 그저 이 땅에서의 삶과 영광에 눈멀어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핵심은 상관없이, 그저 ‘부활’이라는 꿈의 형식만 쫓으며 이 세상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사는, 간혹 상관하더라도 우리들의 종교적/도덕적인 순결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서만, 그만큼만 상관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선택과도 다릅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우리는 어떤 꿈을 꾸며 살아왔던 사람이냐는 것으로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이 세상을 닮아버린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우리를 붙잡아 꾸게 하신 그 꿈을 꿉시다. 그날이 올 때까지, “세상의 한복판에서, 십자가와 부활로 죽음과 어둠을 몰아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라는 꿈을 놓치지 말고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에서 죽음과 어둠을 몰아냅시다. 그리하여 이 땅의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없어지는 날, 그것이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될 날을 위해 살아갑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바람숨결 합장.)



* 이번 학기 설교학 시간에 동료들 앞에서 설교 평가를 받는 시간이 있었다. 큰 부담 없이 그저 내가 만난 말씀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준비한 말씀나눔. 1,2 독서와 복음 말씀을 읽는 전통을 지키는 성공회 성무일과 본문에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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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07/11/17 04:18 2007/11/17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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