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년 2월 7일, 말씀 나눔]

"덤의 신앙."


본문, 마태오의 복음 7:14~23..

  우리 이렇게 서로를 축복합시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이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름을 넣어서 한 번 더 축복합시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때가 없으신가요? 가끔 물건을 살 때, 지금 당장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닌데도 껴주거나 얹어주는 물건이 맘에 들어서 그 물건을 살 때 말입니다. 저는 안해랑 같이 장을 볼 때나 혼자서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때이면 가끔 그런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어린이집 선생으로 일하는 안해의 월급으로 대출금이랑 공과금 내고 책사면 뻔한 재정 형편인지라 남들처럼 무엇을 사는데 큰 고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뻔한 재정 형편이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될 때가 더 많습니다. 하나를 사더라도 두 번 세 번 고민을 하고 비교하고서 사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1000ml 짜리 우유에 붙어 있는 250ml 짜리 우유는 저의 시선과 맘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경제논리를 간단히 적용 해봐도 같은 비용을 지불하고 더 많은 양을 샀다면 손해 보지 않은 선택을 했으니 이는 칭찬받을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정작 제게 딱 필요한 건, 1,250ml의 우유가 아니라 1,000ml의 우유이었고, 대부분 넘치는 부분은 결국 버리게 되는 저의 욕심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처럼 예언을 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는 자가 되어 살 때 주어지는 하나의 덤일 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하느님의 뜻에 맞게 실천하며 사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앞을 읽어봅시다. 첫째,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로 알고 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다른 이와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느님의 기준으로 이리저리 칼질하기 전에, 먼저 나의 중심을 하느님의 기준으로 살피는 겸손한 자가 되어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진짜 부모는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주지 않듯이, 반대로 돌을 달라하면 그것이 아무리 자녀의 기도라 할지라도 돌이 아닌 빵을 주시는 분이 참 하느님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만사형통의 하느님'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만사형통의 하느님' 더하기, 바로잡아주시는 하느님이시기까지 하십니다. 세상의 신들은 그저 우리가 칭얼거리며 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면서 우리가 그를 떠나지 못하게 하지만,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며 사탕을 달라 꿀물을 달라 더 달콤한 것을 달라고 아무리 졸라대도 우리의 이빨이 썩지 않고 우리의 성장에 딱 필요한 만큼만 허락하시고 나머지는 쓰기도 하고 딱딱하기도 한 것을 주시는 그런 진짜 부모와 같은 하느님이신 겁니다. 우리는 이런 하느님께 늘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작하고 끝맺고 갚아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우리의 마음과 행동으로 결정하여 열매 맺어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이 나에게 선하신 하느님의 방법으로 하느님 앞에서 대하듯 나를 대해주기를 바라듯이 나도 다른 이들을 늘 그렇게 대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 오늘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렇게 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은 좁고 험한 그렇지만 생명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으면 사는 것이란 것입니다. 행위를 보아 그가 하느님의 사람인지 세상 신의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회당에서 그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큰 술이 달린 멋들어진 옷을 입고 다니면서 정작 그 속은 썩어가서 그 악취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듯이,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한편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여도 이 모든 것이 방금 말씀드린 그런 매일의 삶들 위에 놓여진 것이 아니라면, 참 사랑 위에 놓여지는 열매들이 아니라면 이것들은 오히려 악한 것이라는 것을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과 복은 우리가 원하고 뜻하는 사랑과 복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그 하느님의 사랑과 복을 받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덤에 눈과 마음을 뺏겨 정작 받아야 할 본래의 것을 잃어버리는 자가 되지 않기를 가슴 아프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07년 2월 7일, 바람숨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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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07/04/29 23:56 2007/04/2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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