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년 7월 16일 말씀나눔 ]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제가 25살이 되던 해, 인천 가좌동에 있는 한 장로교회의 교육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당시의 가좌동은 서울의 변두리라는 특성 상 서울에서 여러 가지 실패를 경험하고 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 토박이인 몇몇 분을 제외하고는 그 교회에서 5년 이상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내려갔다가 심기일전해서 어느 정도 생활이 회복되면 서울로 올라오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의외로 젊은 분들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지방에서 오신 분들이 많았죠. 지방에서 오셨는데, 서울에 바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울이나 가까운 인천에 직장을 잡고 일단 상대적으로 집값이 매우 싼 편인 그 동네에 자리를 잡으신 것이죠. 그래서 교회 사역은 재정적으로나 봉사하는 사람이거나 모두 부족했고, 다들 빡빡한 생활에 많은 눈물의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교회에 있었던 2년여의 시간 동안, 저는 그분들을 통해 이 자리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교회의 많은 분들이 가족들은 멀리 있기에 교회 가족들을 친 가족처럼 여기며 살았고, 교회 가족 중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는 교회 대부분의 가족들이 현실적으로 무엇인가를 도울 수 없는 어려운 형편이었기에 그 분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인, 서로를 위해 간절히 하느님께 탄원하며 기도하는 일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이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주님께 축복을 받으면,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린 것처럼 너무나 기뻐하며 온 교회 가족들이 모여 축하하고 그 축복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일에 그리도 열심이셨습니다. 또 가끔씩 밀리던 목사님이나 저의 사례비가 늘 미안하셨는지, 정말 작은 것이라도 생기면 그것을 나눠 목사님과 서울로 올라오던 저의 가방 가득히 넣어 주시곤 했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참으로 신기한 건, 혹시라도 교회에서 사례비가 밀리거나 저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겨서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일을 다 마무리 짓고 계산해보면 필요한 재정을 다 채우고도 남는 재정적/ 영적 후원들로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게 사역이란 늘 가슴 설레고 제가 상상할 수도 없는 축복의 선물이 가득 숨겨져 있는 보물창고와도 같습니다.

 이야기의 서두부터 제가 섬겼던 교회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 교회에서 오늘 본문의 가르침을 체험하게 한 사건이 하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매우 어려운 일이 생겨서 여러 가지 급한 문제가 생겼던 때였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었는데 아무 진전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주일이 돌아와서 교회로 내려갔지요. 하지만 내려가는 한 시간 반의 시간동안에도 제 머리에는 그 문제로 가득했고, 그날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도 제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런 저의 표정에 교회 분들은 조심스레 이유를 물어오셨고 저는 그 문제에 대해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제 표정이 계속 어두웠나 봅니다. 초등학생 친구 한 명이 제게 오더니, "전도사님 아픈 일 있어요?"라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아니야, 아무 일도 아니야.", "에이~ 전도사님, 거짓말하면 나쁜 사람이에요.", "괜찮아. 금방 좋아질 거야.", "그래요? 그럼 전도사님도 하느님께 기도한 거예요?", "응?", "전도사님이 아까 예배시간 때 설교하시면서 그랬잖아요. 하느님은 우리 엄마나 아빠처럼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엄마나 아빠가 보기에 좋은 일들을 이야기하면 다 들어주시듯이 하느님도 우리가 하느님 맘에 들게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고요! 전도사님이 아픈 일이 금방 좋아진다고 했으니깐, 전도사님도 하느님 맘에 들게 전부 기도한거잖아요."

 그날 저와 저를 위해 슬픔을 함께 나눠주던 어른들은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우리의 믿음 없음을 회개하며 기도했고 하느님 앞에 저의 문제들을 올려 드렸습니다.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의 반만큼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저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말이죠.


 오늘 본문을 봅시다.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에게 감추신 것들을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이처럼 하느님의 뜻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그 계시의 열쇠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신 분도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어린아이들이나 '소자들'(10:42 참조), '작은이들'(18:3,6,10,14 참조),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5:3-4 참조)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당시에 소외받고 무시당하던 이런 가난한 이들은 그 잘난 사람들의 자비 없는 욕심에 의해 거의 무방비로 착취당하고 희생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기에 더욱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더 가난해지고 소외받을수록 그들의 소망을 오직 하느님께 두고, 그 소망에 대한 모든 대답을 자신들의 지혜나 힘이나 능력에 두지 않고 오직 주님께만 구할 수밖에 없는 이들입니다.

 마태오복음 5장 3절부터 12절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팔복을 보면 잘 알 수 있듯, 그렇기에 이토록 당신을 간절히 찾는 이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주님과 이 가난한 이들은 특별한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두 아이가 있는데, 한명은 자신이 잘나서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 가진 것처럼 행세하며 감사할 줄 모르고, 한명은 자신이 누리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어버이가 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아이라면 여러분은 누구에게 더욱 맘이 갈까요?

 오늘의 본문은 구조 상 어제의 복음 부분과 대칭되는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11장 20절에서 24절의 말씀을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이전까지 선교의 초점을 맞췄던 세 동네를 꾸짖으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계신다는 징표인 하느님의 권능을 그토록 보여줬고 복음까지 선포했는데도 회개하고 돌아오지 못하는 그들에게 화가 나신 것입니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꾸짖으십니다. "구약시대부터 악명 높은 이교도의 도시인 띠로(두로)와 시돈(시돈) 그리고 소돔도 하느님의 권능만 보여줘도 그들은 회개했을 텐데, 나는 너희들은 사랑해서 하느님의 권능에 복음까지 선포했는데도 왜 회개하지 못하느냐!"

 오늘의 말씀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미 하느님을 잘 알고 있고 풍성한 축복을 받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축복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기적임을 깨닫지 못한 채 감사할 줄 모르고 심지어 복음이 선포되어도 회개하고 하느님께 겸손히 나아오지 못하는데, 하느님을 잘 알지 못하고 축복이라고는 살아있다는 것 외에는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낮은 이들은 작은 축복인 하느님의 기적, 그 하느님의 권능의 자락만 보여도 하느님을 보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회개하며 겸손히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첫 사역지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랬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없고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지만, 매일의 삶에 허락되어지는 작은 축복에 온 우주를 얻은 것보다 더욱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이 원하신 뜻입니다. 또한 바로 이런 이들이 하느님의 나타남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느님이 선택해 주시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선택의 길이 놓여있습니다. 우리는 어버이의 손에 들린 선물을 어버이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자녀입니까? 아니면 어버이의 손에 들린 선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버이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 감사를 표현하며 살 줄 아는 자녀입니까?
오히려 어버이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고아와 같은 이방의 도시는 어버이의 선물만 봐도 그 어버이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돌이켜 옵니다. 세상적인 기준의 축복을 받지 못한 이들은 이 땅에서 축복의 끝자락만 맛봐도 그 축복의 주인인 하느님을 봅니다.

 요한의 복음서 3장 35절을 봅시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셨다." 요한의 복음서 17장 2절을 봅시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모든 사람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고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방의 도시와 고아처럼 그 사랑을 조금만 맛 봐도 그 사랑의 전부를 간절히 사모하는, 바로 이와 같은 사람들이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맡긴 모든 축복과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얻을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 자리 하느님 앞에 겸손히 나온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이 하느님 만나기를 간절히 목말라 하고 그 하느님의 축복을 애타게 사모하는 사람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06년 07월 19일, 바람숨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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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07/03/23 01:56 2007/03/23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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