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이제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당황하지 말아라! 네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수치를 잊으며, 과부 시절의 치욕을 네가 다시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5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의 남편이 되실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너를 구속하신 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불릴 것이다.
6 버림을 받아서 마음이 아픈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받은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너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13 나 주가 너의 모든 아이를 제자로 삼아 가르치겠고, 너의 아이들은 번영과 평화를 누릴 것이다.
14 네가 공의의 터 위에 굳게 설 것이며, 억압이 너에게서 멀어질 것이니 너에게서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공포 또한 사라져, 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15 너를 공격하는 자들이 반드시 있겠지만, 그것은 내가 허락한 것이 아니다. 너를 공격하는 자는 누구든 너에게 패할 것이다.
16 "나는 대장장이를 창조하였다. 그는 숯불을 피워서 자기가 쓸 연장을 만든다. 군인도 내가 창조하였다. 그는 무기를 가지고 사람을 죽인다."
17 그러나 어떤 무기도 너를 상하게 하지 못하고, 너에게 맞서서 송사하려고 일어나 혀를 놀리는 자를 네가 모두 논박할 것이다. "나의 종들을 내가 이렇게 막아 주고, 그들이 승리를 차지하도록 하겠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표준새번역개정판, 이사야 54:4-6, 13-17)


난 과부의 아들이다.

법적으로는 과부가 아니나 이제 예순살이 되어버린,
거친 아들 셋을 홀로 당당하게 키우신 어머니는
그 오랜 세월을 실제적인 과부로 살아오셨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계신다.

그런 어머니는 혹시라도 내가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이 싫고
명분과 타인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다 실패자로 사는 것이 싫으시다며,

자주 볼 수 없었으나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던 아버지를 몰아 세웠고

그로 인해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던 어린 나와
아주 오랫동안 싸웠고 싸울 수밖에 없던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세월이란 참으로 묘하고 묘해서,

그런 우리가 나이가 들어

어머니는 당신의 눈으로 내가 '아버지'를 닮으면서도
당신이 걱정하던 '아버지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음을 확인하셨고,

나는 어머니가 왜 그토록 내가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을 극도로 염려하셨는지를 이해하게 되어,

이제 어머니는 그저 맘 깊이 나의 앞길을 위해 묵묵히 기도해주시고,
나는 어디서든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가져다준 그 '이해와 용납'이라는 선물은,

2003년부터 내 '사회적 성명'에 '민김'이라는 부모 성을 함께 쓰며
호주제 폐지 운동에 적극적인 찬성을 표현했던 나의 몸부림에
나이드신 어머니께서 즐거이 동의해 주실 수 있는 힘이 되어 주기까지 했다.



아마도 이토록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살다보면 내가 '과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마치 술 안주 삼듯이 쉽게 툭툭 내지르며
사목자로서 내 자질까지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결손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건강하게 사목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샤나건 웃지요."라는 말을 기억하며 그냥 빙그레 웃곤 한다.

그러나 내 안의 어린아이는 그런 비난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나 보다.



지하철에서 읽던 책에 적힌 이사야서 54장 4절에서 6절의 말씀..

그 중에서도,
 
"버림을 받아서 마음이 아픈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받은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겨우 겨우 억누르며, 안해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가 구슬피 울고 싶은 것을 느끼며,
그 녀석이 펑펑 울며 떼 쓰고 싶은 걸 참고 또 참으면서,
나와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를 잘 알고 있는 안해에게 고백했다.

난 과부의 아들이고,
이런 나를 부인하지도 동정받으려 하지도 않으며,
이런 나에 대해 과부의 아들이라 좋은 사목자가 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말하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쉽게 용서하기가 어렵다고..


그 문자를 받은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울었다고 했다.

너무도 슬프고 슬픈 내 마음이 느껴져서 울었다고..
울면서도 내가 걱정되어 전화한 것이라고.. 이젠 자기가 내 곁에 있으니 울지 말라고..

"난 종훈씨가 과부의 아들이라서 부끄러운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그런 종훈씨 어머니가 자랑스럽고,
  그런 상황에서도 건강하게 자라서
  지금은 나와 주위 사람들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있는 종훈씨가 자랑스러워요."

그렇다. 난 과부의 아들이다.
그리고 분명 내 안엔 아직까지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있다.

그 그림자 속에서 외롭게 울며 서 있는 길 잃은 어린아이도 있다.

그러나 난 그런 내가 부끄럽지도 동정받고 싶지도 않다.

그건 '그것이 나'이기 때문이고, 하느님은 그 과정을 통해
헨리 나웬 신부의 표현처럼 '상처입은 치유자'가 무엇인지 내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좋은 사목자라면

한 사람의 수치를 그와 우리의 감사와 기쁨이 되도록 하시는
주님처럼 살아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한 사람이 스스로 더 이상 수치로 여기지 않는 문제를
수치라고 비난하여 더욱 수치스럽게 만드는 건
어둠의 강한 기운에 사로잡힌 자만이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 밤..

더 이상 내가 '수치'로 여기지 않는 일을
'수치'라며 손가락질하는 그들을 위해 다시 한 번 기도한다.

난 '상실'과 '수치'가 무엇인지 잘 아는 과부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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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08/12/02 03:52 2008/12/02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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