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동지(同志)

내가 입장이 꽤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일할 때가 있는 건, 그 사람을 큰 틀에서 ‘동지’(同志)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다른 입장’을 충실히 듣고 ‘조정과 협의’를 거쳐 ‘우리의 한 걸음’을 이뤄가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를 더 이상 ‘동지’라 부르기 어렵다.

그런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박멸’이나 ‘삭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이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재밌는 건, 그런 사람들일수록 관계와 조직을 ‘추종과 조종’으로 이해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나도 틀릴 수 있다. 아니, 틀릴 때가 많다. 그래서 나와 사뭇 다른 당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이 ‘분명한 근거와 역사를 가진 치열한 토론’ 가운데 조정되고 협의될 수 없다면, 내가 당신을 견뎌낼 이유가 없다.

우리가 서로를 듣고 알아차리는 쉽지 않은 과정을 견뎌내는 건, 그 과정을 통해 나와 너, ‘우리’가 조금씩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를 가능하게 해줄 ‘좋은 도구’가 있다는 배움 때문이다.

나와 다른 당신, 근거와 역사를 가진 치열한 토론, 견뎌낼 힘, 그 과정에서 쌓이는 신뢰, 좋은 도구. 이것들이 사뭇 다른 당신과 나를 ‘계속’ 동지일 수 있게 한다.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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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02/04 00:40 2018/02/0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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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을 위한 교회. 좋죠.

그런데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요. 성서에서 ‘돌아서다, 뒤바뀌다’라는 의미를 갖는 ‘회개’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키 작은 자캐오.

그는 예수를 만난 후 회개하고, 주님 보시기에 부정하게 얻은 재물을 4배씩 더 얹어 갚겠다고 했잖아요. 주님을 만났던 ‘훌륭한 부자 청년’이 구원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 놓으라는 말씀에 말없이 돌아섰던 것과는 다르게, 그는 주님이 요구하지도 않은 것을 내어 놓았죠.

‘회개, 죄인들을 위한 교회’라는 건, 그런 걸 말한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요. ‘어제의 나와 우리, 그로부터 연속된 존재나 동시에 단절되고 변화된 나와 우리’라는 고백과 증언이란 거 알잖아요.

그냥 죄인인 그 상태 그대로 “나, 회개했어요. 이제 용서와 구원 내놓으시오!” 이런 게 아니잖아요.

이상, 2018년을 살고 있는 성공회의 자캐오가 말씀드렸습니다.

* 덧. 개신교회에서 주로 읽는 개역개정판 성서에서는 ‘삭개오’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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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02/01 00:17 2018/02/0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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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당연한 게 아니다. 재능 투쟁에서,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KTX 투쟁의 곁에서 목격한 노동자들의 현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국가와 기업, 여러 조직은 한 개인이 ‘국가나 기업, 조직’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걸 전제로 자신들이 노동자들이 누려야 할 마땅한 기본 권리를 ‘베풀어준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노동자는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는다. 오직 숫자로 생각되는데, 그조차도 중요한 숫자와 그렇지 않은 숫자가 따로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를 비롯한 일자리는 국가나 기업, 여러 조직이 베풀어준 게 아니다. 그들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와 계약을 맺었을 뿐이고, 그렇다면 ‘여러 가지로 안전한 노동 환경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런 조건을 어긴 사용자라면, 이재용씨가 아니라 이재용씨 조상이 와도 그 잘못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소중하다’라는 게 대다수 종교의 가르침이다. 내가 속한 그리스도교와 성공회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르침이 ‘그럴듯한 위장’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작동시키는 ‘중요한 기준’이 되도록 하는 것, 이게 바로 종교인들의 역할이다.

삼성전자 본사가 있었던 강남역 8번 출구 앞 ‘삼성타운’ 앞에서 10년째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이재용씨 2심 선고를 앞두고, 좋지 않은 여러 징후 때문에 함께 모인 사람들.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딸을 백혈병으로 먼저 보낸 故황유미님의 아버지 황상기님. 평범한 사람의 일상과 소소한 행복을 빼앗고 그를 ‘투사’로 만든 한국 사회와 기업.

어제의 평범했던 하루가 오늘은 다시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재용엄중처벌 #삼성직업병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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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1 00:48 2018/01/3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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