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전통을 재해석∙재구성하여 살아가자고 말하는 건 왜 일까.

이 세계에서 ‘구체적인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구성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80년대 ‘국가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현실세계는 ‘자본주의 체계의 천국’으로 인식됐다. 그런데 철학과 사회학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다시금 ‘갱신된 사회주의적 상상력’이 요청되고 있다.

점점 첨예해지는 ‘극단적 자본주의’를 향해 다양한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제어장치 없이 폭주하는 자본주의를 향해 견제와 수정, 보완과 대체를 말하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성공회’라는 역사적∙실체적∙구체적 신앙공동체의 맥락에 서 있는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전통을 말하는가.

첫째, 역사와 경험은 나선형식으로 반복되며 나아갈 때가 많아서 어제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이다.

둘째로 눈 앞에 존재하는 신앙 공동체라는, ‘하느님과 동행하려고 애쓰는 교회와 사람들’이 마중물이 될 때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 어제에 머물지 않고 오늘과 내일도 하느님과 함께 이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고민과 역동 그리고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2박 3일 간 진행된 대한성공회 전국 성직자 신학연수 이후, ‘하나의 기둥, 여러 갈래’라는 전제 아래 ‘기독교 사회주의 전통’이 이 땅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꽃 피우길 꿈꾸는 이의 두 번째 잡감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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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01:55 2018/09/02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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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

그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사람들 가운데 계신다.

그렇다면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느님으로부터 온다.

교회의 전통은 어떻게 확인되는가?

하느님과 동행해 온 어제와 오늘의 사람들을 통해 확인된다.

그 전통은 어떻게 계속되는가?

하느님과 동행하는 오늘과 내일의 사람들을 통해 계속된다.

교회의 전통은 어떻게 확인되는가?

어제와 오늘의 사람들, 오늘과 내일의 사람들을 통해서만 확인되고 계속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전통은 그 사람들 한가운데에서 설명되고 부대끼며 전해지고 재구성되며 계속된다.

교회에는 권위와 전통을 설명하고 전달하는 여러 텍스트, 하느님과 사람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를 독특한 방식으로 가리키고 설명하는 성서와 또 하나의 해설인 신학이란 ‘텍스트’가 있다.

이런 텍스트는 결국 사람들 한가운데에서 읽혀지고 해석되어야 한다. 그들이 읽고 해석하며 갈등하는 가운데 다시 전해지고 재구성되어 내일로 이어져 간다.

신학자와 사목자들은 ‘하느님과 동행하는 교회의 사람들’을 이 과정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때 그 역할을 감당한다는 건, 내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수행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권위와 전통은 누가 누구에게 베풀어주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그 권위와 전통은 그 공동체 안팎에 있는 ‘작은 이들’ 앞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 작은 이들이 그 권위와 전통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고, 그 권위와 전통을 강조하고 드러내는 이들에게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게 그 권위와 전통이 이 땅에 자리 잡은 ‘진짜 얼굴’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 2박 3일 간 진행된 대한성공회 전국 성직자 신학연수를 마친 후, 성공회라는 기둥에서 자라난 한 갈래인 ‘기독교 사회주의 전통’이 이 땅에 또 다른 방식으로 꽃 피우길 꿈꾸는 이의 첫 번째 잡감 나눔.

** 이를 위해 성공회의 본류와 기독교 사회주의 전통에 대해 더 공부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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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0 12:42 2018/08/3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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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어느새.

어느새 내가 바라보는 어딘가를 함께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단 걸 깨닫는다.

얼마 전까지 ‘답이 없는 현실’에 강하게 분노하고 이 따위 현실을 만들고 있는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스스로 위안하는 걸로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이런 현실에 대한 답을 논해야 하고,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자리에 서 있을 때가 많아졌다. 소위 ‘선배’라고 불리는 자리.

당신과 내가 하나의 공동체에 속한 ‘우리’라고 불리는 한, 어느새 내가 ‘선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나는 달라’ 라는 명쾌하고 그럴듯한 표현이나 활동만 가지고는 변하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내게 가벼운 미소와 차가운 마음으로 질문할 거다. “그때 선배는 어디서 무얼 하셨나요?”

내가 누군가에게 ‘선배’라고 불리는 순간, 정말 내가 속한 공동체나 조직이 변해야 한다면, 그 안에 있는 ‘여러 사람들’의 지향이나 주장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부딪혀야 한다.

그리고 내가 힘이 없다거나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는 말은 ‘변명’일 때가 많다는 걸 기억하며 부딪혀야 한다. 할 수 있는 한, 그 사람들과 토론하고 설득하며 변화를 위해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왜냐고? 이제 내 뒤와 내 곁에는 나보다 더 ‘힘이 없거나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종종 ‘후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사람들 말이다.

더 이상 누구 탓만 해서는 달라질 게 없는 시간과 자리에 서 있다는 걸 깨닫는다. 어.느.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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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6 02:18 2018/08/26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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