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계와 한 사람의 전환점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오늘은 연중시기가 시작하는 첫 일요일이자 주의 세례 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받은 이야기를 기록하여 전하는 복음 말씀을 읽고 듣습니다.

우리, 한 목소리로 오늘 복음 말씀인 루가의 복음서 3장 21절부터 22절까지 읽어 봅시다.

21 사람들이 모두 세례를 받고 있을 때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홀연히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그에게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세례를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우리, 교회의 스승인 키릴루스가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 한 부분을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성령과의 친교는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 신성에 참여하게 하며 하느님의 말씀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와 같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모든 선행의 본보기요 길이 되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만물의 맏이이신 그분께서는 이 일에서도 본을 세우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거룩한 세례의 권능에 대해 배우고 그 큰 은총에 다가가면 얼마나 많은 것을 얻게 되는지 알게 하시려고 몸소 그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루카 복음 주해> 11., <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성경 Ⅳ>, 136쪽.

교회의 스승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 세례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세례는 우리의 본보기이자 길이 되기 위한 은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는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서, 우리 눈높이로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을 먼저 걸어가셨다는 거죠.

그래서 이 길은 우리를 성령과의 친교로 이끌고 신성에 참여하게 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가 강조해 온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세례의 의미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인 당신의 신성에 참여하도록 먼저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우리가 그 세례에 동참할 때 우리는 그 ‘거룩한 세례의 권능’을 알게 된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이런 신앙 고백을 우리와 공유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세례’ 이야기를 기록하여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례는 교회가 형성될 때 중요하게 여겨졌던 ‘성령과의 만남’과 항상 함께 얘기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스승 중 한 명인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그때에는 성령께서 내리실 때면 당신께서 내려왔음을 눈에 보이는 광경으로 보여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분을 받은 이들은 온갖 민족의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되어 교회가 모든 민족 가운데서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게 되리라는 것을 나타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때에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때면, 성령께서 당신의 모습을 그들 안에서 보여주셨습니다.”
-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49(99),10., <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성경 Ⅶ>, 170-171쪽.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을 때에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온 성령, 그 성령을 받은 이들은 “온갖 민족의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교회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인 사도들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때면, 성령께서 당신의 모습을 그들 안에서 보여주셨습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잘 알고 있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야기’에서 성령께서는 당신을 신자들 가운데 보여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온갖 민족의 언어로 복음을 말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초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세례와 성령 강림, 그 세례에 동참하는 우리와 모든 민족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깊이 연관된 사건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사회와 유대인들만을 위한 ‘복된 소식’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에게 ‘복된 소식’임을 알려주는 일들이라고 해석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있는 모든 민족들에게 복된 소식, 그러니까 ‘전환점’이라는 얘기인 거죠.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민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환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와 신자들은 유대인들 뿐 아니라, 헬라인을 비롯해 모든 민족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초기 교회와 신자들은 이런 가르침이 오늘 1독서인 이사야서의 ‘올바른 해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여기서 오늘 1독서인 이사야서 43장 5절부터 7절까지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5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보살펴 준다. 내가 해 뜨는 곳에서 너의 종족을 데려오고, 해 지는 곳에서도 너를 모아오리라. 6 내가 북쪽을 향해서도 외치리라. '그들을 어서 내놓아라.' 남쪽을 향해서도 외치리라. '그들을 잡아두지 마라.' 아무리 먼 데서라도 나의 아들들을 데려오너라. 땅 끝에서라도 나의 딸들을 데려오너라. 7 그들은 내 백성이라고 불리는 것들, 나의 영광을 빛내려고 창조한 내 백성, 내 손으로 빚어 만든 나의 백성이다.

초기 교회와 신자들은 ‘야훼 하느님께서 주변 강대국에게 수탈당하고 잡혀갔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고 회복해 주시리라’는 이사야서의 예언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세례와 성령 강림, 그 세례에 동참하는 우리와 모든 민족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게 된 일이 이런 해석의 근거이자 증거라고 강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2019년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초기 교회와 신자들의 해석과 실천은 어떤 의미일까요?

많은 교회나 선교 단체에서 가르치듯이 한 명이라도 더 교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면 될까요?

다양한 경로와 활동을 통해 우리 주변에 있는 비신자들이 세례 받도록 하고, 소위 말하는 ‘성령 체험’을 하도록 도우면 될까요?

그렇게 하면 이들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또다시 모든 민족의 언어로 복된 소식을 전하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될까요?

어떤 교회나 신자들에게는 그렇게 이해되고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초기 교회와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계의 전환점’으로 이해했던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오늘날에는 ‘한 사람의 전환점’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 동참한다는 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계와 한 사람의 전환점’이라는 의미에 동의하고 참여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세례를 통해, 그가 온 세계와 한 사람의 전환점이라는 ‘놀라운 가능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세례에 동참하여, 예수 그리스도처럼 ‘온 세계와 한 사람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세례는 그런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공식 선언’인 거죠.

이를 통해, 저는 여러분이 어제와는 다른 선택을 하도록 돕는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제가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도록 함께하는 전환점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걸어가신 신성에 참여한다는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이 모든 의미와 실천의 출발점에, 오늘 복음서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세례와 성령강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초기 교회와 신자들이 믿고 전하던 ‘성령을 받는다’는 건, 우리가 자기 자신, 이웃과의 관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어제의 나, 어제의 관계와 사회 안에 매몰되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 수 없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종종 ‘한 사람’의 힘이나 영향력을 가볍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가 커다란 구조나 환경, 안팎의 상황에 쉽게 영향을 받을 때가 많으니,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킨 많은 일들을 살펴보면, 가장 앞에 섰던 한 사람, 오래 버티고 견뎌낸 한 사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 한 사람 때문에 바뀐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과 교회가 자기 자신과 이웃과의 관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는 건 ‘중요한 신앙 고백이자 실천’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이해와 실천의 시작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세례와 성령 강림’이라는 걸 기억하며 고백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면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더 많이 가진 이들이나 영향력과 권세를 가진 이들의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해방시키는 이름이자 끝까지 싸울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고 교회라는 형식으로 모이는 한, 우리는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 각 사람과 모든 세계의 전환점’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성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잠시 묵상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 본기도
사랑의 하느님, 의로우신 성자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어 우리 죄인들과 같이 세례를 받으셨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1독서, 이사야 43:1-7 / 2독서, 사도 8:14-17 / 복음, 루가 3:15-17, 21-22

* 2019년 1월 13일, 주의 세례 주일(The Baptism of our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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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9/01/15 03:49 2019/01/15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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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라이!? 동지! 인터뷰에 참여~ 관심 있는 분들은 공유 부탁드려요 ^^ )

벌써 작년이네요. 지난 10월 중하순에 ‘비온뒤 무지개 재단’ 활동가 분들과 ‘종교인 앨라이 인터뷰’라는 걸 했어요.

그동안 퀴어 길벗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동행해 온 다섯 명. 저를 포함해 임보라, 고상균, 박진영, 변영권 목사님, 이렇게 다섯 명이라 속으로 ‘아싸~’ 했죠 ㅋㅋ

제 순서를 보니, 가장 정신 없는 연말에 나갈 것 같아 ‘이번엔(?) 조용히 넘어 가겠구나~’ 했죠 ㅎㅎ

헌.데. 2019년 1월, 신년에 저만 똑 떨어져서 공개 되는 ㅋㅋㅋㅋ

이번엔 힘~ 빡~ 주고 진지하게 인터뷰에 임했습니다. 시간되면 한 번씩 읽어 주시고 공유해 주세요 ^^


저는 우리가 서로에게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소수자 길벗들과 연대하고 동행하는 ‘또 한 사람’이 되어 주세요~ 바로 지금, 함께해 주세요~!


참, 인터뷰 글에서도 등장하는 임보라 목사님, 앞선 한 사람, 버텨주는 한 사람인 목사님께 감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여러분도 퀴어 길벗들의 동지가 되어 주세요~ ^^

* 정리하느라 고생하신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님께 맘 깊은 감사와 미안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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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9/01/13 01:26 2019/01/13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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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공회대학교 강의 평가 결과 공개.

일주일에 딱 50분. 그것도 ‘의무 채플’이란 명목으로 만나는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어려운 길을 선택했는데, 함께한 학생들의 평가는 어떨까.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채플이었습니다.”
“종교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별 탈 없이 들을 수 있는 수업입니다.”
“정말 좋은 수업이었습니다.”
“소수자 인권을 위해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매우 유익한 수업입니다. 정식 교양이나 특강 형식으로 계속 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것 배워가는 최고의 채플입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낙태죄 특강이 특히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등등.

30명 신청해서 27명이 Pass. 그 가운데 21명이 평가에 참여해줬고, 평점은 4.352.

학부강좌/전체교원 208개 가운데 67등, 학부강좌/비전임교원 130개 가운데 41등. 아, 요즘엔 이렇게 나오는구나.. ^^;;;

100% 참여한 평가가 아니고 주요 수업도 아니라, 평가 자체가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다만, 일부러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게 나와서 스스로 큰 위안이 되었다.

성공회대학교처럼 작은 규모일지라도 종합대학교에서 채플 수업이란 걸 진행해 본 사람들은 이게 뭔 소리인지 안다.

비종교인이 더 많은 학교에서 2학기 의무 이수를 해야 하는 채플 수업이다. 많은 채플 수업들이 일종의 ‘쉬어가기 코스’(?)처럼 열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50분 수업이지만, 어떤 수업은 30분 겨우 넘기고 마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야 학생들이 좋아하니까(?).

그리고 대부분 ‘가벼운 내용’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쟁점으로 만나는 그리스도교”라는 제목으로 개설된 채플 수업. 비정규직 노동, 낙태죄 폐지, 페미니즘, 퀴어를 주제로 다루고, 50분 꽉 채워 진행되는 채플 수업 ㅎㅎㅎ

첫 시간에 위와 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클릭에 늦어 어쩔 수 없이 들어왔는데, 꼭 다른 수업에 들어가고 싶은 분들이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라는 안내를 하는 수업 ㅋㅋ

나는 지금도 성공회대학교 3천 여 명 학생들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채플 수업에는 회의적이다.

몇 해 전, 교목실로 발령받아 학 한기 근무를 한 뒤에 만들었던 한 쪽 짜리 내부용 제안문에 담았던 내용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총장님을 비롯해 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성공회 신부님들께 공유했던 내용은 정식 수업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대신 교양 필수나 선택으로 바꿔 다른 교양 수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세팅하자고 했다.

‘종교와 인간’이나 ‘종교와 사회’라는 분류로 2-3시간 짜리 정식 수업으로 여러 개를 만들어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준비하자는 제안.

매 학기 느끼는 거지만, 3천 여 명의 학생들 가운데 최소 10%, 그러니까 3백 여 명 이상의 학생들은 이런 기대감을 갖고 성공회대학교를 적극 선택한 이들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했던 제안이었다. 최소한 20%인 6백 여 명의 학생들은 ‘한 번쯤 들어볼까..’ 라는 선택을 할 거란 것도 ^^

‘그러니 서로가 부족하게 느끼는 의무 채플 수업을 진행해서 3천 여 명의 아쉬움이나 반감을 남기지 말자. 그보다는 3백에서 6백 여 명의 학생들과 제대로 된 수업을 진행하자. 그 가운데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종교의 또 다른 면’을 알게 한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성공회대학교의 설립 이념을 공유하는 게 아니겠냐’ 고 강변했다.

‘그래도 기독교 대학인데 채플이란 이름이 진행되는 수업이 없어지면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해서, 결국 다시 책상 서랍에 ‘보류’로 분류되어 끝났지만 ^^

그 이후에도 혼자 채플 수업에서 몇 학기 째 비슷한 맥락의 실험(?)을 진행 중인 나로서는 그 제안이 아직도 유효하단 생각이다.

소위 말하는 ‘전략’의 첫 걸음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정직한 인식과 유효 적절한 분석’이고, 그에 따른 ‘선택과 집중’이기 때문이다.

아, 말이 길어졌다. 무엇보다 한 학기 동안 어려운 선택을 하고 충실하게 동행해 준 학생들에게 맘 깊이 감사를 전한다 ^^

(2019.01.10. PM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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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9/01/11 10:19 2019/01/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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