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빼고 몽땅 ‘이단’이닷~!! ㅡ.,ㅡ^

대한예수교장로회 예장백석대신측(백석대). 대한예수교장로회 여러 분파 가운데 합동측(총신대), 통합측(장신대)에 이어 세 번째 규모라고 한다.

헌데 이 무리들의 지도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생명에 이르는 좁은 문’을 ‘이단 낙인 찍기’로 이해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차피 성서무오설, 그러니까 ‘문자 근본주의에 근거한 성서무오설’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라 그러려니 하지만, 자신들의 성서 해석이나 교회 전통 이해를 벗어나면 모두 ‘이단’이란다.

심지어, 현대 과학이나 사상과 충분한 대화를 하고 통찰을 얻어 새로운 길을 열고 있는 ‘퀴어 신학’조차 “따로 조사나 연구가 필요 없이 이단이라고 판단”했다. 정말 지나가는 개가 다 웃을 일이다.

그럼 나도 해방 신학에 이어 퀴어 신학을 공부하며 그 길에 서 있으니, 오늘부터 이단인가 ㅋㅋㅋ

‘오래 이어져 온 이야기’에는 힘과 지혜가 있다. 그런데 그 힘과 지혜만 믿고, 그 이야기를 반복하는 데만 애쓰면 문제가 생긴다. ‘새로운 통찰과 이야기들’과 제대로 경합하고 논쟁하며 서로 배우는 과정을 겪지 않으면,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머지않아 ‘격리 지역’이 되어 버린다.

그리스도교 성서와 교회 전통은 그런 면에서 ‘오래 이어져 온 이야기’다. 그래서 오늘날 과학, 의학, 사회학, 경제학 등 ‘새로운 통찰과 이야기들’과의 소통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겸손히 듣고 배우며 ‘세계와 사회의 한 부분’인 종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잘 식별하고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이 길은 참으로 좁고 험한 문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런데 예장백석대신인가 하는 무리들이 모여 진행하는 ‘총회’에는 이런 고민과 치열함이 없으니 얼마나 편할까. 그저 자리 싸움이나 신학과 이성의 게으름을 맘껏 자랑하면 되니 얼마나 좋을까(?).

고만고만한 자기들끼리 모여 그렇게 ‘우리 빼고 몽땅 ‘이단’이닷~!!’ 하고 탕탕탕 망치 두드리는 게 재밌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끝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편일 게 분명하다. 지금 당신들이 행하고 있는 일은 곧 당신들이 ‘남들에게 돌려 받을 일’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 (마태 7:12-14, 공동번역개정판)

——————

[뉴스앤조이 / 백석대신3] 또 ‘이단’ 된 임보라 목사
임 목사 “소명 절차도 없어” … 이대위원장 “자료 충분, 직접 부를 이유 없다”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8.09.12 11:34

[뉴스앤조이 / 백석대신4] 퀴어신학도 이단 결의
“무슨 연구가 필요한가" 현장서 즉석 결정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8.09.1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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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09/17 05:09 2018/09/17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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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눔] 이단!??

‘이단’(異端).

일반적인 교회에서는 이단에 대해 ‘끝이 다르다’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나는 요즘 굳게 믿는다. 곁에서 동행하며 지켜본 임보라 목사님은 그를 ‘이단’이라 낙인 찍는 이들과 분명 그 끝이 다를 거다.

예수의 이름으로 혐오와 저주, 차별과 배제를 일삼는 이들과 임보라 목사님의 끝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우리들의 하느님’으로 안내하는 그리스도교 성서와 교회 전통은 분명 ‘문자 근본주의’에 갇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모르는 척하며 그보다 크고 넓으신 ‘우리들의 하느님’을 그 안에 가둬 놓고 ‘꼭두각시 신’으로 만들어버린 이들의 성서 해석과 교회 전통 이해를 어찌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에 근거한 이단 논의에 그저 콧방귀를 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여기에 있다!”

나는 이 밤, 지난 토요일, 동인천역 북광장을 끝내 지켜낸 성소수자 길벗들 그리고 연대한 이들의 외침에 동참한다.

“임보라 목사님,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대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그대 안에 계시고
그대 뒤에 계시고
그대 앞에 계시고
그대 옆에 계시고
그대를 이기시고
그대를 위로하시고
새로이 회복시키며
그대 아래 계시고
그대 위에 계시며
고요함 가운데
또는 위험 가운데
그리스도 현존하시며
그대를 사랑하는 모든 마음 안에
그리스도 계시며
그대의 친구와 낯선 이들의 입 속에도
그리스도 계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있습니다.”

* 성 패트릭의 기도로 잠시 기도합니다. 제 길벗들도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뉴스앤조이 / 백석대신1] 임보라 목사 이단 지정 예정
“신앙 혼란 초래하는 요가, 참여 금지”… 김성로 이단성 있으나 2년간 예의 주시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8.09.10 13:17

[국민일보 / 백석대신 3신] 임보라 목사 이단 지정
- 백상현 기자 ⏐ 입력 : 2018-09-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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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09/12 04:42 2018/09/12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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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동인천역 북광장.

그곳에 있지 못한 만큼, 그곳에서 들려온 성소수자 길벗들의 비명 소리와 분노만으로도 내 가슴은 시퍼렇게 멍들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루종일 온갖 혐오와 저주, 욕설과 신체적 폭력을 온몸으로 견뎌낸 길벗들의 몸과 마음은 어떨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자신들을 ‘조건 없이’ 사랑한 예수의 이름으로 혐오와 저주를 내뱉고 욕설과 폭력을 행한 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조건 없이 사랑받았지만, 나 이외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조건을 충족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우기는 웃기는 사람들.

그들을 작고 연약한 사람의 삶 한가운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 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 이들을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곳을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금도 여기저기서 신음소리와 분노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때마다 커다란 얼음 송곳으로 가슴이 꿰뚫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그날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혐오와 저주를 내뱉는 이들에게 아주 강하게 반발했을 거다. 내 길벗들에게 손을 대는 그들을 강하게 밀쳐내고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았을 거다.

눈에 보이지 않은 신은 우리들의 일상과 언행을 통해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그 아비규환 속에서 내 길벗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을 거다. 성서가 말하는 ‘악귀 들린 이들’이 연상되는 이들. 예수의 이름으로 혐오와 저주, 욕설과 폭력을 저지른 저들은 예수를 드러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어떤 일이 있든지, 계속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내서 퀴어 길벗들과 함께 걸을 거다. 내 길벗들에게 위협이 생긴다면 좀 더 앞에서 부딪힐 거다. 귀하고 귀한 길벗들이 더 큰 상처를 받지 않도록.

누가 뭐라든 성소수자 길벗들은 어디든지 있다. 퀴어는 그 누구와도 동등하며 독특하다. 어떤 이들이 혐오와 저주로 삭제하려고 해도 결코 삭제당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순박한 얼굴과 말로 “사랑하지만 죄는 죄입니다” 라고 내뱉는 그 ‘질문 없는 삶’ 너머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관된 사랑과 축복 안에 사는 이들이다.

그러니 하느님이 사랑하는 이,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 질문 잃은 이들과 교회의 일상과 존재를 쪼개는 질문으로 임하소서. 우리에게 그들을 견디고 끝내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사람들을 주소서.

우리의 슬픔과 분노가 저들의 혐오와 저주를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연대로 이어지게 하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하겠나이다.

그리고 이 밤, 상처입고 찢긴 영혼을 붙들고 슬피 우는 나와 당신의 길벗들, 당신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시고 그 상처를 감싸주소서.

우리, 동등하며 독특한 성소수자 길벗들의 존재와 그들의 길벗인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 그리고 우리의 연대 가운데 끝내 승리하는 그날, 무지개 깃발을 힘차게 흔들며 기쁨과 눈물의 노래를 부르게 되리라.

(2018.09.10. pm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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