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기에 완전한 사람. 하느님의 자비를 근거로 살아가는 사람.”

* 2017년 2월 19일, 연중 7주일(Seventh Sunday after the Epiphany)
* 1독서, 레위 19:1-2, 9-18 / 2독서, 1고린 3:10-11, 16-23 / 복음, 마태 5:38-48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우리들의 하느님은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질문하십니다. 이스라엘과 초기 교회는 그런 하느님의 질문을 전하는 여러 통로를 ‘정경’(Canon)이라는 이름으로 엮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읽고 후대에 전하며 공동체로 살아가는 중요한 근거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이를 ‘신⋅구약 성서’라고도 부릅니다. 이런 성서에는 ‘족장, 판관, 왕, 제사장, 선지자, 무엇보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 그리고 초기 교회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하느님의 질문을 전하는 통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전한 하느님의 질문은 무엇일까요? 저는 다음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너희가 당연하게 여기는 ‘너희의 것’이 정말 너희들의 것이냐?”

“어떤 일이 있어도 잊지 않고 있는가? 지금 너희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게 ‘하느님의 것’이다.”

“이 시대에 너희가 누리는 당연한 것들을 ‘나눠받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그 몫 없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잠시 위임받은 ‘하느님의 것들’을 정의롭게 나누며 살고 있는가?”

2017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성서를 읽고 감사성찬례에 참여하는 선택과 행위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뤄지는 모든 선택과 행동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가장 선언적인 표현은 마태오의 복음서 5장 48절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이 말씀은 오늘 1독서인 레위기 19장의 2절의 “나 야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과 닿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완전한 하느님’은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거룩한 하느님’이고, ‘완전한 사람’은 ‘거룩한 사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길은, 바로 거룩한 하느님을 따라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거룩한 하느님을 따르는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레위기는 그 방법 가운데 하나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말해줍니다.

“너희 땅의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밭에서 모조리 거두어들이지 마라. 거두고 남은 이삭을 줍지 마라. 너희 포도를 속속들이 뒤져 따지 말고 따고 남은 과일을 거두지 말며 가난한 자와 몸 붙여 사는 외국인이 따먹도록 남겨놓아라.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이다.” (레위 19:9-10)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가진 사람, 무엇보다 자기 생산물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가운데 이미 가난한 사람과 이주민 또는 난민들의 몫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소유와 생산물은 하느님이 허락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소유와 생산물 안에는 이미 하느님이 구별하신 가난한 이웃들의 몫이 들어있습니다.

레위기 25장 23절을 보면 “땅은 아주 팔아넘기는 것이 아니다.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 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라는 선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뒤에서 안식년과 희년이란 구체적인 적용 방법을 설명하며 ‘땅은 하느님의 것이다’라는 걸 강조합니다.

‘땅은 하느님의 것이고,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 몸 붙여 사는 식객일 뿐이다.’ 이 말엔, 우리들의 소유권은 하느님의 자비에 근거해서 잠시 위임받은 것이란 큰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그렇게 위임된 권리 안에 이미 가난한 이웃, 이 땅에 잠시 몸 붙여 사는 이주 노동자들의 몫이 포함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소유와 생산물 가운데 이미 포함되어 있는, 가난한 사람과 이주민 또는 난민들의 몫을 나누는 건 단순한 구제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땅, 그 땅에서 나는 모든 것들의 주인이 하느님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신앙 고백입니다. 이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와 각자가 하느님과 이웃에게 ‘교회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려면 꼭 해야만 하는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바울로도 아폴로도 베드로도 이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1고린 3:21-23)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니, 그 하느님께서 정한 이웃의 몫을 나누는 것은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권고사항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하느님은 ‘하느님의 자비에 근거한 변혁’을 명령하는데, 우리들은 ‘쓰고 남은 것들을 나누는 구제’를 권유합니다. 그것만이라도 잘하면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건 하느님께서 잠시 허락하신 위임된 권리를 남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소유와 생산물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기에, 분명히 구별하여 나눠야 하는 ‘몫 없는 자들의 몫’을 횡령하는 범죄입니다.

이에 대해 교회는, 모르는 척하는 사회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우리들은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교회와 신자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정해놓으신 ‘몫 없는 사람들의 몫’을 되찾아 나누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너희는 이웃을 억눌러 빼앗아 먹지 마라. 품값을 다음날 아침까지 미루지 마라. 귀머거리가 듣지 못한다고 하여 그에게 악담하거나 소경이 보지 못한다고 하여 그 앞에 걸릴 것을 두지 마라.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라. 나는 야훼이다.” (레위 19:13-14)

무엇보다 용산 해방촌 나눔의집 식구들은 우리들의 존재로 말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존재 자체가 이 사회와 교회에게 ‘하느님의 명령’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또한 그 명령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단 걸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을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이주노동자입니다. 우리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가난한 사람들인 이주노동자, 난민 그리고 장애인들과 동행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을 통해 이 시대의 교회와 사회에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와 사회 가운데 ‘몫 없는 자’로 살고 있는 우리들이, 마땅히 함께 누려야할 몫을 제대로 누릴 때까지 하느님은 질문하실 겁니다.

그러니 이 시대의 교회와 사회가 하느님의 질문에 제대로 답할 때까지, 우리들부터 ‘하느님의 자비를 근거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먼저는 우리들이 하느님의 자비 때문에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비 때문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증언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길입니다(마태 5:43). 이것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식별된 사람, 즉 ‘거룩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완전한 사람’으로 사는 길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자비를 근거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완전함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부터 하느님의 자비를 근거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이 시대의 교회와 사회를 향한 하느님의 질문에 동참해야 합니다.

“너희가 당연하게 여기는 ‘너희의 것’이 정말 너희들의 것이냐?”

“어떤 일이 있어도 잊지 않고 있는가? 지금 너희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게 ‘하느님의 것’이다.”

“이 시대에 너희가 누리는 당연한 것들을 ‘나눠받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그 몫 없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잠시 위임받은 ‘하느님의 것들’을 정의롭게 나누며 살고 있는가?”

우리 모두 이런 성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잠시 묵상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 본기도(Collect)
자비로우신 하느님, 주님의 지혜는 참된 사랑을 일깨우시고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하느님의 진리를 깨달아 사랑을 실천하며,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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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9 03:39 2017/02/19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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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십여 년 동안 한국 사회는 더욱 분명한 ‘퇴행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이명박근혜 정권 이전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지난 십여 년은 특히 심각해졌다.

지난 이십 여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반마저 위협받을 정도로 많은 걸 잃었다. 그리고 그 몫은 아무렇지 않게 ‘더 가진 자들의 몫’이 되었다. 어느새 우리는 퇴행 사회와 싸울 의지와 방법을 잃었다. 이젠 우리 모두가 퇴행 사회 속에서 생존하는데 집중할 뿐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누가 더 가난한지, 누가 더 소외되고 배제되었는지, 누가 더 차별받고 있는지 경쟁하듯 증명하는 사회가 되었다.

더 기가 막힌 건, 또 하나의 싸움이 전개될 때마다 그런 퇴행 사회와 싸워왔거나 그 싸움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누가 더 비참한지 증명하라’는 요구가 들려올 때다. 증명할 수 없거나 더 많은 사람들의 비참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떠들라고 한다.

그런 장면이나 목소리와 마주할 때마다 정말 비참해 진다.

정의에 기반한 사랑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연대하며 무엇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 수 있을지 질문하며 행동하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누가 더 비참한지 증명하라는 ‘가진 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내고 있다니.

우리들의 비참은, 가난은, 소외와 배제 그리고 차별은 경쟁하듯 증명하여 인정받는 게 아니다. 그건 함께 싸워서 넘어서는 것이다. 몫 없는 자들의 몫을 아무렇지 않게 독점하고 있는 ‘더 가진 자들’과 나눠갖기 위해 싸우는 거다. ‘사회적 합의’라는 건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것이다.

기억하자. 세상에 ‘어쩔 수 없는 것’은 없다. 미리 겁먹은 우리가 어쩔 수 없게 만드는 거다. 자~ 다함께 싸우자!!

#차별금지법NOW
#동성결혼NOW
#시민적결합NOW
#행동하는_성소수자가_세상을_바꾼다
#행동하는_연대가_우리_모두를_살게_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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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8 16:20 2017/02/1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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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수요일 오전, ‘원불교 교화 박람회’의 초대로 특강을 다녀왔다.

1시간 반 동안, 성공회 신부로 기획하며 경험한 ‘청소년⋅청년 선교 정책’의 철학과 지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그 가운데 강조했던 세 가지.

첫째, 누구든 ‘동등하며 독특한 존재’로 정직하게 마주하는 용기. ‘낯선 존재’를 통해 신을 맞이하는 종교적 지혜.

둘째, 故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함께 맞는 비’의 정신과 태도.

셋째, 대낮의 태양이 아닌 한밤에 더 빛나는 달을 지향하는 종교. 그처럼 주류적 가치가 아닌 비주류의 변혁적 가치를 지향하는 종교와 종교인들.

익산에 모인 백여 명의 30-40대 젊은 교무님들. 그들의 집중하는 모습과 알찬 질문들은 꽤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그 덕분에 내가 속한 그리스도교, 나아가 성공회라는 동네와 사목자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고민을 되새긴 시간.

원불교 쪽에서 그때 찍은 사진을 보내주셔서, 다시 한 번 그 시간을 되짚어본다.

지금 우리는 교회와 사회 가운데, 어떤 선택과 삶으로 다른 세상을 노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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