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는 여전하고, 적은 따로 있다: 동네에서 일하는 사람이 쓰는 잡설(?) 하나.

# 동네는 여전하다.

나는 동네 골목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와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반갑다. 지난 9년, 위가 막히기 시작하니 아래는 거의 지옥에 가까웠다.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 변화’가 시작되니 좋다. 그 덕분에 뉴스나 온라인 등을 통해 전해오는 세상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동네는 달라지지 않았다. 뉴스나 소셜 미디어 등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딱 거기까지다. 내가 동네 골목에서 마주치는, 목에 힘 좀 준다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은 여전하다. 거의, 아니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주 오랜 시간, 이 땅의 보수 정당들을 유지시켜 온 바탕이자 판은 흔들림이 없다. 종북, 좌파, 빨갱이, 입진보 등 수많은 ‘주홍글씨’로 다른 생각과 삶의 방식을 때려잡던 ‘우리’는 그냥 그렇게 그자리에 있다.

우리 일상과 의식의 바닥에 깊이 자리 잡은 ‘극우적 사고 방식’이나, 더 가진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의 작동 원리들’은 그대로다.

심지어, 동네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을 그리도 힘들 게 하던 ‘자유당스러운’ 민주당 내 일부 극우파들은 더 힘을 얻었다. 점령군처럼 느껴질 만큼 기세등등하다.

사실 그들은 동네에서 촛불에 동참하던 사람들에겐 ‘개혁 대상’이자 ‘청산되어야 할 과거’였다. 헌데 ‘민주당’ 우산 아래 있다는 것만으로 ‘면벌부’를 받은 것처럼 행세한다. 아주 신이 났다.


#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싸움이라도 해보려면, 민주당 내 또아리를 틀고 있는, 자유당과 바꿔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는 일부 극우파들부터 청산해야 한다. ‘민주당 정부 3기’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그 싸움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두 번의 민주개혁 정부들이 겪은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실제로 평범한 동네 사람들 마음을 돌아서게 했던 결정타는 몇몇 중앙 정치인들의 헛발질이 아니었다. 그들의 헛발질을 비판하던 진보 매체나 시민사회단체도 아니었다.

‘때만 되면’ 그 정치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팔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들 때문에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평범한 동네 사람들은 자유당 간판을 걸고 나와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 민주당 내 극우파들을 경험하면서, 그 둘이 바뀌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믿기 시작했다.

그러니 새로운 정부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총질(?)을 하려면 정확하게 해야 한다. 잠재적 우군에게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큰 틀에서 한 걸음 더 진보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끼리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면, 팔짱을 끼고 좋아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한 건, 진짜 싸움을 시작하기 위해서 힘을 모으는 거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좀 더 진보된 세상을 얻어내기 위해서 ‘따로 또 같이’ 함께 싸울 느슨한 연대를 더 넓히는 거다.

물론 우리들의 삶이나 싸움은 선명하지 않다. 적도 분명하게 특정할 수 있을 만큼 명료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수록 우리는 침착하고 지혜로와야 한다.

새로운 동지나 길벗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렇게 이 땅과 우리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극우적 사고 방식’과, 더 가진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의 작동 원리들’을 하나씩 바꿔가야 한다.

그렇게 서로, 힘있게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좋겠다.

우리 잊지 말자. 아직 동네 골목은 달라지지 않았다. 동네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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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7/05/23 22:38 2017/05/2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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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게 ‘재밌는 짧은 글’ 하나를 읽었다.

“지지자들도 문재인을 닮아라”

그러고 싶지 당연히. 누군들 그렇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각자 역할이라는 게 있다. 모든 사람들이 선비처럼 살면 농사는 누가 짓고, 화장실 청소는 누가 하고, 소는 누가 키우고, 밥은 누가 하고, 문재인 가는 길 빗자루질은 누가 하겠는가? 누군가는 가시덤불 헤치고 가야 하고, 누군가는 먼저 달려가서 길도 닦아야 하고, 누군가는 뒤따라오면서 뒷정리도 하고, 누군가는 불한당 나타나는지 망도 보고,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가 상처도 주고 상처도 입고... 그렇게 가는거지..

백인백색,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거지 이걸 하나로 뭉뚱그려 문빠니 달레반이니 문베충이니 말하는 당신들이야말로 '언어폭력'과 '파시즘'에 가까운 사고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인간은 다양하다.

——————

아직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유명 정치 팟캐스트 스피커인 ㄱㅅㅇ이란 분의 항변(?)이란다.
일단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며 끄덕였다.

사석에서 ‘O빠, O까’ 정도 표현은 사용한 적 있지만, ‘달레반’이니 ‘문베충’ 같은 표현은 써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수많은 ‘개인’을 ‘단 번에 퉁쳐 버리는 표현’이 내포한 위험성을 생각해 봤다. 특히 나는 ‘OO충’이니 ‘O슬람’ 같은 표현을 들으면, 내 안에 있는 빨간 불이 켜진다.

그런데.. 그런데.. 일단, 이분 주장에 끄덕인 후 갸우뚱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지지자들도 문제인을 닮아라” 는, 일부 극렬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 대한 요청.

내가 알기로는 문재인으로 ‘획일화’되란 말이 아니다. 그저 대선 승리 이후 보여주고 있는 그의 행보를 고민해 달란 의미로 읽힌다. 사람의 존엄이 기반이 되는 사회를 위해, 무엇보다 다른 입장과 생각들에 대해 존중과 예의를 지키며 끝까지 대화하고 협의하겠다는 태도.

“백인백색,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거지 이걸 하나로 뭉뚱그려 문빠니 달레반이니 문베충이니 말하는 당신들이야말로 '언어폭력'과 '파시즘'에 가까운 사고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인간은 다양하다.” 라는 반론의 생뚱맞음을 느끼는 건 그 때문이다.

이분 말처럼 “인간은 다양한다”. 그렇기에 그 다양성이 소통하기 위해 다른 입장을 가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갖춰야 한다.

그렇게 다양한 다른 입장이 ‘안전하게 경합’하기 위한 최소한의 룰이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몫이 없고 목소리마저 빼앗긴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배려되는 사회’가 작동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거다.

나 또한 ‘달레반’이니 ‘문베충’ 같은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든 서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안전선’이란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분의 반론이 갖는 ‘과함’이 불편하다. 건너뛴 논리에 갸우뚱하게 된다.

사람의 존엄이 기반이 되는 사회는 사회적 소수자나 상대적 약자들이 우선적으로 배려되는 사회다. 다른 입장과 생각들에 대해 존중과 예의를 지키며 끝까지 대화하고 협의하겠다는 태도는 최소한의 안전선이다.

당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보여주는 ‘긍정적인 지향과 태도’를 닮으라는 요청을 “‘언어폭력’과 ‘파시즘’에 가까운 사고”로 곡해해 버리면, 우리의 논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 주장은 나같은 비판적 지지자들도 갸우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덧. 아.. 글이 ‘또’ 길어졌다. 나도 핵심만 툭툭 던지는 글이 좋은데.. 저 ㄱㅅㅇ씨처럼 쓰면 좋은데.. 헌데, 조심스러운 설명 없이 들끓게만 하는 선동성 짧은 글을 읽으니, 종종 긴 글로 생각 풀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자기 위안을..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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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7/05/23 04:34 2017/05/23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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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소셜 미디어

사실, 닫으면 아무 것도 아닌 공간이 있다. 접속하지 않으면 내게는 별 의미없이 흘러가는 공간이 있다.

소셜 미디어라는 공간. 이 시공간은 내가 접속하여 거기서 유입되는 정보에 열려 있어야 유의미한 곳이 된다. 또한 이런저런 교감이나 교류를 원하는 사람들과 서로 반응해야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어제도 나눔의집 입간판 사진 하나 덜렁 올려놓고는 하루 종일 소셜 미디어에 접속할 시간이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회의, 동네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이어지는 일정들. 사람들 사이에서 얼굴을 마주보며 해야하는 일들 가운데 있다보면, 소셜 미디어와 같은 가상 세계는 나중으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소셜 미디어에 접속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살펴 본다. 종종 이런저런 피로함을 느끼면서 소셜 미디어에 일정한 시간을 투자(?)하는 건 뭘까.

‘다른 목소리들’. 예전이나 앞으로는 모르겠으나, 지금 내가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반응하는 이유는 다른 목소리들을 듣고 들려주기 위해서다.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과 다른 목소리들이 공존하며 경합하는 세계. 존중과 예의로 다가서고, 때로는 섬세하고 치열한 고민을 갖고 경청해야 할, 경합하는 생각들. 그렇게 여러 층위의 다른 목소리들이 때로 어긋나고 때로 어울려 존재하는 시공간.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쏟아내는 ‘다른 생각과 목소리들’을 들으며 끄덕거릴 때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들과 다른 내 생각과 목소리를 들으며 끄덕거릴 때가 있을까.

다른 목소리들. 내게 소셜 미디어는 딱 그 정도 의미와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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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7/05/22 00:45 2017/05/22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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