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리 없다. “보아라, 여기 새로운 것이 있구나!” 하더라도 믿지 마라. 그런 일은 우리가 나기 오래 전에 이미 있었던 일이다. (전도서 1:9-10)

가끔씩 당장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큰 그림’에 얽힌 얘기를 할 때가 있다. 그런 언급을 할 때마다 늘 조심스러운 건, 그 안에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는 나와 내 길벗들이 있다는 것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제 언급한 ‘한교총’과 ‘NCCK’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개신교단들에 관한 얘기 같은 거 말이다.

한교총은 악이고 NCCK는 선일까. ‘아직’ 한교총에 가입하지 않거나 의사를 밝히지 밝히지 않은 우리 동네 등은 괜찮고, 다른 주요 개신교단들은 한교총과 NCCK에 양다리를 걸친 구제불능일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리 생각할 수가 없다.

지난 겨울에 NCCK는 총무 정년을 70세로 연장시켰다. 양성평등위원회는 여성위원회로 그 명칭을 바꿨다. 나름 사정과 맥락이 있다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개혁안’으로 볼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 와중에 부총회장단에 교회, 여성, 연합기관, 청년 등 4개 분야 각 1인을 선임하는 안과 회원교단에서 NCCK에 총대와 실행위원 등을 추천 시 여성 30%, 청년 20%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개혁안을 함께 통과시키며 한 결정이라니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내가 속한 성공회라는 동네는 다를까. 그리스도교 전통과 전례에 대한 깊은 이해. 동 시대와 사회 그리고 이웃에 대한 겸손한 성찰과 동행, 이런 것들에 바탕한 선교적 지향과 수평적 태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합리성, 정직성, 투명함 등.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할 수 있어도, 내가 경험하는 우리 동네도 이웃 동네와 비교해서 잘해야 그저 ’51:49’다. 최근 한 명의 성공회 신자이자 사제로 경험하는 몇 가지 일들은 ‘이제는 그마저도 무너졌구나..’ 란 자괴감을 느끼게 할 때가 많다.

NCCK나 성공회를 보면서 “보아라, 여기 새로운 것이 있구나!” 라고 말하기 어렵다. 한교총 등의 세불리기나 이웃 동네에서 벌어지는 헛발질을 지켜보면서 ‘우린 달라’ 란 헛소리를 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리 없다. 잘해야 51:49이고, 대부분 오십보백보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떠드는 이유는 뭘까.

잊지 말자는 거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자는 거다. 헛발질을 일삼는 이 땅의 주류 교단이나 큰 그림 안에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는 길벗들이나 내가 반성과 성찰을 멈추면 안 된다는 거다.

바깥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 만큼, 안을 향해서도 목소리를 내며 싸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는 다짐이다.

일상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밝혀야 할 때가 있다. 복장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분명히 경험하는 게 하나 있다.

나는 성공회 신자이자 신부라서, 가끔 보수+중도적인 개신교단의 신자나 목회자들과는 다르게 자각하며 살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하지도 않고 잘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기독교 신자나 목회자 중 한 명’일 뿐이다.

결국 그리스도교 안에서 좌이든 우이든, 전통지향적 교회이든 혁신지향적 교회이든, 아니면 그 모두이든 바깥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어느 한 쪽의 헛발질은 다른 한 쪽에게도 큰 영향력을 준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정신차려야 한다. 주님과 이웃 앞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그리 살 수 있도록 우리 각자가 서로를 경계하고 격려해야 한다. 그게 내가 ‘편드시는 하느님’을 강조하며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하고 동행하는 그리스도교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떠드는 이유다.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간단히 삭제해 버리고 싶을지 몰라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다.

* 덧. 우리가 살아갈 시대와 사회는 어제와 무엇이 같고 다를까. 우리가 살아갈 오늘과 내일은 국민의 56.1%가 종교가 없다고 답하는 시대다. 40대 이하 종교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있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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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7/01/16 02:06 2017/01/16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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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눔] 퀴즈 하나

퀴즈 하나.

현재, ‘한기총, 한교연, 한교총’이라는 극우+보수+중도 개신교회들의 울타리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중도+진보) 소속 교단은 어딜까요?

힌트. 소위 한국 개신교회들의 큰 우산이 되겠다며 2017년이 되자마자 깃발을 올린 ‘한국교회총연합회'. 일명 '한교총'. 여기에 함께하겠다며 수장들이 이름을 올린 교파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한국침례회, 그리스도의나사렛성전회, 그리스도의교회교역자협의회, 기독교한국루터회, 대한예수교복음교회 등.

네. 현재 ‘한기총, 한교연, 한교총’이라는 극우+보수+중도 개신교회들의 울타리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교단은 다섯 곳입니다.

대한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구세군 대한본영,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그리고 한국 정교회.

여러분, 앞으로 이들의 행보를 잘 지켜보세요. 분명 제가 속한 대한성공회도 수많은 문제와 한계를 가진 교파이지만, 저는 최소한 대한성공회의 선배 성직자와 신자 지도자 분들이 ‘황당한 결정’을 하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성찰과 반성 없이 문제를 항상 바깥에서 찾으며, ‘허수아비 적’이 있어야만 하나될 수 있는 분들과는 묵묵히 ‘다른 길’을 가리라 믿습니다. 그런 길을 갈 수 있도록 안에서도 힘껏 목소리를 내고 싸워갈 겁니다.

‘그리스도와 깊이 동행하는 사랑’이라는 자기 동력이 아닌, ‘허수아비 적’이 있어야만 하나되어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걸 ‘교회의 고백과 증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신자들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평화와 상생을 위해 존재해야할 ‘종교인의 자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진정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반한 교회와 신자들의 선교’를 방해하는 건 누구인가요. 어떤 사람들일까요.

정말 주님과 이웃 그리고 사회 앞에서 부끄러운 날들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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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중 일부)

Q. 1월 9일 출범 예배 설교에서 동성애와 이슬람, 종교인 과세, 이단 등을 언급하며 한국교회가 하나 돼야 한다고 했다. '보수 기독교'가 결집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들렸다.

A. 기본적으로 한교총은 보수 기독교가 아닌 한국교회 전체를 아우르고자 한다. 보수 세력만을 겨냥했다면 감리회, 루터회, 구세군 등 에큐메니컬 교단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 교단마다 고유의 정체성과 교리가 있다. 이걸 존중하면서 함께 갈 것이다.

설교에서 동성애·이슬람·이단을 언급한 이유가 있다. 원론적으로 볼 때 성경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인정할 수 없다. 이 기구(한교총)가 제대로 완성되면 목소리를 키워 나갈 계획이다.

Q.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타 종교를 이해하는 교단과는 함께할 생각이 없는가.

A. 실제 그런 교단이 있는가. 어느 교단에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을 수 있어도, 교단 입장으로 내세우는 곳은 없지 않나. 동성애와 이슬람을 옹호하는 교단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다.

Q. 앞서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보수 기독교는 위기를 외부적 요인, 그러니까 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법 등에서 찾는다. 이보다는 목회자 재정 비리, 성 문제 등 교회 내부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는 지적도 있는데.

A. 그런 문제는 개교회, 노회, 총회에서 해결할 문제다. 교단 안에서 해결하지 않고, 사회로 가지고 나가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세상 사람은 나쁜 소문을 듣고 교회를 폄하하고 안 좋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찌 됐든 한국교회에 책임이 있는 건 맞다.

한교총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고민한다. 종교개혁이 왜 일어났는지, 현대사회에서 종교개혁이 어떻게 접목·적용돼야 하는지 큰 틀에서 고민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민족 복음화를 위한 논의도 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기독교 선교 방해하는 동성애·이슬람·이단에 맞서겠다”
- 한교총 공동대표 김선규 예장합동 총회장… “군소 교단, ‘큰 우산’에 들어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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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7/01/14 23:04 2017/01/1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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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밥 한 끼

밥 한 끼. 좋은 사람들과 사는 얘기 나누며 밥 한 끼 먹는 것만으로도 작은 치유를 경험한다.

비슷한 모습들.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반응과 해석들. 그토록 티격 거리면서도 서로에게 가장 연약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커플들. 그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배우는 삶의 작은 지혜들.

‘사는 게 다 그렇지.. 별 다를 게 있나.. 그래도 다들 물러서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구나.. 나도 힘내야지.’

이러니 저리니 해도, 살면서 남는 건 결국 ‘사람과 관계’다.

그 좋은 사람들과 께 밥 한 끼 먹고 힘을 내 본다. 아님 말구의 정신으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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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02:01 2017/01/12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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