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눔] 거룩함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102회 총회 중, 동성애자 및 동성애 옹호자 신학교 입학 불허 결의. 새로운 총회장은 동성애 옹호 교직원도 징계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네요.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와 믿음에 기반한 막연한 공포와 불안감. 그 공포와 불안을 씻어내기 위한 공격적인 혐오와 차별, 삭제와 배제.

보수 개신교파들 가운데 나름 ‘합리적 노선’을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던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의 최근 선택과 행보. 이는 한국 주류 개신교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20-30년 뒤, 시간은 이들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10년 뒤, 달라진 사회와 교회는 이들의 선택을 뭐라고 말할까요. 우리는 이분들의 ‘무모하고 무자비한 선택’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요.

이분들은 분명 자신들의 선택이 ‘악’과 싸우는 ‘거룩한 전쟁’이라고 굳게 믿을 지 모릅니다. 주위에 있는 대다수 목회자나 신자들이 그렇다고 하니, 더 알아볼 생각도 없이 ‘아멘’으로 ‘순응’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된 선택으로 얼마나 더 많은 성소수자 신자들과 ‘종교의 순기능’을 기대하는 젊은 신자들이 교회를 떠날 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슬프고 아플 뿐입니다.

이 시대와 사회의 양심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황망해 할까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102회 총회 구호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 이분들의 선택과 구호가 너무 생경하게 어우러집니다. 거룩한 교회.. 거룩함.

이분들에게는 오직 ‘이성애’만이 거룩한가 봅니다. 그것도 ‘가부장제와 정상가족신화에 오염된 이성애’만 말이죠.

이분들의 ‘거룩함’이 ‘분리주의’라면, 제가 믿고 고백하며 따르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은 ‘고통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넘어섬’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이 시대와 사회의 약자이자 소수자 취급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 길벗들을 삭제하고 배제하는 거룩함. 그건, 예수께서 가르치신 거룩함과는 너무 다릅니다. 예수께서 친히 보여주신, 고통을 부둥켜 안고 그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넘어서는 게 아니라고 확신입니다.


——————

[뉴스앤조이 | 통합7] “동성애자 및 동성애 옹호자 신학교 입학 불허”
- 동성애 옹호 교직원도 징계 … 총대들, 박수로 환호
이용필 기자 (feel2@newsnjoy.or.kr) | 승인 2017.09.1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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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7/09/22 01:36 2017/09/22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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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책 3권의 서문

책을 구하면, 가장 먼저 서문을 읽어 본다.

그가 왜 이 책으로 시대와 사회에 말을 거는 지, 나는 저자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며 책을 읽을 수 있는지 등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근에 나온 책 가운데 다음 주에 어렵게 잡은 휴가 기간에 읽을 책들을 정했다. 3권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페미니즘 리부트>, <루터의 재발견>.

“관점의 문제입니다 …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픕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습니다.”
- 김승섭 지음,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7쪽.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감정에 테두리치기’는 명백하게 가부장제와 착종되어 있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기획 안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 급속도로 부상하기 시작한 소수자 혐오가 특히 OO녀 담론으로 대변되는 여성 혐오의 형태로 드러났다는 것은 이 지점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감정의 인클로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젠더라는 상수를 고려하는 페미니즘의 방법론이 필요하다.”
- 손희정 지음, <페미니즘 리부트: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목소리들>, 7쪽.

“물론 16세기 당신 개신교라는 이름으로 여러 그룹들이 존재했다는 것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크게는 루터파・개혁파・재세례파・성공회, 조금 늦게는 웨슬리안까지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 보면, 당시 이 그룹들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일종의 경쟁 상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분모는 확실했다 … 그러나 단순히 반가톨릭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앞선 시대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소통을 통해 재해석하고 그 해석의 힘으로 자기 삶의 자리를 변혁시켜 나간다는 것이 개신교 진영의 공통점이다.”
- 최주훈 지음, <루터의 재발견: 질문, 저항, 소통, 새로운 공동체>, 15쪽.

‘우리는 서로 이어져 있다. 그렇기에 우리 안팎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상수와 변수들을 섬세하게 고려하고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그 가운데 질문과 소통을 통해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변혁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걸 선택하자.’

이 3권의 책 서문을 읽으며 기대되는 행간의 속삭임이다.

이 책들을 읽는 시간 동안, 나는 또 어떤 도전을 받을까. 내 질문에는 어떤 답을 줄까. 내게는 어떤 질문으로 다가올까. 설레고 긴장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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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7/09/19 06:33 2017/09/19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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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조금 차분한 시간이 생기면 꼭 한 번 정리하고 싶은 글이 있다.

1.

한국 개신교회 가운데 규모로 선두 그룹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에서 ‘여성 목사와 장로 안수’에 반대했던 숱한 글과 주장들. 그리고 1994년 총회 통과 이후에 생긴 몇 가지 잡음들. 그렇게 교단 안팎을 뒤흔들고, ‘결국’ 교회가 타락한 것처럼 떠들었던 몇몇 반대 인사들의 황당한 논리들.

하지만 1994년 여성 목사와 장로 안수가 통과된 이후, 통합측에는 말 그대로 ‘별일 없었다’. 오히려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차별이 문제지, 여성 목사와 장로를 안수할 수 있게 되어 생긴 병폐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더욱 활발해진 여성 지도력으로 인해 교회는 더욱 풍성해졌다.

2.

미국 주류 교단들이 ‘흑인 목사와 장로 안수’에 반대했던 숱한 글과 주장들. 가깝게는 다른 인종간 결혼에 반대하며 소속 목회자들이 그 결혼식을 축복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던 숱한 논리들.

그러나 결국 그런 주장들이 더 가진 자들인 ‘백인우월주의의 산물’이며 ‘인종 차별’이란 게 당연해지자, 아무렇지 않게 어제의 주장을 접은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 그들을 따르던 신자들.

3.

오늘날 성소수자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은 정말 다른 류의 사람들일까.

오늘날 성소수자들이나 그들과 동행하는 사람들을 향해, 신과 성서의 이름을 들먹이며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혐오나 차별은 반대하나 신과 성서의 뜻이자 교회 전통이라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쏟아내는 글과 주장들도 ‘열심히’ 모아 놓아야 하겠다.

여성 목사와 장로 안수에 반대할 때도 신과 성서의 가르침이자 교회의 전통이라며 나는 동의할 수 없는 ‘헛소리’를 했었다. 흑인 목사와 장로 안수에 반대했을 때에도 그랬고, 심지어 인종간 결혼을 축복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주장할 때에도 비슷한 헛소리가 나왔었다.

4.

두고 볼 일이다. 인종 차별에는 반대하나 여성 차별에는 찬성했던 사람들. 인종 차별이나 여성 차별에는 반대하나 성소수자 차별에는 찬성하거나 어쩔 수 없다는 사람들. 정말 ‘뭐가’ 다른지 말이다.

2017년, 신과 성서의 이름으로 ‘성 평등과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시대에도 여성 목사와 장로 안수에 반대하는 개신교단과 지도자들이 있다. 그들은 툭하면 천주교회를 향해서도 ‘이단 시비’를 건다. 그런데 여성이 목회자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신과 성서의 가르침이자 교회의 전통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기묘한 일치’를 이루고 있다.

5.

이들이 정말 기묘한 일치를 이뤄 지키고 싶은 게 신과 성서의 가르침일까. 아니면, 이성애 가부장제 중심인 정상가족 담론일까.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남성 성직자나 남성 신자 지도자들의 권위와 기득권일까.

가진 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걸 ‘공공/표준’으로 이름 붙여 가르친다. 불리한 건 ‘근거가 부족하고 신빙성이 떨어지는’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 숨긴다. 그래서 진실을 찾는 건, 대부분 ‘덜 가졌으나 잠에서 깬 사람들의 몫’인 경우가 많다. 이제는 깨어 일어나야 할 때다.

* 덧. 주여,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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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7/08/27 02:59 2017/08/27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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